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상

요리

by 참개


나는 20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혼자 살았다. 대학을 다니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여 잠깐씩 할머니 댁이나 이모댁, 친구집에 얹혀살기도 했고, 기숙사에서도, 학교 앞 좁은 원룸에서 생활해본 경험도 있다. 취업을 하고 난 뒤엔 뒤늦게 서울로 올라온 동생들과 함께 집에서 생활했지만, 거의 룸메이트 수준으로 지냈기에 혼자 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무튼 성인이 된 이후론 줄곧 혼자 지냈기에 서울로 오기 전 부모님의 보호 아래 당연시됐던 기본적인 식단이나 빨래, 청소 등은 내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고, 설상가상(?)으로 고양이까지 중간에 합류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게을리 했다간 온 집이 고양이털로 휘날리는 불상사가 발생했다.


청소 빨래야 군대때 습관이 들기도 했고 큰 난이도를 요하는 것이 아니라 귀찮음과의 싸움이기 때문에 일어나서 해버리면 그만이었으나, 요리는 조금 달랐다. 나는 살면서 요리에 무관심했고 관심을 쏟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학교 앞에 살아서 가까운 거리에서 저렴하게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이 제대로 해먹을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요인이었다 하더라도, 단순히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요리하는 재미'를 특별히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집에서 먹을때면 대부분 배달이나 즉석요리음식에 의존했고, 이따금씩 해먹는 볶음밥이나 찌개는 한 끼 때우기 위한 목적에 충실했기에 정성을 쏟아 만드는 것은 사치였다. 당연히 밑반찬도 없거나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 정도가 전부였다. 엄마가 언젠가 "요리는 종합예술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릴적부터 일관되게 미술에 젬병인 나는 어쩌면 소질이 부족했는지도, 그래서 그 분야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에게 큰 생활의 변화가 찾아왔다. 다름아닌 결혼을 하게 된 것이다...!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생활은 내가 살아온 1인 가구 기준의 거의 모든 것들을 확장시키고 변모하는 과정을 필요로 했다. 다행히 아내와 나는 생활 템포나 방향의 결이 같았기에 별다른 의견대립이나 마찰 없이 함께하는 신혼 일상을 만들어갔다. 살다보니 어느정도 가사의 분담체계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아내는 손재주가 좋아 웬만한 요리는 뚝딱뚝딱 잘 만들었기에 요리는 아내가, 뒷정리는 내가, 청소나 빨래는 같이 하거나 좀 더 여유있는 사람이 더 분담하는 것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던 와중 문제가 발생했다. 저녁부터 아내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그 다음날 아침엔 더 심해진 모양이었다. 물론 얼마나 심각했는지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아내가 자고 있는 주말 아침에 이따금씩 시간을 내어 게임을 했던 나는 그날 오전도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아내는 힘든 몸을 이끌고 나와 점심을 대강 만들면서 나에게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다. 당시의 나는 아내의 그런 메시지를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몸이 얼마나 안좋은지 알게되고 그녀의 생각들을 같이 나눈 후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얼마나 무관심했고 야속했는지 깨달았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는 내 머릿속에서 요리는 아내의 영역이라고 구분짓고 내가 할 수 있는 선 안에서 나름의 정성을 쏟았던 것이다. 곧잘 하는 것이라고 해서 어렵지 않고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내 지극히 주관적이고 짧았던 생각도 한층 더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날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한 일시적인 점수따기가 아니라, 그녀에게 요리에 대한 부담을 지우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앞으로는 내가 주걱과 젓가락을 들고 부족하지만 요리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제대로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쓰레기를 양산해내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도 분명 존재했지만(물론 이 걱정은 지금도 한다), 일단 쉬운것부터 시작해보자 하는 생각에 망할 수 없다는 제육볶음과 소불고기같은 것들부터 김치찜이나 두부김치와 같은, 비교적 난이도 낮은 음식들의 레서피들을 유투브와 네이버로 틈틈히 보며 따라했다.


(처음 만들어본 국물이 실종된 제육볶음. 제육불패라더니 참패했다.)


