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일부러 걷는 가시밭길

코리올라누스: 세기의 라이벌 (2011)

by Albert 이홍규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54362


셰익스피어가 1605년과 1608년 사이에 공개한 <코리올라누스>는 비슷한 시기에 집필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작가의 마지막 비극에 속한다.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주인공들이 가히 세기의 염문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역사적으로 인지도 있는 사랑을 나누었기에 그를 주제로 만든 연극 자체도 유명해졌다.


그에 비하면 기원전 5세기, 아직 국가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로마를 배경으로 한 <코리올라누스>는 주인공이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 아니라서 인지, 셰익스피어의 작품군 중에서도 유명세가 약한 편이다. 영국의 유명 리서치 펌인 YouGov에서 10,000명의 영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그의 공인 작품집 <퍼스트 폴리오> 전체 36개 작품 중 <코리올라누스>는 27위에 위치해 있다 (출처).


하지만 <코리올라누스>의 상대적으로 미약한 인지도는 그 작품성에 대한 평과 반비례한다. 영국의 시인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T. S. 엘리엇은 그의 비평집인 <성림 (The Sacred Wood)>에 실려 있는 <햄릿과 그의 문제들>을 통해 <코리올라누스>를 셰익스피어 비극의 집대성으로 평가하였다 (출처).


분명히 <햄릿>은, 대단히 흥미롭고 "몹시 다루기 힘든" 주제와 놀라운 작시법이 혼재되어 있는 <자에는 자로(Measure for Measure)>와 같이 작가의 인생 중 고난의 시기에 집필되었다 보아도 무방하며, 이후의 비극적 성공들이 <콜리올라누스>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코리올라누스>는 <햄릿>처럼 말초적 흥미를 끌지 않을 수는 있지만,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와 함께 셰익스피어의 가장 확실한 창작적 성공이다. 그리고 아마 <햄릿>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이 작품이 말초적으로 흥미롭기 때문에 예술작품으로 여기지,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말초적으로 흥미롭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굳이 말하면 문학계의 "모나리자"와도 같다.

출처: T. S. 엘리엇, <햄릿과 그의 문제들> (1920)


<코리올라누스>를 향한 평가가 T. S. 엘리엇을 위시한 평론가와 셰익스피어의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갈리는 이유는, 다른 비극에 비교하여,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사유가 독자나 관객들에게 직관적으로 와 닿지 않는다는 이유가 크다. 주인공인 가이우스 마르티우스 코리올라누스는 "4대 비극"으로 일컬어지는 주인공들처럼 독백이 많지도 않고, 심지어 독자가 그의 사상과 결정을 이성적으로는 이해하더라도, 그의 고고하고 비범인(非凡人)적인 태도는 감성적으로 공감하기 힘들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대중에게도 인기가 많은 작품은,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주인공의 성격적 결함, 즉 맥베스의 야망, 오델로의 의심과도 같이 주인공이 몰락의 길을 걷는 이유가 말초적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보면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모두 왕, 왕자, 장군, 영주라는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이유는, 그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어야지만 순간 충동적으로 내린 결정이 큰 파장으로 번지는 과정을 보여주기 용이해서라는 해석도 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코리올라누스>는 고대 로마 공화정을 살아가는 용맹한 장군이 지정학적으로 처한 상황을 기반으로 성격을 형성하고, 그 성격이 몰락의 길로 넘어가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보여준다. 즉, 비극인데도 불구하고 독자가 비극적 감상을 느끼기 어렵게 한다.


주인공 코리올라누스가 작품 내에서 보여주는 사상과 행적은, 20세기 이후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인 민주주의와 정반대에 서 있는 파시즘에 비교될 수 있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이 작품을 집필했던 17세기에는 파시즘이라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 나치 독일에서는 <코리올라누스>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그 주인공을 "진실된 영웅이자 총통(Führer)"으로 평가하고,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대중을 "오도된 인민, 거짓된 민주주의 … 약자들"이라고 주석을 달아 일종의 프로파간다 물로 출판한 정황을 보면 이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얼마나 어려운지 피상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출처).


