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마을에서 온천 안하고 온 이야기
구로카와(黒川) 온천 마을의 첫인상은 한적한 시골마을이었다. 누구 하나 입을 떼지 않는다면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조용한 마을. 그마저도 도로에서 한참, 좁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만 도착할 수 있는 그런 마을.
유후인에서 출발한지 얼마쯤 흘렀을까. 패키지 관광객으로 와글와글한 관광 버스 구석 자리에 앉아 꾸벅꾸벅 한참을 졸면서 왔으니 못해도 한시간은 걸린 것 같았다. 버스는 한적한 도로가에 정차했다. 구로카와 온천마을은 굳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법한 곳에 있었다. 먼 길을 달려온 것 치고는 소득이 없는 것 같아 조금은 김이 새버렸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고 올라 안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평범한 시골 마을은 분위기 있는 온천 마을로 변신했다. 가이드는 제일 먼저 모습을 드러낸 료칸을 가리키며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료칸의 소재가 되었던 곳이라고 말했다. 믿을 수는 없지만 말을 듣고 보니 료칸과 료칸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라던지 마을을 가로지르는 강같은 건 애니메이션 속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얼핏. 아주 조금.
마을은 소박하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나무 기둥과 지붕 모두가 멋스러웠다.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 때문인지 몰라도 따사롭고 싱그러운 분위기까지 느껴졌다. 갓 온천을 마친 듯 유카타를 걸치고 한적한 골목길을 타박타박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멋진 장소에 데려다놓고 산책만 하라는건 사실 고문이나 다름 없다. 온천마을에 데려다놓고 산책이나 하라니. 심지어 여기는 일본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손꼽히는 온천 마을인데 말이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려고 족탕이 있다는 곳으로 걸어갔다. 발을 담글 수 있는 곳에는 이미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잠시 근처를 돌아보다가 온천물에 익힌 계란인 온센 다마고를 발견했다.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 100엔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서 앞에 놓고서 계란 한 알을 집어들었다. 껍질을 까보니 노른자까지 잘 익어있었다. 소금을 솔솔 뿌려서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온천은 못했지만 온천 계란은 먹었으니 소득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족욕을 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떠나기에 슬그머니 빈 자리를 찾아서 앉았다. 냉큼 양말을 벗고 발을 담궜는데 어째 뜨뜻 미지근.. 수건도 없고 물은 미지근하고. 결국 "어째 되는 일이 없다"며 투덜거리면서 금방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상쾌하지 못한 족욕을 마치고 나니 자유시간이 끝나버렸다. 한 것도 없는데 떠나려니 아쉬움만 가득.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온다면 꼭 료칸에서 온천을 하리라.
| 구로카오 온천마을 여행 TIP
구로카와 온천마을에서 다양한 온천을 경험해보고 싶다면 마을에 위치한 24개의 료칸 중에서 총 3곳의 노천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뉴토테가타(入湯手形) 온천 자유이용권을 이용하자. 뉴토테가타는 구로카와 온천 관광 료칸 조합 가제노야(visitor center)에서 구입할 수 있고 가격은 1300엔이다. 가제노야 뒷쪽에는 유카타를 1000엔에 빌려주는 곳도 있으니 관심이 있다면 방문해볼 것.
공식홈페이지(한글): http://www.kurokawaonsen.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