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와 마침표

마침표, 쉼표

by 애기타

만 8년을 근무한 아파트의 관리소장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계약 만료일까지는 아직 1년이 남아있다. 그러나, 지난 7개월 동안의 신임 대표회장, 일부 대표자의 인식과 태도 및 그들과의 불협화음을 고려하면 재계약 기대를 접고 계약 만료일까지 근무하거나 후임에게 기회와 시간을 주어야 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지난해 말 임기를 마친 전 대표회장과 대표자들과는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적 관계였다. 동대표라는 자리를 봉사직으로 인식하고, 입주민의 편익을 기반에 둔 의사결정을 하였으며 관리소장의 법규와 절차 준수 노력 또한 존중해준 대표자들이었다. 그러나 신임 대표회장은 ‘회장이란 개인회사의 사장과 같은 것이다’라는 그릇된 인식으로 권한을 행사하려 했고 또 완장이라도 찬 듯한 일부 대표자의 처신은 수용할 수 없었다.


전임자들의 합리적 단지 운영과 합의적 의사결정 체계 또한 이어받으려는 의지도 없었다. 오히려 전임자의 업적을 폄훼하며 협력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있는 기존 업체마저 교체하려는 그들의 모습에 애써 쌓아 올린 탑이 무너지는 듯했다. “어쩌면 이리도 성향이 대조적인 사람들이 선출되었을까.” 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결국 법규와 절차를 가볍게 여기는 이들과는 인식의 차이만 확인할 뿐 더 이상의 동행은 어렵겠다는 판단에 이르러 차라리 후임자에게 상황 개선을 위한 시간과 기회를 주기로 결심한 것이다.

사직 결심의 또 하나의 이유로 기행 수필 연재에 대한 부담감이었다. 등단 1년이 채 안 되는 신인에게 50년 역사의 정통 문예지 연재는 벅찬 과제였다. 소개할 만한 여행 경험도 부족했고, 관리소장 업무를 수행하며 연재를 이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 연재를 제의받았을 때 극구 사양했으나 쉽지 않은 기회이며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S 선생님의 권유와 설득에 수락은 하였으나 실로 엄청난 중압감을 느꼈다. 그러한 상황에 얽힌 김에 차라리 후임자에게 자리를 넘기고 이에 진력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관리소장 경력 절반 이상을 보낸 곳, 3년 연속 우수 관리 모범단지로 선정되어 나름의 노력을 인정받고 자긍심을 느끼게 한 곳, 구석구석 손때가 묻어있고 지금도 눈에 선한 정겨운 얼굴,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은 고향 같은 곳이다. 지역 내 유일한 벚꽃 군락지 아래의 ‘벚꽂 축제’, 이웃 아파트 주민들에게도 문호門戶개방한 ‘사랑과 감사의 편지쓰기 대회’의 성공적 개최. 행사가 끝난 후 ‘우리 아파트 주거문화 수준을 올려 주셨다’라는 인사에는 보람과 함께 그동안의 피로를 단숨에 잊게 했다.

다행히 과제를 완수하고 잠시 숨을 고른 뒤, 새로운 근무지에 둥지를 튼 지 2년이다. 지금도 간간이 전해 듣는 그곳 소식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새로 구성된 대표회의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소식에 아쉬움만 더한다. 예전과 같은 합리적 관리 운영체계가 하루 빨리 자리 잡길 소망한다. 그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며 많은 추억과 정겨운 얼굴이 있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기에 더욱 간절한 마음이다


비록 그곳에서의 여정은 아쉬움 속에 마침표를 찍었으나, 많은 인연과 추억이 남아있는 곳이기에 그곳에서 찍은 마침표는 영원한 결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잠시 숨을 고르는 기회를 가지라는 쉼표를 찍게 해 준 곳으로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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