<코리올라누스>가 품고 있는 작품 내, 외적인 난해함은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 중에서도 가장 늦은 영상화로 이어졌다. 영국의 공영방송 BBC에서 두 차례 TV 영화로 방영되었지만, 2011년 레이프 파인즈가 직접 감독과 주연을 맡은 작품을 공개하기 전까지는 단 한 번도 극장용 영화가 제작된 적이 없었다.


초기 로마의 계급 전쟁

레이프 파인즈 (코리올라누스 역), <코리올라누스> (2011)

역사적 코리올라누스의 삶은 리비우스와 플루타르코스 등 고대 역사가의 기록에 등장한다. 다만 현대의 역사가들은 코리올라누스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고 있는 편이다 (출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따르면 가이우스 마르시우스는 기원전 493년, 젊은 군인으로 당시 로마 공화국의 남쪽에 있던 볼스키 족 세력권에 속한 코리올리(Corioli) 공략전에 참전하였다. 로마 군대는 수적인 열세에도 불구하고 가이우스 마르시우스의 용맹한 활약으로 인해 볼스키 군대를 코리올리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하였다. 여기서 무공을 인정받은 가이우스 마르시우스는 도시의 이름을 딴 "코리올라누스"라는 이명을 받게 된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가이우스 마르시우스는 본인이 얻게 된 공보다, 본인의 모친을 자랑스럽게 했다는 사실을 더 기뻐했으며, 어머니가 지정해준 여인과 결혼하고, 결혼 후 아이를 낳은 이후에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효자였다.


코리올라누스의 인생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가 무공을 세웠던 기원전 493년의 제반사항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시 로마 공화국에서는 집정관 및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귀족(patricius) 세력과, 평민(plebs) 세력의 불화가 심했는데, 기원전 494년에는, 늘어나는 조세 항목과 빚을 참지 못한 평민 세력이 총파업을 하게 된다. 두 세력은 1년 정도의 협의기간을 거쳐 평민을 대변할 수 있는 보직인 호민관(Tribunus)을 제정하고 선출하며, 평민에 이로운 다양한 정책이 세워지게 된다.


기원전 492년, 로마에 기근이 들었을 때, 공화국은 시칠리아 섬의 시라큐스에서 식량을 수입해 왔는데, 원로원에서 구휼미를 어떻게 배분할지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호민관이 선출된 이후 공화국의 기조는 평민을 위한 정책이 먼저였으며, 때문에 귀족으로만 이루어진 원로원에서도 구휼미도 평민에게 먼저 배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목소리가 높았다. 전쟁에서의 공으로 원로원 참가 자격을 얻게 된 가이우스 마르시우스는 이러한 의견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는데, 플루타르코스의 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웅변을 하였다.


"평민들이 먼저 배분을 받는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지 않은 군 복무, 국가를 포기한 파업, 원로원에 대한 중상모략이 고마워서는 아니겠지요. 오히려 그들은 귀족들이 두려워서 굴종하고 평민들에게 선물을 주고 양보하며 비위를 맞추려는 모습을 보고 본인들의 반항심을 키울 것이며, 투덜댐과 폭동을 멈추지도 않을 것입니다. 때문에 평민에게 먼저 구휼미를 배분하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우리가 만약 지혜롭다면, 호민관이라는 직책도 없애야 합니다. 호민관의 존재는 집정관의 권위를 무효화하며, 이 도시를 반으로 나눕니다. 우리 도시가 예전처럼 하나의 도시가 아니라 두 개의 세력으로 잘린 상태가 계속된다면 우리는 절대 함께 성장하지 못할 것이며, 공감대도 형성하지 못하고, 상대방에 대한 괴롭힘과 말다툼을 멈출 수 없을 것입니다."

출처: 플루타르코스, <코리올라누스의 생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플루타르코스라는 명문장가의 손을 거쳐 나와서일까, 21세기에 읽어도 몇 개의 개념만 치환한다면, 충분히 현대의 정치인이 할 법한 발언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뼛속까지 귀족주의자였던 코리올라누스는 결국 호민관들에게 고발을 당해 재판에 서게 되지만, 재판 당일 참석하지 않았으며, 바로 유죄로 판단되어 로마에서 추방을 당한다.


