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나무 아래서 차를 마신 날
혹독한 겨울을 버티다 보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습니다. 산책하기 딱 좋을 정도로 따뜻해진 날씨, 흐드러지게 핀 꽃으로 한껏 화사해진 거리 풍경, 두툼한 외투 대신 가벼워진 옷차림까지 봄이 되면 세상이 설렘으로 빼곡히 들어찹니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내 인생은 여전히 지나간 겨울처럼 춥기만 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움츠러듭니다.
이렇게 인생에 대한 생각이 많아질 때면 감성이 흘러넘치던 중학생 시절 본 영화의 제목이 생각납니다. 시리즈 물이었는데, 첫 편은 'Life is hard, だけど(그래도) happy', 였고, 다음 편은 'Life is hard, だから(그래서) happy', 였습니다. 인생은 힘들어도 행복하다에서 인생은 힘드니까 행복하다로 바뀐 걸 보며, 어린 나이에도 그 변화가 꽤 선명한 충격이었나 봅니다. 그 후로도 지칠 때면 인생이란 힘든 게 당연하고, 힘드니까 행복한 거라며 곱씹었습니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찾아보니 10년 뒤 마지막 편이 나왔었네요. 10년 뒤 나온 마지막 편은 'Life is hard, たぶん(아마도) happy'였습니다. 학생이었던 주인공들이 30대가 된 모습을 담았다고 하는데, 역시 어른이 되면 인생의 확신이 없어지는 걸까요? 지금의 저처럼요. 힘드니까 인생이지! 싶다가도 이렇게 힘든데 인생이 행복하긴 한가? 싶어지는 이런 마음.
아무튼 복잡한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저 또한 봄의 설렘을 느껴보기로 했습니다. 근처 공원에서 차를 한 잔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보통의 경우라면 집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테이크아웃해 벤치에 앉아 활짝 핀 꽃을 보는 것이 피크닉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굳이 깨지기 쉬운 다구를 천에 겹겹이 둘러싸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우고, 마실 찻잎을 소분해서 나가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짐이 참 많죠.
공원에 도착해서는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자리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습니다. 피크닉용 테이블 위로 작은 천을 깔고 개완과 숙우, 찻잔을 일렬로 늘어놓습니다. 소분해 온 찻잎을 꺼내 개완에 넣었습니다. 아, 보온병에 가져온 물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다구를 데우는 사치스러운 행위는 잠시 내려 둡니다. 개완 가득 물을 붓고 이내 숙우로 따라냅니다. 개완 뚜껑을 열어 젖은 잎의 향을 가볍게 맡습니다. 향긋한 차 향이 코끝을 스칩니다. 우러난 찻물을 찻잔에 조심스럽게 따르고, 후후 불어 한 모금 마십니다.
때마침 바람이 불고 벚꽃 잎이 비처럼 쏟아져 내립니다. 멍하게 보다가 다음번에는 꼭 영상으로 찍겠다며 다짐을 했습니다. 그 후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영상으로 남겼는데, 막상 보면 먼지가 날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뭐, 크게 상관은 없습니다. 제 눈으로는 그 찬란한 꽃비를 몇 번이고 보았으니까요.
맞아요. 보이는 모습이 얼마나 중요하겠어요. 중요한 건 본질이겠죠. 어른이 된 우리가 확신 없는 인생을 사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티크닉(tea-picnic)이라면서 굳이 깨지기 쉬운 다구를 가지고 공원에 나오는 제 모습을 보며, 카메라 렌즈 속에 나를 채우기 위함일까?라고 잠깐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카메라가 없는 상황이라도 저는 똑같이 다구를 싸들고 나왔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이 번거로운 행위가 지친 자신을 위로해 주는 확실한 수단이니까요.
우리가 인생에 확신이 없는 이유는, 인생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카메라 렌즈처럼 자꾸만 남의 눈을 빌려 나를 보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화려하게 핀 꽃을 보며, 살랑살랑 부는 따스한 바람을 맞으며, 꽃향 가득한 홍차를 마시고 있으려니 이 모든 고민이 무슨 소용인가 싶습니다. 일단 지금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으니까요. 봄날, 공원에서 차 한 모금이 주는 찰나, 이 순간을 행복이라고 느낄 수 있음이 바로 행복한 인생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