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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샤 Jan 13. 2019

이별은 언제나 눈물로..

인간의 감정은 누군가를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가장 순수하며 가장 빛난다.

라다크 궁전에서 보이는 레 시내 전경 ⓒ인도아샤
어느새
천국 같은 라다크에서의 달콤한 2달이 흐르고
난 다시 길 위로 떠날 채비를 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텅 빈 배낭을 꺼냈다. 책상 위, 침대 아래, 구석구석 자리를 잡고 있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가방에 넣기 시작했다. 텅 비었던 가방은 금세 꽉 차고 내 방은 순식간에 빈 방이 되었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내가 반했던 큰 창문. 창문 밖으로 언제나처럼 히말라야 설산이 웅장하게 서 있다. 배낭을 한 곳에 두고 거실로 갔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햇살 아래 고양이 따시가 일광욕을 즐기고 있다. 

아말레! 아발레!

큰 소리로 엄마 아빠를 불러 보지만 오늘따라 집에 아무도 없다. 고양이 따시만 새침하게 날 쳐다볼 뿐이다. 

이상하다? 시장에라도 가셨나?


촉쉐(전통 테이블) 옆에 놓인 보온병 마개를 열었다. 뽀얀 김이 햇살을 타고 올라간다. 짜이 한 잔을 마시며 부모님을 기다렸다. 오늘따라 텅 빈 거실이 학교 운동장처럼 크게 느껴진다. 매일 아침 일어나 제일 먼저 거실에 오면 아말레가 항상 있었다. 부지런한 아말레는 매일 아침 일어나 구루구루 짜이(버터 소금 티)를 끓이고 달달한 짜이도 만들어 2개의 보온병에 담았다. 누구든 상관없이 거실에 앉으면 보온병을 열었다. 거기엔 아말레가 끓여놓은 티가 항상 있었으니까. 아침으로는 포리지, 계란 토스트, 콘플레이크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아침 대용품이 찬장에 가득했다. 남동생과 오빠는 뭐가 바쁜지 간단하게 아침을 먹곤 했다. 

감비르와 버터가 놓인 통. 짜이와 소금버터티.

나와 아버지는 서양식 아침 식사 대신 라다키식 아침 식사인 감비르를 좋아했다. 어머니는 저녁에 미리 반죽을 해 반나절 숙성을 시킨 빵 도우를 밀대로 밀어 아침이면 감비르를 굽곤 했다. 뜨거운 김에 공갈빵처럼 부푼 빵이 접시에 도착하면 식구들은 칼로 빵 한가운데를 열어 그 안에 버터 한 숟갈을 넣었다. 버터는 녹으면서 구수한 향이 났다. 우리는 호호 불며 버터 차와 함께 아침을 즐겼다. 우리 집 남자 4명이 조용히 먹는 반면 나는 항상 ‘아말레 맛있어요. 아말 레가 최고예요 ‘를 연발하며 먹었다. 남자 형제들은 대부분 밖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일이 없으면 집에 있던 아버지와 난 함께 차를 마시곤 했다. 어느 날 아발레가 내게 물었다. 


“부모님은 한국에서 잘 지내시지?”

“네, 어머니는 건강히 잘 지내세요!”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요.”

“많이 슬펐겠구나..”

아발레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내게 말했다.

“내가 좋은 아빠가 되어줄게.”


난 그 순간 울컥했다. 

아말레는 밖에 다녀올 때면 나에게 미주알고주알 그 날 있었던 일을 다 말하곤 했는데 아발레는 평소에 조용하고 말이 없는 분이셨다. 그래서 아발레와 있을 때면 나 혼자 신나게 떠들곤 했다. 아말레는 정말 딸처럼 날 대했는데 아발레와는 뭔지 모를 거리감이 있었다. 내가 이방인이란 점이 나 스스로도 마음에 걸렸을지 모른다. 그런 아발레가 내게 말해준 한 마디는 큰 감동이었다. 정말 아발레와 아말레의 진짜 딸이 된 그런 느낌 말이다. 

그 날 이후로 아발레는 사랑 가득 담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 다정한 눈빛은 내가 아발레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거실에는 평소엔 장식품이고 전기가 들어올 때만 쓸모가 있는 티비가 있었다. 우리는 매일 저녁 다 같이 앉아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인도 드라마를 보았는데 정전에 갑자기 티비가 꺼질 때면 혼자 궁스렁 거리고는 했다. 다른 식구들은 덤덤히 정전을 맞이하는데 말이다. 하지만 2달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난 더 이상 성질을 내지 않는다. 나도 그새 적응이 다 되었나 보다. 

"아말레~! 아발레~!" 매일 같이 거실을 들락날락 거리며 엄마, 아빠를 부르고, 함께 앉아서 시도 때도 없이 차를 마시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떨고. 갑자기 거실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그리워졌다. 


오늘 떠나면 언제 다시 그 시간들이 올까.. 거실 곳곳에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이 녹아 있었다. 아발레가 나와 함께 앉아 차를 마시던 모습, 아말레가 서서 짜이를 만들던 모습 그 모든 게 내 기억 속에 선명했다. 홀로 달달한 짜이를 훌쩍이며 먹먹한 가슴을 달랬다. 이별은 언제나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 

“작별인사를 해야 하는데 어딜 가셨지? “ 

나는 방으로 돌아와 배낭을 챙겨 떠날 채비를 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똑똑

노크소리가 나 문을 열어보니 거기에 아발레와 아말레가 서 있었다. 항상 맑고 순수한 웃음을 건네던 아버지. 그 옆에서 따뜻하게 웃어주던 엄마. 그런데 오늘은 두 분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다. 아발레는 나에게 편지 봉투와 3개의 잘 포장된 선물꾸러미를 건넸다. 아말레가 울먹이며 내게 말을 했다.

  “아는 사람에게 부탁해 편지를 썼어. 그리고 이건 우리가 널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이란다. 네가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구나. 내 딸아 꼭 다시 집으로 돌아오렴.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는 널 기다릴 거야..” 

  눈시울이 붉어진 아버지가 내 목에 까닥(무사안녕을 고하는 히말라야 전통 스카프)을 걸어주셨다. 우리는 서로를 꼭 껴안았다. 아말레와는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피르밀렝게 아샤. (꼭 다시 만나자)” 

  가슴 아픈 이별을 뒤로하고 난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탔다. 택시가 집에서 멀어진다. 난 여전히 뒤를 보고 있다. 손을 흔들어주는 아버지와 흐느끼는 어머니를 보며 계속 손을 흔들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 난 아버지가 건넨 편지를 꺼내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내 딸 아샤야.. 널 알게 되어 너무 행복 했어. 우리는 너를 진짜 딸이라고 생각한단다. 
너 같이 사랑스러운 아이를 딸로 갖게 되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 거야. 벌써부터 네가 그리워지는구나. 우리를 절대 잊지 말거라. 언제든 집으로 오너라. 필요한 게 있으면 편지를 쓰렴. 이 건 우리가 딸을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이란다. 네가 좋아하길 바란다."     

아빠, 엄마로부터.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문장 하나하나, 단어 하나하나에서 부모님의 따뜻한 마음과 진심이 느껴졌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영어를 모르는 부모님이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쓴 편지.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아말레와 아발레가 준 선물꾸러미 3개. From Papa라고 적혀 있다 ⓒ인도아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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