로마를 떠난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 세력으로 망명하여 볼스키의 장군인 아우피디우스와 함께 본인을 버린 로마를 향해 창을 든다. 로마의 앞마당까지 진격한 코리올라누스는 일부러 귀족들의 영지는 피하고 평민들이 소유한 건축만을 파괴했다. 그런 코리올라누스를 멈춘 것은 로마에 남아있던 그의 모친, 부인, 그리고 두 아들이었는데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코리올라누스에게 고향에 대한 공격을 멈출 것을 호소했고, 코리올라누스가 동의하면서 로마-볼스키 전쟁은 끝이 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내의 코리올라누스의 일화는 고대 로마에 역사상 최초의 공화정과 대의민주주의 사회가 세워진 계기와 그를 둘러싼 계급 간의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으며,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 또한 이야기의 줄기는 역사적 인물의 행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셰익스피어가 집중하는 부분은 그의 사상에 대한 인간적 이해였다.


사회적 계급 갈등의 생성과 발전

브라이언 콕스 (메네니우스 역), <코리올라누스> (2011)

코리올라누스의 몰락은 귀족주의적 사상에서 비롯되는데, 이는 당연히 대부분 귀족이 아니었던 셰익스피어 당대의 관객들이나, 현대의 관객들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셰익스피어는 플루타르코스가 귀족-평민 간의 갈등으로 묘사했던 코리올라누스와 로마의 민중과의 관계에 군인과 일반인의 관계라는 해석을 추가했다. 작중 코리올라누스의 가장 믿을만한 친우인 메네니우스는 코리올라누스의 고집스러움을 다음과 같이 변호한다.


메네니우스:
이것을 생각해보시오. 그는 전쟁터에서 자라왔습니다.
칼을 뽑을 수 있던 나이부터 말입니다. 때문에 교육이나,
복잡한 언어에는 익숙지 않습니다.

출처: <코리올라누스>, 3막 1장
상황: 코리올라누스는 볼스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평민들의 투표로 집정관에 선정되었지만, 군중은 곧바로 호민관들의 꾐에 빠져 투표를 무효화한다. 메네니우스는 그런 군중들에게 분노하여 폭언을 한 코리올라누스를 변호한다.


단순히 계급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일종의 선민의식처럼 보일 수도 있는 코리올라누스의 고집스러움은,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의 PTSD와도 같은 정신상태로 이해를 해보면 때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는 개연성을 지니기 시작한다.


호메로스는 <오디세이아>에서 10년의 전쟁과 또 다른 10년의 귀향길을 보내고 20년 만에 고향 이타카로 돌아온 오디세우스와 그를 유일하게 알아보고, 마지막 남은 힘으로 한번 꼬리를 치고 죽은 충견 아르고스를 통해 귀향한 군인이 느끼는 회한을 그려낸다. 아르고스의 죽음 하나만으로도 이타카를 더럽히고 있던 식객들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그의 정신적 상태가 이해가 될 정도로 귀향한 군인이 느끼는 상실감은 시대를 관통하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현대에 와서는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 (2008),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아메리칸 스나이퍼> (2014) 등, 많은 명감독들이 그려내는 수정주의적인 시선으로 전쟁 영웅들을 그려낸 반전 영화들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들은 전쟁터에서 몸과 영혼 모두가 피폐해지지만, 고향에서는 영웅으로 대접받는다. 하지만 그들이 본 전쟁터의 참혹함은 고향에 남아있던 가족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이해시킬 수 없으며, 그들은 고통과 상처를 지닌 채로 평생을 살아간다.


셰익스피어의 코리올라누스는 귀족 이전에 군인이며 전쟁 영웅이다. 그가 평민을 이해하지 못하고 평민이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에는 전쟁터의 참혹함을 직접 보았는지에 대한 경험 여부가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까지는 셰익스피어의 의도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이해하고 현대적인 해석을 더하면 다분히 정치적인 의미가 함유된 결론에도 도달할 수 있다. 리서치 기관인 갤럽이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2009년에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나이를 불문하고 군 복무 경험이 있는 모든 설문 대상자들은 공화당, 즉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출처). <코리올라누스> 내에서 그가 보여주는 정치관은 계급이 존재하는 귀족 옹호 성향이었지만, 이를 현대 북미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 및 대중의 자유로운 발언권에 대한 불신 등, 공화당 지지자들의 정치관과도 일치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물론 셰익스피어는 절대 왕정 시대에 살아간 인물이며, 이러한 해석이 작가가 의도한 바라고 해석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하지만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그가 그려낸 인물상이 시대를 넘어선 개연성을 지녔다는 평가는 가능하다.


