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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초연 Feb 15. 2024

소개팅 #2

정부 부처 사무관

[첫 만남]

퇴근을 누구보다 늦게 한다는 그를 기다리며, 성수 스시집에서 하이볼을 홀로 훌쩍였다. 요새 불면증으로 고생해서 그런 걸까. 두 모금으로 입을 적셨을 뿐인데, 취기가 화악하고 올라왔다. 친구에게 "나, 벌써 취한 것 같은데 알딸딸하다가 실수하면 어떡하지.." 카톡을 보내던 찰나에 저 멀리서 삼십 대 중반처럼 보이는 아저씨가 뚜벅뚜벅 들어오는 것이 아니겠는가.


"...."
"안.."
"아.. 안녕.. 안녕하세요.....!"


연하를 오랜 기간 만나왔던 내게, 만 7살 차이의 연상은 처음 만나보았다. 삼십 대 중반을 달리고 있는 그의 앞에서 난, 뚝딱 그 자체였다. 만 7살 차이를 직면하는 건, 단순히 언어를 통해 감각하는 것과 눈으로 지각하는 건 천차만별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러나, 한 모금씩 몸에 알코올을 더할 때마다 뭐랄까. 시간이 지날수록 아저씨에게서 풍기는 젠틀함과 여유로움에 흥미가 가기 시작했다. 20대의 허세와 가오랑은 결이 꽤나 달랐고, 이국적인 그와 매우 어울렸다. 그의 두 번째 외국어 불어를 들었던 까닭이었을까. 아저씨는 점잖이 솔직한 편이셨고, 나는 초면에 말로써 담백함을 전하는 그가 나쁘지 않았다.


소개팅은 대학교 이후로, 두 번째여서였는지, 너무 연상이라 그랬는지, 그저 나는 그분을 지긋이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4시간 숙면에 따른 피곤함 사이로 알코올이 섞여 들어가 정신이 끊기며 없던 말도 잃어가고 있었다. 회사 언니들이 30대에는 탈모와 뱃살 둥 중에 하나가 아니면 감사하랬는데, 내가 너무 언니들에게 이상한 소리만 들었나 보다. 아 이 사람이, 뱃살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뭐 빼면 되니까.


[애프터]

아저씨는 각자 다른 방향을 향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악수를 청하고는 굿바이 인사를 전했다. 첫날에 느꼈던 부담감이나 낯은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었다. 그 이유는 아저씨는 1을 물어보면 100을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들어주고 반응만 해주면 되었다. 상대가 본인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주어서, 사회적 반응이 아닌, 내 진솔한 질문과 감탄사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아저씨에게 순수, 아니 삼십 대 중반에게 순수라는 말보다는 담백함이, 어울렸다. 더군다나 그전에 만나본 사람들과는 달리, 자기 1인몫을 독립적으로 유능히 해내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세 달 이상 사귀어본 적이 없다는 그의 말에 진가여부를 가르기 전에, 그냥 이 사람에게 사랑을 퍼억! 하고 꽂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EEX와 비슷한 체형에 경상도라, 느낌이 다르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조금 더, 연배의 성숙함이 은은하게 잔존해 있는 듯했다. 이분과 연애를 하게 된다면, PTSD 없게끔, 듬뿍 사랑을 담아 어여쁘게 여겨주어야지. 기대해도 좋아.


[첫 통화]

주선해 준 친구와 전화를 마치고, 회식이 끝난 그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전화를 요청했기에, 그는 술김에 전화를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첫마디가....

"어."

우리는 다음날 삼프터로 과천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이전까지 모든 장소와 계획들을 주도한 나로서 무언가를 기대했었는데, 이번에도 먹을 만한 곳을 찾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첫마디는 "어."


"아, 나 안 찾아봤지."
"야, 그럼 네가 과천 찾아봐라. 내가 양재 주변 찾아볼게."
"아 맞다, 그 나 차 끌고 가니까, 주차장 필요하거든? P 있는 데, 그쪽으로 알아봐야 한다!"
"네이버 지도에 쓰여 있어. 나 지하철 탈게!"

....?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두 귀를 의심했다. 다시 끊어진 수화음 뒤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저런... 위계질서가 잡힌 보수적인 말을 듣고 나니, 이제는 더 이상 이어나갈 수가 없다는 결의가 생겼다. 내일 이 분 생일만 챙겨드리고, 그만하자고 해야 하나. 언제나, 만남은 쉽고, 이별은 어렵다. 찌릿찌릿. 결국 난, 이 전화를 끝으로 울고 말았다.


[삼프터]

이날 출장지에서 출발했던 나는 퇴근한 순간부터 마음이 울적해있었다. 주간의 불면까지 더해져, 플랫폼에서 그를 기다리는 한 시간 동안, 주저앉아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이 가운데 푹 주저앉아버린 나를 쳐다보아도, 나는 그 시선을 이겨낼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금요일 퇴근 시간 정체되어 있는 차들 사이로 나타났다. 차에 승차해 간단한 안부를 물으니, 이야깃거리가 동이 났다. 주간을 버텼던 우리는, 금요일이어서 그랬는지 더욱 텐션이 떨어져 있었다. 당일 생일이었던 그에게, 내가 좋아했던 르라보 어나더 13 향수를 선물로 주었다. 선물을 받은 그는 조금 행복해 보이는 듯싶기도 하고..


사실 우리는 두 번째 만남 때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내 일생에 초연이가 들어오면 재밌을 거 같아."
"연락이 쭉 되어서 불안하지 않았어. 덕분에."
"응, 그래. 나를 듬뿍 사랑해 주었으면 해."

아니지, 나만의 착각 김칫국 원샷이었을까. 나 홀로 스킨십의 진도와 드라이브 코스, 애칭과 일상, 그와 함께할 무형의 것들이 눈에 그려지듯 했는데, 그는 내가 이성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했다. 사촌동생과 있는 듯하다고. 이런 피상적인 사유로 어지럽히지 말고, 진심이 담긴 이유를 말해주지 하며 씁쓸해지곤 했다.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달라 했다. "구래~"하며, 호탕히 말은 하는 그였지만, 막상 안아주었을 때에는 장난으로 받아칠 수밖에 없었나 보다. 내 마음을 진정 확인하기 위해 30초 정도는 그를 끌어안으려 했는데, 그는 그 시간의 정적을 이겨내지 못하고, 장난치듯 몇 번을 흔들면서 나를 쓸어내렸다. 나를 몇 번 더 만나려던 그 사람에게 이제 마지막임을 다시 알리고서는 나는 끝을 냈다.


난 조심히 빠지려는 사람에게, 사랑할 준비를 하러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물론, 경상도식 단단한 말투에 울어버리곤 했지만 말이다. 내게 연배의 은은한 성숙함을 알려준 사람, 부디 일도, 가정도, 사랑도, 평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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