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을 목표로 글을 쓴 것은 아니었다.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썼다. 좀 더 일찍 배우지 못한 아쉬움에 선생님 말씀 하나하나에 귀 기울였고 그리 배운 것을 내 글에 투영하려 애썼다. 문예 대학 수료를 앞두고 등단하게 되리라는 소식에는 기쁨보다 내 글이 등단해도 좋을 만큼의 수준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런데도 내 주위를 통틀어 등단은 처음이기에 기쁨 또한 컸다.
등단 소식을 전하면 축하 인사가 봇물 터지듯 밀려올 줄 알았다. 내가 글을 쓴다는 사실과 공모전을 기웃거렸음을 알고 있거나 또 몰랐더라도 등단 소식을 접한 이들의 반응이 뜨거울 거라 믿었다. 등단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당연한 기대감이었다. 물론 가족에겐 그야말로 엄청난 사건이요, 대박 뉴스였다. 집안의 경사라며 가족들의 기뻐함과 진심 어린 축하는 예상한 대로였다. 여고 시절 문학소녀였던 큰 누님은 본인이 꿈꾸고 닿길 원했으나 기회와 여유를 갖지 못했던 문학에 대한 꿈을 동생이 대신 이뤘다는 점에 울먹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한동안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등단 소식을 알려드릴 분들에게 글이 실린 책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등단작이 아버님과 장인어른에 대한 글이니 친가, 외가의 친인척을 우선으로 하고 처가 쪽은 아내에게 맡겼다. 문예 대학 문우, 뒤늦은 글공부를 격려해 준 죽마고우, 동기, 선후배, 40년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퇴직 동료, 장인어른의 소원이었던 골프를 선뜻 해결해 준 동료, 글쓰기 공간을 열어준 카페 관계자 등을 차례로 발송 명단에 올렸다.
주로 새벽이나 주말에 글을 쓰는 편이나 더러 사무실에서 글을 들여다본다. 직원들 또한 글쓰기의 조력자임에 빼놓을 수 없다. 사무실로 배달 온 책 묶음을 풀어 덕분이라는 말과 함께 책을 건넸다. 아내에게 일임한 처가와 이웃 외 내 일상과 관련한 지인, 전 직장 상사, 은사, 고향 친구도 추가했다. 이런저런 기준으로 세 차례에 걸쳐 책을 발송한 지 일주일을 전후하여 많은 축하를 화환, 전화, 문자로 받았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며 진심 어린 축하와 부러움, 격려의 말도 전해 왔다. 아버님을 기억하는 친구, 지인들은 그 시절 추억을 언급하며 감회 어린 목소리로 축하 인사를 건네왔고 그에 상응하는 감사로 화답했다.
그런데 책을 받았을 시점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의당 축하 인사가 있으리라 기대했던 이의 연락이 없음에 내심 궁금하기도 했고 의문스럽기도 했다. '왜 아무런 연락이 없지? 아직 책을 받지 못했나? 책이 배달되었을 시점은 이미 지났고 등기로 보냈으니 전달되지 못했다면 반송되어 왔을 텐데….' 하는 의구심을 가진 지 한참 더 지나도록 끝내 반응이 없었다. 그렇게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웬일인가 하는 마음만 깊어갔다.
책을 보낸 지 한 달여, 그때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어 아내에게 말했다. '이상하네. 책을 보냈는데 왜 아무런 연락이 없지? 책을 받았다면 전화하지 않을 리가 없는데 혹시 많이 아픈가?' 했더니 듣고 있던 아내가 전혀 뜻밖의 말을 했다. 책을 보낸 마음과 달리 책 받은 사람의 입장은 당신과 다르기에 그럴 거라 했다. 무슨 말이냐 하니 내 등단 소식에 부러움이 앞섰거나 글에 묘사된 배경과 환경에 차이가 있어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 아내의 말에 ‘설마, 그럴 리가?’ 했다.
기쁨은 나눌수록 커진다고 했다. 등단 소식을 나의 깜짝 선물이라 생각하고 책을 보낸 것이지 글솜씨나 글에 묘사된 배경을 과시하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글에 묘사된 배경과 환경에 차이가 있음이 축하의 마음을 덮어 버린다고…. 설마, 그럴 리가? 그 후 늦은 축하를 받긴 했으나 끝내 반응이 없는 이도 있었다. 그렇다고 왜냐고 물을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감에 그에 대한 의구심과 기대감이 사그라들 무렵 선생님께 이런 정황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본인의 경험담을 들려주셨다. 받는 분의 이름 아래 감사의 마음을 정성스레 적어 보낸 책을 헌책방에서 발견하거나 힘든 산고 끝에 세상에 나온 분신과도 같은 책이 분리수거하는 날 함부로 나뒹구는 모습, 상당 기간이 지났음에도 첫 장도 열어보지 않은 무심함 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고... 덧붙여 책을 보내는 것은 자칫 아기를 낳지 못하는 집에 돌떡을 돌리는 격이 될 수 있으니 그리 이해하고 마음에 오래 담아두지 말라 하셨다.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그 시절, 아버님처럼 일본 유학을 다녀온 분이 몇이며 구순이 지난 동료 장인의 골프에 선뜻 동반해 주는 동료가 흔치는 않으리라. 또 글공부에 목마름이 있었으나 선생님을 만나지 못해 등단의 기회를 놓친 경우라면 나의 등단 소식이 잊고자 했던 아픔을 건드린 격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만으로 축하 인사를 기다렸던 짧은 생각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음에 되레 내가 미안해야 했다.
다소 늦은 출발에 채워야 할 여백 또한 많다. 끝 모를 긴 여정에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었다. 빈 곳이 많은 내 양식의 창고를 채우고 타인의 입장을 헤아릴 줄 아는 지혜로움을 쌓아가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겠다. 응답이 없는 그들을 두 번째 선생님으로 마음에 새긴다. 수필이 타인과 공유할 수 있는 철학으로 써야 하는 글임을 일깨워 등단으로 이끌어 주신 첫 번째 선생님 다음으로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이 부족함을 일깨워 준 그들이 두 번째 선생님이다. 잠깐 서운했던 마음을 다독이며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