셰익스피어가 그려낸 코리올라누스는 본인의 군 경험과 귀족적 배경이 복합적으로 합쳐져 도저히 일반 대중들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자신의 신념을 꺾거나 대중들과 타협을 하기보다는 일부러 가시밭길을 가는 행보를 보인다. 작중에서 코리올라누스의 행보를 읽어가다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그의 사고가 조금만 더 유연했어도, 조금만 타협했더라도, 조금만 친우 메네니우스의 말을 들었더라도 사태가 악화되지는 않았을 것이기에 이러한 아쉬움이 더 극대된다.


다른 셰익스피어 비극의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순간의 실수로 인해 모든 제어가 사라져 버리는데 비해, 코리올라누스에게는 지속적으로 선택권이 주어지며, 그때마다 일말의 타협도 하지 못하는 코리올라누스의 비극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는 것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다른 길이 있는데도 의도적으로 고난을 택하는 주인공을 범인은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보편성의 사고 실험

레이프 파인즈 (코리올라누스 역), <코리올라누스> (2011)
코리올라누스:
이 개 같은 무리들아! 너희의 혐오스러운 입냄새는
마치 썩어가는 늪과도 같구나. 내게 너희의 의견의 가치는
매장되지 않은 시체들의 악취일 뿐. 내가 너희를 추방한다!
너희들은 이 곳에 남아 계속 우유부단하게 살아가기라!
모든 하찮은 소문들이 네 심장을 두려움으로 채우리라!
네 적들이 깃털로 장식한 투구를 쓰고 쳐들어올 때,
나락으로 떨어지기를! 같잖은 힘을 남겨서
너희를 지켜줄 수호자들을 추방하기를; 언젠가
네 멍청함이, 현실로 닥치기 전에는 예상조차 못하기에,
너희를 혼자 남겨 지켜주지를 못해,
네 적들이 닥쳐오는 순간 가장
힘없는 포로가 되어 어떤 적국이
싸우지도 않고 이기기를! 너희들에 대한 혐오와 함께,
나는 너희와 이 도시에 등을 돌린다.
다른 곳에도 세상이 존재하기에.

출처: <코리올라누스>, 3막 3장
상황: 호민관들의 꾐에 빠져 본인을 추방하려는 재판에 모인 군중들을 저주하며 자의로 로마를 떠나는 코리올라누스.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다 보면 지겨울 정도로 자주 보게 되는 개념이 "보편성"이다. 영문학자 에드워드 윌슨-리 작가는 이 대문호의 작품들이 실제로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부족들을 상대로 연극을 상영하고 그들의 반응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책보다는 연극으로 상영되었을 때 공감대가 훨씬 컸는데,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아프리카 정치 흐름 사이의 연결성이 돌출되는 부분에서 보편성이 수립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 (출처).


영국의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RSC) 출신 배우 중 대중적으로도 대성하는 배우들은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가지게 되면 본인들이 직접 셰익스피어 연극의 영상화를 연출하거나 제작하기도 한다. 이러한 영상화 중 특히 흥미로운 종류가 바로 원작의 대사를 살린 채 배경을 완전히 바꾸는 프로덕션이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간달프로 유명한 이안 맥켈런 경은 리처드 론크레인 감독과 함께 1995년 <리처드 3세>를 영상화하였는데,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살렸지만 무대를 1930년대 파시즘에 물든 가상의 영국으로 바꾸었다.


RSC 출신은 아니지만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유명세를 가져다준 1996년의 <로미오 + 줄리엣> 또한 원작의 대사를 살린 채 현대 이탈리아의 마피아 극으로 무대를 바꾸었으며, 바즈 러먼 감독은 자칫 극의 흐름을 무겁게 만들 수 있는 대사에 생동감을 불어넣기 위해 역동적인 카메라 워크와 빠른 컷 편집을 사용해 연출을 하였다.


