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력과 메타인지에 관한 의식의 흐름
메타인지는 통찰력과 비슷하면서 미묘하게 다르다.
통찰력은 직관과 연관되었다. 직관적으로 풀이방법을 알아내는 것이다.
처음 본 문제도 그 해결방법이 머리에 자동으로 떠오른다.
그렇기에 통찰력은 천재성이다.
반면 메타인지는 내 한계를 아는 정신활동이다.
그렇기에 메타인지는 노력을 하면 키울 수 있다.
내 한계에 계속해 도전하고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분류하다보면 내 한계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한계를 바탕으로 내 지적능력, 인지능력을 키우기 위해
계획과 실행과정을 만들면 메타인지를 늘릴 수 있다.
그래서 통찰은 주어지는 능력이고 메타인지는 개발시키는 능력이라 생각한다.
메타인지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세분화와 분류화이다.
메타인지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면서 인간의 기계화 과정이기도 하다.
얼마만큼 나를 잘 아는가, 변화될 때마다 표시하면서 자신을 계량화한다.
(심리학에서 출발한 용어라 그런지 과학적 방법론이 적용된 것 같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은 현실에서 분류화를 잘 못 한다. 어떤 생각이 들어도 그것을 분류화 못 한다.
그렇기에 메타인지, 메타인지 하며 메타인지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것이다.
그럼 평소에 사람들은 어떻게 인지하고 생각하는가? 그냥 감이다. 이러겟거니 저러겟거니
과거에는 감으로 판단하는 게 나았다. 경험으로 모든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로 오면서 지식과 정보가 많아지면서 경험과 지식을 결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서 경험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던 사람은 지식을 채운다고
하더라도 경험에 의지해 그냥 하던대로 일을 처리한다.
메타인지 과정은 이 결합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케팅에서 어떤 전략, 타깃을 어떤게 설정한다?
그냥 감으로 해왔다면, 그것을 수치화해 통계로 만드는 것이 인지이다.
그렇다면 예술에서도 메타인지가 필요할까?
예술을 만들어 내는 것은 이 두 가지, 통찰과 메타인지의 중간이지 않을까?
사람들이 알아보게, 분석하게,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감으로, 직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공법을 활용해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한 가지 직관을 통해 이야기를 구성하면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세분화를 안해도 느낄 수 있는 부분. 또, 세분화해야지만 알 수 있는 부분.
이야기가 성장하려면 세분화하며 직관적으로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