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ㆍ리ㆍ파의 원칙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보자

by 애기타

옛날 어느 왕이 신하들에게 세상의 모든 지혜를 모아 한 문장으로 압축해 가져오라는 명을 내렸다. 나라의 현자(賢子)들이 모두 모여서 최종 완성한 문장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이었다. 어떤 것을 얻거나 이루기 위해서는 이에 상응하는 시간, 노력, 비용 등의 대가가 따라야 한다는 것이라는 보편적 진리다. 요행이나 사행심 등을 경계하게 하려 함으로도 이해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요행을 바라거나 지름길이나 샛길을 찾으려 기웃거리기도 한다.


내 경우가 그러했다. 초등학교 시절, 큰 누님은 탁구선수, 형님은 야구부원, 나는 배구 선수였다. 그런 환경 때문인지 운동을 좋아했고 순발력, 민첩성 등 운동 신경은 반 친구들에 비해 다소 나은 편이었다. 어떤 운동이라도 기본과 기초가 단단하지 않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실력으로 향상되기 어렵다. 기본기가 없으면 응용력을 발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공부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공식을 익히고 반복적인 연습으로 완전히 숙지해야만 다음 단계의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배구 선수 시절, 하루 일정 시간을 체력훈련은 물론 기술 습득을 위한 단계별 훈련을 경험했음에도 특출하지도 않은 운동 신경을 믿고 자만하다 실패한 사례이다.


운전면허 취득과 골프 입문과정이 그랬다. 비용도 아낄 겸 그까짓 운전면허 시험쯤이야 굳이 학원에 등록까지 하고 배울 필요가 있나 싶었다. 대신 이른 아침, 지나가는 택시를 잡고 기사님과 협상하여 네댓 차례 비공식 족집게 운전 과외를 받고 시험에 응시했으나, 두 번 연속 낙방 후 세 번째 도전 만에 간신히 합격했다. 학원 전문강사의 체계적인 실기교습을 외면하고, 택시 기사님에게 운전술만 어설프게 배웠으니 결과는 당연하였다. 결국 시간은 시간대로, 돈은 돈대로 다 들고 나서야 간신히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평소 운동 신경은 별로라 생각했던 아내는 운전학원에 등록하여 정식 교습을 받고 첫 번째 시험에서 덜컥 합격했기에 내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든 기본과 기초가 충실해야 함을 한 번 경험했음에도 자만과 오만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이 50에 시작한 골프가 또 그랬다. 가까운 동료, 친구들은 골프를 시작한 지 오래된지라 만날 때마다 화제가 골프였다. 그때는 드라이브, 아이언, 웨지 등의 용도조차 알지 못했고 생긴 모양이 비슷한 아이언이 왜 8개에서 10개가 있는지도 몰랐다. 동료와 상사도 골프를 적극 권했다.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는 운동은 골프밖에 없다 하고 또 운동 신경이 있으니 시작하면 금방 따면 잡을 거라며 부추겼다.


어느 주말, 혼자 골프 연습장으로 갔다. 한 시간 정도 사람들의 스윙 동작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특별히 눈에 띄는 어려운 동작은 없어 보였다. 혼자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인어른의 골프채를 몇 개 빌려 연습장으로 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티박스에 올랐다. 몇 번의 헛스윙 끝에 공이 맞기 시작했다. 골프는 힘으로 치는 게 아니라 어깨의 회전과 부드러운 스윙으로 골프채 정중앙에 공을 맞혀야 하는 것도 무시한 채 그저 휘두르는 힘만으로 공을 때렸다. 일만 시간의 법칙을 골프에 응용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하였으니 많은 연습량으로 극복하리라는 생각이었다.


일만 시간이 아닌 십만 개의 공을 선택한 것이다. 한동안 손가락이 얼얼하도록 공이 때렸고 연습 후 양손에 물파스를 잔뜩 발라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곤 했다. 교습 프로의 지도에 따라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마하지 못한 결과는 내 골프 실력에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골프를 시작한 지 오랜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힘에 의존하는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몇 차례 개인지도를 받기도 했으나 시간, 비용 부담과 간절함이 부족했던 탓으로 골프 입문 20년인 지금도 나 혼자만 즐거운 명랑(?) 골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운전면허 취득과 골프 입문 과정을 돌이켜 볼 때마다 기억나는 원칙이 하나 있었다. 수 ·리 ·파(守 · 離 · 破) 원칙이다.


1970년대 후반 우리나라 산업계에 QC(Quality Control 품질관리) 열풍이 불던 때였다. 제조업을 중심으로 도입되었으나 금융서비스업도 도입의 필요성을 홍보하기 위해 초청한 강사님의 말씀이었다. 새로운 것을 습득해 가는 단계로 수ㆍ리ㆍ파(守ㆍ離ㆍ破)의 원칙을 언급했다. 기본과 원칙을 충실히 습득하는 지킬 수(守)의 단계, 습득한 것을 부단한 연습과 훈련으로 내 것으로 만드는 떠날 리(離)의 단계, 배운 것을 넘어 자기만의 새롭고 독창적 경지에 이르는 깨트릴 파(破)의 단계를 철저히 따라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일본 에도(江湖 도쿄) 시대의 화가이며 무사였던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가 당대 최고의 검객(劍客)이 되기까지의 수련 과정을 수리파의 원칙에 비유 설명한 것이었다. 비록 일본에서 도입된 경영관리 운동이나 내용을 잘 체득하고 익혀 우리 기업환경에 맞는 QC 운동으로 발전시켜 가는 과정으로 수리파 원칙을 강조한 것이었다. 내 경우, 이 수리파의 원칙에 소홀했기에 운전면허 3 수생, 명랑 골퍼가 된 것이다.


글쓰기도 예외가 아니었다. 문학 장르별 요구되는 기본적인 형식과 격식을 갖춘 글이어야 함에도 그동안 몰랐고 알려고 하지 않은 채 글을 썼다. 그러기에 이를 보완하기 위한 문우들과의 글쓰기 공부는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습작과 합평회, 독서, 필사 등을 통하여 수(守)의 단계를 공고히 한 다음 리(離)의 단계로 넘어가리라. 지금은 글쓰기 수(守)의 단계에 있으니 더 많은 독서와 습작 등으로 기초를 공고히 해야 한다.


갓 출발했으나 많은 고민 끝에 택한 길이다. 수리파 원칙에 충실하고 형식과 격식을 갖춘 나만의 글을 쓰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비록 파(破)의 단계까진 멀고도 험난한 길이나 이왕 내친걸음이다. 월드 스타 싸이(PSY)도 그런 내 생각을 지지해 주었다. 수년 전 시청 앞 광장 공연 때 그가 나를 향해 이렇게 소리 질렀다. ‘자, 지금부터 갈 데까지 가보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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