셰익스피어의 대사들은 현대에 와서는 영어를 원어로 사용하는 북미 출신이나 영국인들이 들어도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고풍적인 표현이 많다. 때문에 영미권 밖에 존재하는 영화 팬들에게는 왜 이러한 시도가 이루어지는지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원작 대사를 살리고 시대와 배경을 바꾸는 셰익스피어 영상화는 일단 앞서 말한 시대와 장소적 보편성을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쉰들러 리스트>의 아몬 괴트 역으로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은 레이프 파인즈는 이후에도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M. 구스타브 역으로 영화사에 남을 배우로 자리매김하였는데, 그는 사실 영국의 왕립 연극학교(Royal Academy of Dramatic Art), 로열 내셔널 극단 (Royal National Theatre, RNT), RSC를 모두 거친 영국 연기계에서는 성골 중의 성골이라고 불러도 될만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의 감독 데뷔는 그 인지도에 비해 상당히 늦은 2010년이었는데, 중증 셰익스피어 마니아답게 대문호의 작품 중 가장 인지도가 떨어지는 <코리올라누스>의 영상화였다.


원작의 대사와 서사 진행을 그대로 살렸지만, 파인즈의 <코리올라누스>의 시대적 배경은 영상화가 이루어진 2010년대의 현대로 보이며, 그 무대는 동유럽 어딘가로 보이는 "자칭 로마라는 장소(A Place Calling Itself Rome)"로 옮겨졌다. 아마 원작 대사를 그대로 살린 영상화 중 가장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이자 주연을 동시에 맡은 레이프 파인즈는 고대 로마의 느낌을 백분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동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구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2010년대에 와서도 독재에 시달리고 있거나, 국가적 안정을 찾지 못하였는데, 이는 원작이 아직 국가의 형태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고대 로마를 배경으로 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다. 또한 원작에서는 민중간의 대화로 표현되는 코리올라누스의 인물 상이나 배경 설명을 TV 앵커들 뉴스 간의 대화로 연출하면서 현대의 관객들이 보아도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상황을 만들어낸다.


추가적으로 "자칭 로마라는 장소(A Place Calling Itself Rome)"라는 배경 설명은 1973년 <코리올라누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존 오스본 작품의 제목으로, 그에 대한 일종의 오마쥬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유일하게 현대에 와서도 로마를 국가명에 사용하고 있는 루마니아, 그리고 동유럽을 떠올리게 한다.


코리올라누스의 촬영감독은 배리 애크로이드로, 영국의 켄 로치 감독과 오랜 협업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애크로이드 감독은 곧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유나이티드 93>, <그린 존>, <캡틴 필립스> 등을 촬영하였으며, 앞서 언급된 캐서린 비글로 감독의 <허트 로커> 또한 촬영을 맡았다. 배리 애크로이드 촬영감독은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협업을 통해 유명해진 핸드헬드 기법을 <코리올라누스>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는데, 이는 양날의 검으로 보인다.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살렸기 때문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진행을 핸드헬드를 통해 긴장감을 끌어올리지만, 반대로 독백이나 무게 있는 대사들이 독자에게 여운을 남길 기회를 줄인다.


레이프 파인즈는 본인 연기 인생의 내공을 모두 끌어올려, 심지어 관객이 대사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표정과 강세, 음률만으로도 내용이 이해가 가는 어마어마한 연기를 펼치는데, 이러한 대사 소화력 때문에 가끔씩은 집중도를 떨어뜨리고 피로도를 높이는 핸드헬드 촬영이 아쉬울 때도 있다. 앞서 촬영과 미술적인 부분을 영리하게 잘 골랐다고 평가했지만, 이 영화 <코리올라누스>는 곧 레이프 파인즈이며, 레이프 파인즈가 연기한 코리올라누스가 이 영화의 전부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앞서 설명했듯이 <코리올라누스>는 심지어 작품이 집필된 17세기부터 현대까지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 가장 인기가 없었고, 가장 덜 알려진 작품 중 하나였다. 그런 주인공을 공감되게 연기하고 연출한 레이프 파인즈의 영화적 역량에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낼 뿐이다.


