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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주 Mar 01. 2021

나는 사회적 동물이기 싫어서 떠났습니다.

#0 여행기 아니고 '사람기'를 쓰는 이유

[들어가기에 앞서, 이 글은 2020년 초 퇴사 직후 여행을 회상하며 쓴 글이다. 그 때 적었더라면 더 좋았을테지만 원래 사람일은 곱씹을수록 우러나는 법이니까. 게다가 코로나로 발이 묶인 지금, 여행을 떠올리는 일은 하나의 현실 도피가 되어버렸다. 어쩌면 1년이 넘게 지나버린 여행을 떠올리기에 지금이 적기가 아닐까? 싶어 다시 그 때를 떠올린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세상과의 연을 끊었다가 올 거야."

 인턴 기간이 끝나고,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며 친구들 앞에서 부르짖었다. 꿈의 직장이었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직후였다. 인턴 전환은 성공이었고, 전환 확정을 알려주기 위해 나를 따로 불러낸 팀장님께 나는 예고도 없이 퇴사하겠다고 밝혔다. 원인은 사람이었다. 자세한 사항은 노코멘트.


 그때의 나는  망망대해 위에서 엔진에 불이 붙은 경비행기를 조종하는 조종사였다. 밖으로 탈출하면 천천히 잠겨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상식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당장 불타는 비행기를 탈출하는 게 우선이었다. 회사를 그만두면 이력서부터 다시 써야 하는 막막한 상황이라는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회사에서 버티느니 이력서를 몇 백장이라도 쓰겠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퇴사를 했고, 열심히 술을 마시러 다녔다.

 술도 참. 술을 잘 하는 편이 아니라 술 맛이고 뭐고 하나도 모르는데도 이건 알겠더라. 회사에서 먹는 술이랑 친구들이랑 먹는 술이랑은 목넘김이 다르다.


 퇴사하면서 세운 계획은 이랬다. 반도를 탈출해서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자.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으니 아는 사람 없고 말 걸어줄 사람 없는 곳으로 떠나자. 거기서 사회생활로 지친 나를 달래고 오자! 벌어둔 돈으로 반 년에서 일 년은 근근하게 버틸 수 있다는 계산에서 나온 결론이었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 계획을 세웠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대학생스러운 꿈까지 안고! 하지만 잘 알려졌다시피,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계획이 엎어지는 사건의 복선이다.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에 생전 처음 겪어보는 일들이 생겼다. 누가 내 이름만 불러도 식은땀이 나고 손이 떨렸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심장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배부름이 느껴지지 않아 마라샹궈 한 판을 혼자 다비우기도 했다. (나중에 대학원생 친구한테 말하니까 그게 공황 증상이었단다.) 그 증상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사라졌기에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를 그만두고 삼 주쯤 지났을까. 그토록 그리던 백수 생활이 한 달도 이어지지 않았는데 마음이 불안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불안함. 불안함은 마음을 흔드는 것도 모자라 몸까지 난리를 치게 만들었다.


 마침 연말이었던지라, 또 괜찮은 회사의 인턴이 되었다고 알음알음 주변에 알려졌던 터라. 퇴사를 밝히면  놀라움과 경악 섞인 '왜?'가 돌아오곤 했다. 그때에는 그만둔 직후라 회사에서 겪은 일들을 우다다 털어놓았다. 그렇게 말하면 주변인들은 대부분 내 편이 되어주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응원은 고마운 만큼 무거웠다. 점점 내가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실감이 나기 시작했고. 불타는 경비행기와는 안녕했지만 나는 망망대해에 떨어진 것이었다. 차가운 바닷물이 속옷까지 스며들고 나서야 머리가 차게 식었다. 유명한 소설 첫 구를 따서 말하자면, 완전히 X됐다 싶었다.


 인턴을 시작하면서 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에 나한테는 이제 소속도 없었다. '어디의 누구입니다.'에서 '어디'가 사라진, 어느 곳의 누구도 아닌 '누구'가 된 것이다. 그래서 괜시리 위축되기도 했다. 아직 내 주변의 으-르신들은 무소속 젊은이에게 관대하지 못했기에. 이러려고 퇴사했나 자괴감 들고. 괴롭고.


 "이러다가 또 취업 준비하겠는데?"

