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마시며 내가 끊은 것

그리고 나를 알게 되는 순간들

by 이차분

오랜만에 서울로 놀러 갈 일이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티셔츠에 패딩을 껴입고 백팩을 메었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기분을 내고 싶어서 한참이나 입지 않은 코트와 각진 가방까지 꺼냈습니다. 가방을 꺼내다 보니 한쪽 구석에 나란히 놓여있는 향수가 보이더라고요. 오늘 일정을 가만히 머릿속으로 한번 체크해 보고는 오랜만에 향수를 들어 뿌렸습니다. 코 끝을 찌르는 짙은 향이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차를 취미로 삼은 지 5년 차, 제가 끊은 것이 있습니다. 바로 향수와 퍼퓸 핸드크림입니다.


티코스를 많이 다니신 분들은 꽤 보셨을 안내 사항이 있습니다. 향이 강한 향수나 핸드크림을 자제해 달라는 문구 말이죠. 차는 맛과 함께 향도 느껴야 하는데, 향이 약하고 섬세해서 아무래도 향수나 핸드크림 향에

묻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안 뒤로는 평소에 습관처럼 뿌리던 향수도, 기분전환 겸 사용하던 퍼퓸 핸드크림도 서서히 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습관처럼요.


생각해 보면 차를 마시면서 변한 것이 많습니다. 부드러운 차 맛에 익숙해져서 인지 그나마 마시던 디카페인 커피도 진하게 느껴져 멀리하고 있고, 요즘 핫하다는 팝업, 카페에 기어코 가보는, 그런 일도 줄었습니다. 그 시간에 새로운 찻집에 가는 편이 좋거든요. 밖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보다 집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하는 일이 더 즐겁습니다. 또 누군가와 1:1로 만나는 것을 상당히 부담스러워했지만, 차를 매개로 한다면 그저 설레는 일이 되어버립니다.


삶이 변한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한 일인데, 고작 취미 하나로 이렇게 쉽게 바뀐다는 것이 놀라울 때가 많습니다.


가장 크게 변한 건 나 자신을 보듬는 일이 일상처럼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고상하고 우아한 찻자리를 가지면서 '나 스스로에게 대접한다' 그런 느낌보다는, 오늘 나의 마음에 따라 다구를 꺼내고, 나의 입맛에 따라 차를 고르고, 나의 기분에 따라 찻자리를 가지면서 '나'에 대한 생각을 한번 더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를 자세히 들여다본달까요. 오늘의 나는 어떤 기분인지, 요즘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하다못해 지금 컨디션은 어떤지라도 확인하게 되거든요.


사실 저는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많지도 않고, 남의 시선을 크게 신경 쓰는 타입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대부분의 삶들은 나보다 남에 초점을 맞춘 시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왜 나는 저 사람처럼 못하지?'라는 생각을, 나라는 존재를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며 작고 하찮은 존재로 만들고야 마는, 그런 시간들요. 나는 나로 살아가야 하는 걸 알지만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 또 잣대를 들이밀고, 또다시 후회를 반복하면서요.


차를 꾸준히 마셔온 5년이란 시간 동안 찻자리를 이어오며 변화한 건지, 그저 5년이란 시간이 흘러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나 자신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순간이 많아진 것은 확실합니다. 아, 물론 끝도 없는 나락으로 나를 밀어내는 그런 날도 당연히 있지만, 이 조차 '살다 보면 그런 생각할 수 있지'라고 다독여 줄 수 있게 되었거든요.


앞으로 차를 마셔나가면서 저는 또 어떤 변화를 맞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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