제라드 버틀러 (아우피디우스 역), 레이프 파인즈 (코리올라누스 역), <코리올라누스> (2011)

코리올라누스의 라이벌 아우피디우스를 연기하는 제라드 버틀러는 본인의 스코틀랜드 억양으로 셰익스피어 대사를 소화하는데, 초반에는 이 부분이 거슬렸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영화 <코리올라누스>에서 코리올라누스와 아우피디우스는 이웃이자 라이벌인 로마와 볼스키를 대표하는 장군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대칭점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코리올라누스는 로마에서 추방된 후 볼스키 수도에 잠입하여 아우피디우스를 찾아가는데, 그는 먼발치에서 본인과는 다르게 시민들을 다정하게 대하고 허물없이 어울리는 아우피디우스를 본다. 코리올라누스는 뿌리부터 귀족이며 타인의 위에 군림하지만, 아우피디우스는 본인의 동료들과도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다. 이러한 각도에서 보면, 레이프 파인즈가 보여주는 귀족적인 퀸즈 잉글리쉬 억양은 제라드 버틀러의 노동자스러운 스코틀랜드 억양과 대비되어 내용적으로도 유의미하고 은유적인 차이를 가지게 된다.


브라이언 콕스 (메네니우스 역), <코리올라누스> (2011)

그 외에도 영국의 베테랑 여배우 바네사 레드그레이브가 연기한 코리올라누스의 모친, 그리고 원톱 조연에 오르기 직전에 있는 2010년의 제시카 차스테인의 연기 또한 모두 훌륭하지만, 가장 눈에 띄는 연기는 브라이언 콕스의 메네니우스였다. <트로이>의 아가멤논, <본> 시리즈의 애벗 등 깊이 있는 악역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콕스이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의 가장 든든한 우방이자 이상과 현실 사이 줄타기를 하면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정치가로 그려진다. 셰익스피어는 코리올라누스의 몰락 때문에 이 작품을 비극으로 분류했을지 몰라도, 보통의 관객에게 이 영화는 메네니우스의 비극이라고 해도 거북하지 않을 정도로 그의 역할은 이 영화에 공감이 가는 인간성의 자리를 만들어준다.


<코리올라누스>는 타협하지 못하는 인물의 비극이다. 그가 가진 이상적인 귀족 정신은 그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그럴 때마다 그의 신념 및 고집은 더욱 단단해지며, 결국은 그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의 이상은 당대에는 고향에 비수를 꽂는 역적의 모습으로 구현되고, 현대에 와서는 파시즘 적으로 해석되었지만, 셰익스피어가 그려내는 코리올라누스는 이상주의자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코리올라누스와 가장 흡사한 근대사의 인물은 특히 그들의 방법론이 군사적이었다는 점에서 남미의 국부 시몬 볼리바르, 또는 21세기의 정치적 스펙트럼에서는 완전히 반대에 있지만 체 게바라가 떠올려진다. 이들에게는 이상적 가치가 현실적 고난보다 더 중요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레이프 파인즈의 <코리올라누스>에는 이와 같은 고집스러움이 느껴진다. 1985년 <십이야> 무대로 셰익스피어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영화와 무대를 오가며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연기하고 있다. 2018년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를 통해 다시 무대로 돌아온 그는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 수록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말을 걸어오는 느낌이 드는데, 아마 삶의 복잡다단함과 선택에 대한 시야가 넓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라고 이야기한다 (출처). 400년 전에 쓰인 연극 대사를 그대로 연기하겠다는 결정은 이러한 원작에 대한 존중과 고집스러운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레이프 파인즈가 <코리올라누스>를 첫 감독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타협하지 않는 주인공에 대한 일련의 공감과 연민을 느껴서가 아닐까 생각된다.


셰익스피어 영상화 한줄평:

주제와 연출을 관통하는 비타협적인 귀족주의적 셰익스피어 철학




맺는 말: 번역에 관하여

셰익스피어 작품의 일부분을 직접 한글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약강 5보격(iambic pentameter)이라 불리는 운율을 지닌 운문(verse)인데, 운율까지 살리지는 못하지만, 최대한 행바꿈을 지킨 형태로 번역합니다.

이 글에서는 번역된 대사가 상당히 길어서 원문을 부득이하게 삭제합니다.

MIT에서 호스팅 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원서를 번역 대상으로 사용합니다.

<코리올라누스> 원서: http://shakespeare.mit.edu/coriolanus/full.html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