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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채 Feb 29. 2016

엄마와 함께 벳푸, 가마도지옥

예순 일곱 엄마와 서른살 딸의 여행 이야기

차가운 겨울 공기를 헤치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하얀 수증기와 목이 따끔거릴 정도로 시원했던 사이다가 기억에 남는, 지옥이라기엔 너무 앙증맞은 가마도지옥. 2015년 겨울, 엄마와 엄마 친구분들 몇 분을 모시고 가마도지옥에 갔다. 가마도지옥은 벳부 패키지 일정에 들어있는 관광지였다. 일본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관광지다운 관광지에 간다는 생각에 엄마는 아침부터 한껏 기분이 좋아보였다. 숙소에서 가마도지옥으로 가는 짧은 시간동안 버스 창문 밖으로는 평화로운 벳부의 모습이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곳은 온천이 나는 곳이라는 말에 엄마는 '꼭 산불이라도 난 것 같다'며 놀랐는데 안그래도 큰 눈이 더 동그래져서 꼭 소녀같았다.

온천의 천국 벳부는 일본 전역의 온천 도시를 통틀어 가장 많은 원천을 가진 곳이다. 이곳에는 모두 9개의 지옥온천이 있는데, 오래전부터 뜨거운 증기가 계속해서 뿜어져 나왔다는 이유로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여진 것이란다. 가마도지옥은 9개의 지옥온천 중에서도 첫 손에 꼽는 곳이다. 원천의 본래 모습 그대로 방치되어 있는 몇몇 지옥들과 달리 가마도지옥은 꽤나 앙증맞은 모습을 하고 있다.

온몸이 불타오르는 듯 붉은 색을 휘감은 무시무시한 형상의 도깨비가 서 있는 모습이 지옥보다는 작은 온천 테마파크 같은 느낌. 이곳에서 나는 온천수는 80~90도. 가마도지옥이 몸을 담그는 온천이 아닌 보기만 하는 온천이라는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곳에는 몇 개의 원천이 있는데, 뿜어내는 물의 온도와 성분에 따라 온천의 물빛이 다르다. 붉은 진흙을 토해내는 것 같은 곳도 있고, 코발트빛 푸른 물, 뽀얀 우유같은 석회물까지 색색깔의 온천이 참 예쁘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그 모습에 따라 바다지옥, 피지옥, 스님지옥같은 이름을 붙여뒀다. 직원이 보여주는 짧은 쇼는 온천을 구경하는데 작은 재미를 더한다. 담배를 뻐끔뻐끔 태우다가 그 연기를 용출 구멍에 대고  불면 순식간에 하얀 연기가 머리 꼭대기까지 피어오르는 게 바로 그것.

한쪽에는 몸에 좋은 유황온천물에 족욕을 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고, 그 옆으로 온천수를 마셔볼 수 있는 음수대가 있다. 닭똥냄새같은 유황 냄새가 생각보다 역해서 막상 바가지에 받은 물을 마실 엄두는 쉽게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앞에 붙은 '10년이 젊어진다'는 글을 보면 반드시 마셔야만 할 것 같은 오기가 생긴다. 엄마는 스무살, 나는 열살 어려졌다. 어려진 기념으로 물바가지를 들고 인증사진을 찍었다. 얼마전까지 갑상선기능항진증을 앓느라 부쩍 야워었던 엄마는, 요즘 다시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중이다. 보가 좋은 모습으로 찍힌 사진 속 모습에 조금 안심이 됬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려왔다. 온천물 한 모금이 정말로 엄마의 젊음을 되돌려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전에는 봄가을에 열리는 대제 때 가마도지옥의 수증기로 지은 밥을 신에게 바쳤다고 한다. 증기로 지은 밥을 맛볼 수는 없지만 온천 증기로 찐 달걀인 온천달걀, 온센다마고는 언제나 맛볼 수 있다. 맛있게 먹으려면 노른자에는 쯔유를, 흰자에는 소금을 뿌려야한다. 계란을 먹다 목이 막힌다는 엄마의 말에 재미있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구슬 사이다로도 불리는 일본 사이다 라무네를 한 병 사왔다. 뚜껑을 열고 손바닥으로 탁 내리쳐 구슬을 떨어트리는 모습을 보여주니 신기하다며 연신 박수를 치는 엄마. 기분이 좋아진 엄마 덕에 계란을 한 알 더 얻어먹었으니 손바닥 얼얼해진 건 티내지 않는 걸로.


| 벳푸 가마도지옥 かまど地獄
- 찾아가는 법: JR벳푸역에서 간나와행 버스를 타고 간나와(벳푸온천지구)에 하차
- 입장료: 8지옥 통합 관람권 성인 ¥2,100, 가마도지옥 개별입장료 성인 ¥400
- 홈페이지: http://www.beppu-jigok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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