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단골로는 대부분 걸어서 5분이나 10분 이내의 식당이다. 매일 점심을 매식해야 하기에 사무실 주변의 식당을 번갈아 다닌 지 8년이다. 일주일에 한 번을 기준으로 해도 1년이면 쉰다섯 번이요, 8년이면 사백사십 번이니 나름 그 식당의 단골이라 해도 과하지 않으리라. 마음에 점을 찍는 게 점심이라고 했다. 일 년 365일 점을 찍다 보면 대 붓 크기의 점을 찍는 때도 있으나, 대부분 연필이나 볼펜 심 크기도 점을 찍는다. 코로나, 우크라이나 전쟁 탓으로 물가가 예전보다 많이 올라 가장 저렴한 된장찌개, 김치찌개도 만원에 가깝다. '월급만 빼고 모든 게 다 올랐다'라는 직장인들의 자조적인 푸념이 비단 어제, 오늘만은 아니기에 식사 메뉴를 정할 때 가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나마 먹을 만한 메뉴를 갖춘 식당이 몇 군데 있음을 위안으로 삼는다.
주말은 평일보다 여유롭다. 토요일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가는 것이 첫 번째 일과다. 십 년 넘게 지속해 온 습관이다. 이른 시간 커피 물이 끓는 동안 조간신문을 들고 와 머리기사, 주요 기사를 눈으로 훑는다. 그사이 끓은 물을 미리 준비한 커피잔에 붓고 코냑이나 위스키 한 방울 대신 인삼주 두세 방울을 떨어트린다. 인삼 특유의 향이 잡내를 없애주고 커피 향과 어우러진 나만의 커피를 즐긴다. '천 번의 키스보다도 달콤하고, 머스캣 포도보다 더 부드러워 끊을 수 없다'라는 '바흐'나 ‘몽테뉴’, ‘나폴레옹’ 같은 커피 애호가나 지극히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의 관점에선 절대 권장하지 않을 나만의 커피 음용법이다. 나만의 달달한 커피 한잔을 즐긴 다음 목욕탕으로 향한다. 스트레칭 위주로 한 시간 반 전후의 운동 겸 목욕을 마치면 이웃 S 카센터에 들린다. 반갑게 맞는 김 사장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고 2층 사무실에 올라가 뜨거운 차 한 잔과 함께 신문을 펼친다. 십수 년 전 대로변 주유소 건물에 있는 차량 정비소에서 처음 만난 김 사장이다. 주유 때문이기도 하나 가벼운 차량 정비를 위해 이용하다 그를 알게 되었다. 싹싹한 성품에 손재주도 있어 갈 때마다 그를 찾았고, 이곳에 가게를 차린 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차량 정비를 맡기고 있다. 늦가을에 양평으로 이사한다는 말에 살짝 아쉬운 생각이 든다.
주말 아침은 나가서 먹기로 하였다. 이웃에 사시는 구순 넘은 친정 부모님 수발로 하루에도 몇 차례 들락거리는 아내에게 주말 아침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었다. 아내와 함께 도로변에 있는 콩나물해장국 식당으로 간다. 이곳을 출입한 지도 꽤 오래다. 얼마 전까지 오천 원을 유지하다 물가 인상에 따라 천 원을 올려 받고 있다. 그래도 이 가격에 40년 전통의 맛이 담긴 해장국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아서인지 가격 인상에도 주말 오전 내내 빈자리가 없다. 뜨거운 국물과 아삭한 식감의 콩나물 해장국으로 속을 채운 다음 다른 일정이 없으면 커피 한 잔과 눈요기도 할 겸 5분 거리인 K 화원으로 간다. K 화원을 알게 된 것은 15년쯤 전, 아버님을 파주 공원묘지로 모신 후였다. 산소 주변을 가꾸는데 필요한 모종과 묘목, 화초를 구하려 집과 가까운 곳의 화원을 찾아다니다 알게 되었다. 그 후 산소 조경, 카페 행사, 근무지 화단 가꾸기 사업과 지인들의 경조사 등 이런저런 일에 필요한 묘목, 꽃다발, 꽃바구니, 조화, 화초 등을 사거나 주문을 소개해 준다. 3년 전, 동해(凍害) 방지를 위해 켜놓은 난로가 과열되어 화원의 절반이 소실되었다. 그런 줄 모르고 아내와 함께 들른 주말, 비닐하우스 천장 대신 파란 겨울 하늘이 보였다. 큰일 날 뻔했다며 다친 사람은 없는지 물었다. 본인은 조금 데인 정도이나 아들이 얼굴과 손에 2도 화상을 입어 화상 전문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말하는 여주인의 얼굴에 낙담과 수심이 가득하였다. 급히 집으로 돌아와 냄비며 밥공기 등의 식기와 라면, 생수를 차에 실어 테이크 아웃 커피 두 잔과 함께 건네며 힘내시라 위로했다. 아들뻘인 배달 담당 김 군에겐 겉옷 몇 벌과 여분의 운동화를 건네주었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더 방문하며 더딘 피해 복구 상황을 살펴보며 보험 처리에 대해 아는 대로 알려주었다. 이후 내 소개로 주문한 꽃과 화환을 넘겨받은 사람들은 모두가 놀란다. '한 번도 주문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주문한 사람은 없다'라는 말처럼 그들 모두 K 화원의 단골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단골이 있다. 내 필요에 따라 이용하는 단골이며, 나 역시 그들의 단골이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나 또한 그들의 챙김을 받는 것처럼 서로 돕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함이 세상사 이치가 아닐까 싶다. 매일 아침 출근하여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일상이 어느덧 50년이다. 가정을 꾸린 지도 40년이다. 그 오랜 세월 매일 눈을 뜨고 잠자리에 드는 곳과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사람이면 이들이야말로 가히 최고의 단골이요, 내 첫 번째 단골, 왕 단골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습은 변해도 내 지친 몸과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으며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이들이 있는 곳, 세상에 이런 단골이 또 있을까? 퇴근 후 집에 도착하여 현관문을 들어서며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이 집과 이 집식구들의 평생 단골, 왕 단골이 오늘도 잘 다녀왔습니다.’ (2023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