다행히 인터넷에 친절하게 조리법을 안내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고, 만들어 먹을 때마다 아내는 칭찬과 함께 잘 먹어주었다. 아마 간도 제멋대로고 부족한 부분이 많았겠지만 내 노력을 귀여워해줬던 것 같다. 솔직한 피드백과 함께 개선점을 이야기해달라고 할 때마다 큰 이견없이 맛있게 먹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여전히 솔직한 마음은 알 수 없다. 그저 내 요리 경험치가 빨리 쌓여 이런 걱정을 덜 하게 되길 바랄 뿐.


사실 그런 맥락에서 본의 아니게 요리 경험치를 두 배로 쌓고 있다. 배경인 즉슨 내가 요리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깨작거릴 즈음 아내는 지금 다니는 회사로 이직을 했고, 그 회사는 점심때 각자 도시락을 싸와서 삼삼오오 펼쳐놓고 먹는 문화가 있어서 나도 매번 사먹기엔 속도 더부룩하고 돈도 아낄 겸 같이 도시락을 싸가기로 했다.

초반에는 밑반찬들과 계란후라이 정도 만들어서 들려보냈는데, 이따금씩 누가 뭘 싸왔더라 하는 소식을 들으니 알 수 없는 열의가 불타올랐다. 마치 자식 소풍갈 때 부실하게 도시락 싸 보낼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것일까. 다른 도시락들과의 경쟁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신입인데 도시락이 너무 부실하면 좀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펼쳐진 도시락들 사이에서 가장 있어보이는 식단으로 점심시간을 앞서나가고 싶었다.

그래서 기상시간을 30분 앞당겨 아침에도 간단한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전날에 해놓을까도 고려했는데 그러면 아무리 데피더라도 맛이 많이 떨어질 것 같은 생각에 그냥 아침에 하기로 했다. 시간상 오래 걸리는 요리는 못해도 그때그때 할 수 있는 간단하지만 밥도둑류로 조금씩 더 들려보내고 있다.




그렇게 요리를 하게 된지 5개월정도 되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식단을 담당하며 요리해본 결과, 요리는 굉장히 과학적이고 수학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재료를 손질하는 형태나 조리하는 순서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거나 성공여부가 갈리고, 간을 잡거나 조미료를 넣을 때 같은 짭짤함이라도 어떤 것을 쓰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그리고 그 선택이 전체 맛의 결과에 어떻게든 발현된다. 정확한 수치의 식자재들을 수식과 같이 순서에 맞게 투입하면 정직하게 결과물이 나오는 그 과정이 어떻게 보면 당연하지만 나로써는 꽤나 신기했다.


동시에 요리는 문학적이고 예술적이기도 했다. 어떤 맛의 요리를 어떤 반찬들과 함께 올릴지, 어떻게 그릇에 담아낼지 생각해야 하는 것이 마치 한 폭의 예술 작품을 주조하는 창작행위와 같다는 생각이다. 한 번은 떡국을 끓인 적이 있는데, 만드는 과정에서 고명을 올려보고 싶어 제조법을 찾아보다 그것이 '이 음식은 당신이 처음 먹는다는 것'을 뜻한다는 글에서 단순한 색감을 돋우기 위한 차원이라 생각했던 음식의 부분부분도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 보진 않았지만 백종원 씨가 출연한 "스트리트푸드파이터"도 시간 날때마다 한 편씩 볼 계획이다. 지나가다 조금 봤는데, 한 음식이 탄생하기까지의 역사적 배경과 재료의 조탁 과정 등을 보여주는 것이 흥미로웠다.


무엇보다도, 직접 불앞에서 땀흘리며 만들어보니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준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따뜻한 경험이었다. 마치 손편지를 써서 주는 것처럼, 내 마음과 정성을 담아 상대 앞에 올려놓는 것이기에 맛있게 먹는 상대를 보고 있으면 정신없고 더웠던 요리의 수고로움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과 행복감이 느껴진다. 이 점이 어쩌면 내가 요리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가장 크고 주요한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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