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 낙원, 지중해 안탈리아를 가다
■ 올 인클루시브 지중해
이게 무슨 호강이며 웬 호사인가. 세계적인 휴양지 튀르키예 안탈리아 지중해 연안 RPB호텔에서 올 인클루시브 휴가를 즐기고 있다. 숙박비, 세끼 식사, 칵테일, 음료수는 물론 헬스장, 사우나, 수영장, 영화관, 비치 바(Beach Bar) 등 호텔의 온갖 시설 이용이 무료인 데다 지중해 무제한 이용권(?)은 덤이다. 눈 호강보다 육체적 휴식이 필요했기에 여기가 지상 낙원이요, 무릉도원이다. 안탈리아가 어디인지, 또 고개 들면 지중해가 보이는 곳인지도 모르고 누님 따라온 여정이었다.
뒤셀도르프 공항에서 안탈리아 공항까지 3시간여, 다시 리무진 버스로 어둠 속을 한 시간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하필이면 시내를 멀리 벗어난 곳에 숙소를 정했나 생각했을 뿐 잠시 후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서비스와 호강을 누리게 될 줄은 짐작하지 못했다. 다음날 눈을 뜨자 어제 못 본 이국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발코니로 나갔다. 호텔 내 울창한 나무숲 위로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가 보였다. ‘혹시 지중해?' 하는 생각에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그 바다는 지중해였다.
지·중·해! 듣기만 해도 설레는 이름이다. 여러 땅의 가운데 있는 바다이기에 지중해(地中海)란 이름을 가졌다.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에 둘러싸여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되었기에 유럽 문명의 어머니라 불린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지중해를 보기 위해 바닷가로 향했다. 숙소에서 5분여 거리에 지중해가 있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지중해가 다가온다. 마침내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마주하였다. 마음이 벅차다. 허리 숙여 밀려오는 파도에 손을 적신다. 그리 차갑지도 않다. 지중해를 직접 느끼고 있다니! 정녕 꿈은 아닌지 손등을 살짝 꼬집어 본다.
■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 신들의 휴양지 안탈리아
2022년 6월 국가명을 터키에서 튀르키예로 바꾸었다.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에서 발표한 나라별 관광객 방문(2022년 기준) 순위로 프랑스, 스페인, 미국 다음으로 4위(8,000만 명)인 관광대국이다. 한국전쟁에 파병하여 함께 피를 흘렸기에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 4위전에서 경기 종료 후 함께 손을 잡고 응원을 보내준 우리 관중들에게 인사하던 모습이 기억에 남아있다.
튀르키예 최대 도시로 유럽과 아시아의 관문인 이스탄불에 비해 우리에게 덜 알려진 안탈리아는 유럽인들에겐 스페인 다음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튀르키예의 우리 교민이나 현지인들에게 꼭 가 봐야 하는 곳을 물으면 주저 없이 추천하는 도시 안탈리아다. 이스탄불이 유럽 문화의 수도라 한다면, 안탈리아는 튀르키예 여행 수도이다. 열대 지중해 기후로 겨울에도 따사로운 태양, 1년 중 300일 온화한 날씨가 지속되는 천혜의 축복받은 자연환경으로 신들의 휴양지라 불리는 곳이다.
기원전 3세기, 그리스 고대도시 페르가몬 왕국의 황제 아탈로스 2세는 지상의 낙원을 건설하기 위해 군사를 풀어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찾으라 명했다. 오랜 기간 세상을 뒤지던 그들은 3천 미터가 넘는 토러스 산맥을 탐사하던 중 눈앞에 펼쳐진 코발트색 바다를 발견하고 이곳이 천국이라고 아탈로스 2세에게 보고했다. 왕은 이곳에 천국을 건설하라고 명령하여 세운 도시가 안탈리아다. 옛 지명 '아탈레이아'는 그 아탈로스 2세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그 후 로마인들이 왕국을 지배하는 동안 로마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이곳에 다녀가면서 안탈리아는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황제의 방문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문은 구시가지 관광이 시작되는 관문이다) 지상천국이라 할 만큼 완벽한 자연환경과 지중해에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해안이 이곳에 있다. 이런 곳의 5성급 호텔에서 올 인클루시브 서비스와 왕과 같은 대접을 받고 있으니 여기가 지상 낙원이요, 천국이 아닐 수 없다.
■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 카르페 디엠(Carpe Diem)
11월 초순인데도 아침 바람이 훈훈하다. 한낮 20도를 웃도는 지중해성 기후라 반바지 차림이 많다. 안탈리아를 가장 많이 찾아오는 외국인은 독일인과 러시아인이다. 독일의 이민자 정책과 세계 최고인 복지제도의 최대 수혜자로 300만 명 이상의 튀르키예인이 독일에 살고 있다. 그런 사정으로 독일사람들이 많이 방문하고, 러시아인 역시 동토(凍土)의 냉기를 피해 가까운 이곳으로 쉬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성수기(5월 말부터 9월 말까지)의 관광객만으로도 1년을 먹고살 만큼 관광객이 많이 온다고 했으나, 머무는 동안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은 볼 수 없었다.
