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1
복학생! 저학년에게는 피해야 하는 대상, 고학년에게는 그냥 친구인 존재. 복학생이라는 호칭도 이제는 멀어졌다. 복학을 하고 처음 강의실에 앉았을 때는 교수님의 한마디, 한마디가 이질적이었다. 하지만, 강의실의 어색한 공기도 이제는 옛일이다. 모두가 그렇듯이 군대를 다녀와 복학을 하고 1학년 때 망친 학점을 메우며 3학년이 되었다. 24살, 대학교 1학년 때는 그렇게 삭아 보이던 형들의 나이가 되었다. 신기한 일이다.
복학 후, 동기들과 다시 만나 같이 수업을 듣고 학식을 먹으며 열심히 학교에 적응했다. 이때까지 살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열심히 하면 누군가는 알아주고 무언가는 생긴다는 것이다. 학교도 열심히 적응했고 역시나 형들도 인정하고 동생들도 반겨주는 사람이 되었다. 인기와 비례하게 술자리도 늘어 갔다. 군대에서 그나마 빠졌던 살들은 요요가 아니라 반대로 튀어 올라, 군대 가기 전보다 살이 쪄 이제는 군복도 안 맞게 되었다. 특히, 바지 지퍼가 안 올라가게 됐다. 이게 다 인기로 얻은 살이다.
술자리에 가면 요즘 듣는 얘기는 “너 연애 안 해?”, “야! 뭐 여자 없어?”이다. 모두들 이제 연애를 할 때라고 하며 복학생의 인기가 좋다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1학년 때만 하더라도 복학생은 피해야 될 존재였다. 하지만, 3년 동안 세상이 변했고 트렌드가 바뀌었다. 이제는 모두들 군대를 다녀와야 남자답다고 한다. 군대를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 군필자가 좋다고 한다. 특히, 신입생과 2학년 애들이 좋아한다. 자기 동기들은 군대를 가야 하거나 아직 어린 티가 나기 때문이다. 역시!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멋있어진다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이번 학기는 5개의 전공수업과 1개의 교양수업을 듣는다. 친구들에게 물어 재밌는 교양수업을 추천받았고 여자들이 많이 듣는다는 ‘가정과 성의 역할’ 수업을 듣게 되었다. 내 동기 3명도 같이 듣는다. 모두들 신입생 때와는 다르게 옷 입는 테도 나고 멋있어진 것 같다. 역시 내 친구들이다.
2
“안녕!”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아! 형 안녕하세요.”
“안녕”
“안녕”
“그래, 안녕”
인사를 건네고 받는다. 인사를 받고 건넸다. 안녕이라는 단어를 따라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간다. 이제는 학교 복도를 걸어도 내 인기를 실감한다. 꽤 많은 사람을 알고 인사를 한다. 모두 웃으며 나를 아는 척한다. 나는 인기가 있다.
지난주에는 개강 첫 주라 학교에 안 왔다. 대신 친구들과 PC방에 가 LOL을 했다. 개강 둘째 주, 이제 진정한 개강이라 할 수 있다. 전공수업은 언제나 들어도 고역이다. 전공수업을 듣고 동기들과 함께 듣는 교양 강의실에 왔다. 강의실로 오면서 후배, 동기, 선배들과 인사하며 나름 자신감도 얻었겠다. 이번 학기에는 무조건 연애에 성공해야겠다. 강의실에 가니 한쪽 구석에 동기 2명이 먼저 와 있었다. 인사를 하며 쓱 강의실 전체를 둘러본다. 대박! 언뜻 봐도 예쁜 애들이 꽤 많아 보인다. 나는 무조건 이번 학기에 연애에 성공할 것이다.
“야, 봤냐?”
“뭐? 쟤네??”
“대박! 확실히 우리 학교에 예쁜 애들이 많아.”
“야야 오른쪽, 오른쪽!”
"찌리네...”
교수님이 들어온다. 하지만, 나는 여자들의 뒷모습을 보여 상상한다. 아까 들어온 그 여자는 남자친구가 있을까? 만약에 저 여자와 사귀면 어쩌지 하며 각종 상상을 한다. 사귀려면 말을 걸어야 하는데, 어떻게 말 걸지... 정작 말걸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백 프로! 예쁘니까 남자가 있을 텐데, 고민된다.
개강한 지 이제 두 달이 지났다. 중간고사도 보고 이제는 과제 철이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조별과제가 다가왔다. 나는 운이 없게도 학기 초에 봤던 다은이와는 같은 조가 아니다. 아 다은이는 이번 강의에서 제일 예쁜 애로 출석을 부를 때 눈여겨보다가 이름을 알게 됐다. 이름도 예쁘다. 한동안 관찰해온 결과 남자친구는 없는 것 같다. 따로 핸드폰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확실히 CC는 아니다. 남자친구를 본 적이 없다.