 처음에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를 즐기려고 했다. 노는 겸, 힐링으로. 나는 나한테 힐링이 필요하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약해진 정신머리로는 길 가다 밟는 자갈로도 넘어질게 뻔했다. 그런데 회사는, 사회는 오프로드다. 기껏 힘들게 이력서 쓰고 자기소개서 쓰면, 이번에는 오래 버티고 싶었다. 건강한 멘탈에 건강한 직장 생활이 깃드는 법이지.


 문제는, 내가 우울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스무 해 넘게 살고 있지만, 정기적으로 스스로에게 놀라곤 한다.) 불안하고 우울해서 회피성으로 저지르는 일에 늘 끌려다니곤 했으므로 나는 제주도로 떠난 스스로의 미래를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었다.


 "내가 제주도에 내려가면, 중간에 면접을 보러 서울에 올라올 거야."

 물론 면접까지 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차치하고, 중요한 건 퇴사까지 하면서 마련한 힐링 기간에 돈 낭비 시간 낭비하면서 취준을 할게 뻔하다는 거다. 이왕 독한 맘먹고 퇴사했는데, 이 시기를 즐기지 않으면 후회할게 뻔하니까, 극약 처방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국경을 넘기로 했다!


 아예 한국을 벗어나기로 했다. 돈 낭비 시간낭비를 할 거라면 그 기준치를 훅 높여버리자. 손해가 커지면 억지로라도 붙어서 힐링하겠지. 그 마음으로 해외로 가는 티켓을 예매했다. 목적지는 치앙마이였다. 계획은 없었다.


 마침 치앙마이 한 달 살이를 하러 간다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은 이미 예약까지 해놨다기에 나는 그 친구들과 여행 끝 기간만 겹치게 3주 빠른 비행기를 찾았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결심한 그 날 기준으로 다다음주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침대 기차를 타고 치앙마이에 갔다는 후기가 너무 인상 깊어서 침대칸을 타려고 방콕인 방콕 아웃 비행기를 예매한 것도 충동적인 일이었다.


 제주도 한 달 살이보다 예산은 배로 뛰었지만, 인턴 마지막 월급으로 기쁘게 카드를 긁었다. 내 목적과 완전히 부합하는 여행지였으니 신나기도 했다. 외국인으로서 혼자 여행하기도 좋고, 온전히 혼자의 시간을 누리기 좋은 여행지. 사실, 목적지가 어디였든 그만큼 신났을 거다. 원래 사람은 충동적인 상상이 현실이 될수록 나사가 빠지는 법이거든.


 길고 긴 서론이었지만, 쨌든 사람이 싫어서 떠난 여행이었다. 나를 힘들게 만든 사람들이랑 연을 끊어버려야겠다는 도피 목적이 반,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의 동정 어린 시선에서 도망가야겠다는 사춘기 중2병 같은 생각이 반. 결국 나는 완전히 혼자가 되고 싶어서 짐을 꾸렸던 것이다. (물론! 한 달 살이 막바지에는 한국에서 오는 친구들이랑 같이 움직일 계획이었다. 너무 오래 혼자면 외로울 것 같다는 겁쟁이 마음도 저 어디 구석에 굴러다녀서.)


 그런데 정작, 여행에서의 매일매일은 인간관계의 연속이었다. 나쁜 사람이 꼬이면 좋은 사람이 나타나고. 이상한 사람인데 돌이켜보면 웃음이 나온다던가. 짧게는 대화 몇 번, 길어봤자 이삼일 알고 지낸 사람들이 거기서 먹고 보고 했던 것들보다 오래오래 기억에 남는 걸 보니 나도 결국은 사회적 동물이었다. 알던 모르던 나랑 한 마디 섞어주고 웃어주면 기분 좋고 행복하고. 나도, 어쩔 수 없는, 사람인가 봐!


 혼자가 스트레스 덜 받고, 계획 없이 떠돌아도 부담 없고. 사람이 간절해서 찾아 헤맨 적은 없지만, 이상하게 사람과 엮이면 재밌더라. 그 기억을 오래 남기고 싶어서 여행기 아닌, '사람기'를 남긴다. 사람이 싫어서 떠난 여행이었지만, 나한테 남은 기억은 거의 사람뿐이라서. 사회에서 적응하기 힘들어 떠난 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회가, 다시 나를 원래의 사회와 맞닿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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