도착 이튿날, 프런트에 다녀온 누님이 1일 관광을 예약하고 왔다. 이곳의 자연을 감상할 수 있는 그린벨리 협곡의 유람선 관광과 쇼핑을 겸한 1일 시내 관광이었다. 누님에게 하소연했다. 한국에서 뒤셀도르프까지만 해도 근 하루가 걸리는 먼 여정이다. 안탈리아에 온 것은 그렇다 해도 또 무슨 관광이냐고…. 온 김에 한 군데라도 더 구경시켜 보내려는 마음을 모르진 않으나 그런 하소연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평소 하지 않던 노동으로 다소 무리하였기에 푹 쉬고 싶었고 또 발걸음 에세이 때문이었다. 지난 3개월 연재에 기력을 다 쏟은지라 두 달 더 연장을 알리는 메일에 큰 한숨이 나왔다. 그러나 어쩌랴. 정중한 연장 요청에 속마음과는 달리 감사하다는 답신을 하고 줄거리 구상을 위해 노트북을 펼쳐놓고 머리를 쥐어짜 보았으나 집중할 수 없었다. 고개만 들면 눈에 들어오는 코발트색 아니 코발트블루, 에메랄드빛의 하늘과 바다 때문이다. 짧고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여기가 어디인가. 500명의 군사가 온 세상을 다 뒤져 찾아낸 지상천국 안탈리아가 아닌가. 언제 또 온다는 보장도 없다. 루비콘강을 건너는 시저의 마음으로 노트북을 소리 나게 닫고 옷장 속에 처넣어(?) 버렸다. 내일 삼수갑산을 갈지언정 지금 이 순간을 누리리라. 세상사 카르페 디엠이요 아모르파티다.
■ Green Canyon(Valley)
‘마나브가트 지역의 Green Canyon. 마나브가트 강과 주변 산악 지역의 자연의 아름다움을 탐험. 아름다운 그린 캐년을 통과하는 보트 투어를 즐긴 후 터키에서 다섯 번째로 큰 댐인 오이마피나르 댐이 에메랄드 물 저수지 탐험과 수영, 사진 촬영’ 오늘 관광지에 대한 안내문이다. 누님, 조카와 함께 이곳으로 이동하던 중 눈에 들어오는 차창 밖 풍경이 생경하다. 산들이 거의 민둥산이다. 지질학적으로 나무의 생장에 부적합한 석회암(변성암) 토질이다. 유럽 여행에서 보았던 그리스, 로마 시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왜 석조 건축물 일색인지 비로소 이해되었다. 저 덩치 큰 산들이 우리 산처럼 황토가 아닌 석회암, 화강암 덩어리를 품고 있으니 유럽의 어디를 가나 돌무더기로 쌓아 올린 건축물과 조각상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문화유적의 주재료가 금강송이듯 그들에겐 대리석 주재료인 화강암이었다. 호수 관광 코스의 반환점에 이르자 유람선 운항을 잠시 멈추었다. 그곳에 가로세로 10, 20m 폭의 갑판이 물 위에 떠 있었다. 일부 관광객은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갑판으로 내려가 호수에서 수영을 즐긴다. 11월의 선선한 날씨에도 수영을 즐기는 그들의 색다른 문화와 이국적 정취를 즐겼다. 함께 탄 사진사가 찍은 사진 몇 장을 부르는 값의 절반으로 넘겨받고 만족했으나, 선착장에 도착할 무렵 그 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액수로 넘기는 모습에 느림의 미학이 몸에 배지 않았음을 자책하였다. 이름 모를 꽃나무와 안탈리아 표식을 매단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지정된 식당과 쇼핑센터를 들러 숙소로 돌아왔다.
■ 마티니 석 잔과 I ♥ You
퇴실 하루 전 지중해와 작별을 위해 수영복을 입고 바닷가로 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지중해에 몸은 한 번 담그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갔노라, 보았노라, 그리고 담갔노라’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맨발로 백사장을 거닐며 예쁜 조약돌을 줍고, 비치타월을 깔고 덮고 의자에 누워 해님을 기다렸으나 구름과 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진즉 할 것이지, 뭐 하다 이제….’ 하며 나무라는 듯했다. 누구라도 수영하면 더불어 용기를 내려하였으나 아이와 함께 물가를 거니는 부부 밖에 없다. 결국 하반신으로만 지중해를 느껴야 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비치 바에 들렀다. 007 영화에서 봤던 마티니를 한잔 하며 지중해와 석별의 정을 나누려 했다. 마티니 문외한이니 어떤 걸 권하겠냐고 물었다. 친절함으로 무장한 웨이터는 두 번에 걸쳐 석 잔의 마티니를 서빙했다. 소금 사우나 후 수영장에서 마셨던 맥주의 시원함과는 다른 차원의 달콤한 향과 빛깔의 마티니를 한 모금씩 음미하였다. 다른 마티니를 더 맛보라는 호의를 뿌리치고 숙소에 들어서니 이건 또 무엇인가! 처음 보는 침대 시트커버다. 하얀색 커버 위로 ‘I ♥ You’란 글씨가 선명했다. 그동안 수고를 참작해 달라는 그들만의 표현방식이었다. 그동안의 수고와 위트에 대해 군자의 나라, 동방예의지국의 신사다운 액수를 감사의 메모와 함께 탁자 위에 남겨두는 것으로 화답했다.
■ 진정한 지상 낙원
올 인클루시브에서 올 엑스클루시브로 끝난 여정이었다.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매일 생수며 음료수, 과자, 와인을 가득 실은 카트를 끌고 다니며 필요한 대로 가져가라며 한 병을 달라하면 한 묶음을 건네주던 생수조차 적지 않은 돈을 건네야 했다. 지상 낙원에서 사바세계로 돌아왔음을 실감하였다. 행복한 안탈리아 여정이었다. 7박 8일 동안 지상 낙원을 경험하였다. 하지만 그곳은 언제까지나 머무를 수 없는 이상향이며 무릉도원(武陵桃源)이었다.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던 늘 나를 생각하고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또 언제나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진정한 지상 낙원일 것이다. 그렇다. 지상 최고의 낙원은 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