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 나
첫 수필집을 냈다. 오랜 세월 버킷리스트 상단에 있었기에 후련하고 뿌듯했다. 내 책 한 권의 꿈을 품은 게 오십 후반이었다. 퇴직 후, 노후 생활 방편을 마련하려 일을 벌였으나 시간과 돈만 허비하고 원점으로 돌아왔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절박함에 주택관리사(보)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취업했다. 그해 무역협회의 재취업 수기 공모전에 생각지도 못한 대상을 받았다. 수상식 날, 글로 상을 받은 김에 책을 한번 써보라고 누님이 권했다. 작가가 된다는 설렘이 내 책 한 권의 꿈을 품게 한 첫 번째 계기였다. 하지만 그곳은 범접 불가, 넘사벽의 세계다. 설렘은 있었으나 절실함의 부족으로 차일피일하다 회갑을 맞이했다.
삶의 후반부에 맞이한 회갑이라 여느 생일과는 감회가 달랐다. 삶의 종착지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은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이며, 그동안 무엇을 이루었나, 더 나은 삶을 이룰 수는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컸다. 허투루 살진 않았으나 치열함이 부족했다.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음을 어쩌랴. 남은 삶이나마 후회가 덜 해야 한다는 생각에 색 바랜 ‘내 책 한 권의 꿈’을 불러낸 것이 두 번째 계기였다.
수필의 세계로 이끌어주신 선생님은 전 근무지 아파트 입주민이었다. 수필의 기본도 형식도 갖추지 못한 글로 연이은 공모전 탈락 후 무엇이 부족한지조차 모르고 있던 내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셨다. 평생 처음인 넉 달간의 수필 수업은 목마른 대지의 단비요, 신세계였다. 마음 가고 붓 가는 대로 쓰는 게 아닌 ‘한가하되 나태하지 아니하고, 속박을 벗어나고도 산만하지 않으며, 찬란하지 않고 우아하며, 날카롭지 않으나 산뜻해야 하며, 나아가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연꽃잎 하나처럼 파격의 미가 있어야 함’이 수필의 정수요, 지향점인 것도 배웠다. 쓴 글을 고치고 배운 대로 글을 쓰려했다. 그해 말 ‘내 글이 등단해도 되는 수준인가?’ 하는 의문과 빚진 것 같은 마음으로 등단의 영예를 누렸다. 등단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인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 배려에 보답하려 부족함이 많으나 첫 번째 수필집 발간으로 내 책 한 권의 꿈도 이루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다. 그런 점에서 수필은 수상록이요, 참회록, 명상록이자 내 삶의 일기장이기도 하다. 두 번째 수필집을 준비 중이다. 첫 번째 수필집으로 출간 작가 대열에 합류하였으나 부족함이 많음을 안다. 그 부족함을 메우려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두 번째 출간을 맞이하려 한다. 수필집 한 권을 더 낸다고 크게 성장하는 것은 아니겠으나 한 권의 출간을 더 할 때마다 조금씩 채워질 것이기에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하고 나면 세 번째 수필집을 준비할 것이다.
인생 후반의 자칫 단조로운 일상에 수필이 활력소가 되었다. 좋은 스승과 마음 맞는 문우가 함께 하니 이런 호사도 없다. 일신우일신 日新又日新 하는 문우들이기에 선생님도 흐뭇해한다. 그런 문우에 비해 비록 생활 수필의 언저리에 머물고 있으나 그 또한 나의 길이다. 수필 문학의 숲을 걸어온 지 4년, 앞으로도 오래 이 길을 걸어가리라. 인생 후반에 만난 수필과 글 벗들 그리고 스승이 있어 내 삶이 지루하지 않음에 수필은 나에게 선물 같은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