조별과제가 시작됐다. 우리 조의 구성은 나, 내 친구 1, 여자 3명이다. 그래도 우리 조에는 예쁘장한 애가 2명 있다. 한 명은 귀여운 스타일에 순하게 생겼고 한 명은 좀 평범한데 몸매가 좋다. 다은이가 눈에 밟히지만 그래도 여기서 연이 닿으면 생기겠지. “야, 약간 레벨업처럼 예쁜 애를 사귀려면 평범한 애를 사귀고 다음에 조금 괜찮은 애를 사겨야 그다음에 예쁜 애를 사귈 수 있는 거야! 너 쪼렙부터 보스 잡을래?” 술 먹으면서 과 선배에게 들은 팁이다. 그래, 일단 사귀고 다은이는 학기가 끝나기 전에 사귄다.
3
“야, 나 요즘 썸 탄다.”
“뭐? 니가? 혼자 상상하는 거 아니고?”
“아 진짜로 요즘 톡도 주고받고 조만간 끝장이다.”
“뭐????? 대박??? 니가??????”
“뭐 야! 나 정도면 뭐 할만하지!”
“어... 그래.... 잘 해봐라 ㅋㅋㅋㅋ"
4
민정이와 톡을 주고받은 지 2주 됐다. 이제는 조별과제와 상관없이 일상 얘기도 많이 한다. 물론 민정이가 아직 남자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부끄럼을 많이 탄다. 민정이는 귀여운 얼굴에 순한 인상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직 1학년이라 그런지 항상 호기심 많은 표정을 한다. 신입생과 복학생, 딱 좋은 조합이다. 조별 톡에서 얘기하다 친구 추가하고 번호를 물어봤다. 민정이는 답이 늦긴 했지만 번호를 줬고 갠톡을 하게 됐다. 반응도 좋고 드디어
솔로탈출이다.
5
“나랑 사귀자, 좋아해 민정아!”
수업이 끝나고 복도에서 민정이를 붙잡고 말했다. 물론 오기 전에 친구들에게 솔로탈출할 것이라고 자랑했다. 하지만,
“어... 저 수업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너, 수업 없잖아? 왜? 오빠가 갑작스러워서 그래?? 그럼 이따가 톡으로라도 답 줘!”
“어.... 아니요... 안녕히 계세요”
민정이는 귀엽게 인사하고 다른 수업을 들으러 갔고 다시는 내 톡과 전화를 받지 않았다.
6
“왜 나 피해?”
다음 주 수업이 끝나고 황급히 나가는 민정이를 보며 나는 화가 났다.
“왜 내 톡 씹냐? 아니 급작스러우면 급작스럽다고 얘기하고. 왜 오빠 피하는데? 뭐 연락 안 하면 다야? 장난해?”
“아! 죄송합니다. 갑자기 얘가 미쳐가지고 죄송합니다.”
갑자기 친구들이 오더니 날 말린다. 그 틈에 민정이가 도망갔다. 내가 아직 답을 못 들었다고 하니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친구들이 날 바라본다. 친구라고 하는 놈들이 이제는 내 사랑을 막는다.
“야, 아 왜 막아. 뭐!”
“야, 적당히 해라 애 무서워서 도망가잖아.”
“야 뭐가 도망가는 거야, 지금 급작스러워서 당황하는 거잖아.”
“그니까 당황하든 뭐든 지금 너 피하는 거잖아. 그냥 받아들여.”
“아니... 아 아니라고!”
친구들은 민정이를 모른다.
7
그래 어차피 민정이는 내 스타일도 아니고 다시 다은이와 잘해봐야겠다. 다음 주 수업 끝날 때 번호를 물어보고 그다음부터 사귀면 되겠다. 민정이는 운이 없게도 날 놓치는 거겠지. 그래.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어차피 버릴
애였으니까.
8
“싫어요!”
“네?”
“아니 싫다고요! 저번에 복도에서 그 생쇼를 하더니 이제는 저예요? 아 됐고 그냥 갈길 가세요!”
“아니 그냥 번호만 달라는 건데 왜요?”
“그걸 몰라요?”
“아니 그때는 그냥 잠시 싸운 거고 저 전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에휴... 그냥 싸운 것이 아니더라도 그냥 못생겨서 싫어요. 그냥 싫으니까 말 걸지 마세요.”
다은이가 빠르게 쏘아붙이고 도망치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어이가 없다. 내가 뭐 어때서?
9
이번 학기도 결국 연애에 실패했다. 처량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학기를 잊을 겸, 바람도 쐴 겸, 과 종강파티에 갔다.
“너 여자친구 없어?”
“왜?? 야! 연애해야지!”
선배들이 내가 여자친구 없다고 하니 놀란다. 나도 놀랄 노자다. 여자들은 보는 눈이 없다. 나처럼 착하고 나름 생겼고 여잘 위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술과 함께 종강파티의 시간도 저물어 간다.
“동~~~ 구~밖! 과수원 샷!”
멀리서 신입생들인지 인트로 음악이 들린다. 선배들도 있는데 너무 시끄럽게 노는 것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꽤 귀여운 애가 하나 있다. 나도 저기서 술을 마셔야겠다. 그래 여자친구? 번호? 오늘 해결한다.
“안녕~”
“안녕하세요!!!"
다시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