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만 틀릴 수도 있다

쌉T를 일깨운 한 문장

by 이 구름

내가 감명 깊게 봤던 그 댓글에는 사실 원작자가 따로 있었다.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 알베르 카뮈


어렸을 때, 엄마와 많이 싸웠다.
사춘기가 시작되기 전, 열한 살까지는 싸움이라기보다 일방적으로 혼나는 쪽에 가까웠지만.

엄마는 단호하고, 용서가 없는 타입이었다.
아무리 잘못했다고 말하고 빌어도 돌아오는 말은 늘 같았다.

“그렇게 잘못했다고 말하면서 또 그럴 거지?”
“잘못인 줄 알면서 왜 그랬어?”


이후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나 역시 엄마에 대해 용서가 없었다.

나의 잘못도 아니고,
다만 엄마의 자존심 문제로 계속되는 싸움이라면
“잘못했어요.”라고 말하고 넘어가면 될 일을
굳이 밤새워 싸우곤 했다.

나는 “몇 년 몇 월에 엄마가 그렇게 말해서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요.”라고 말하고,
엄마는 “그전에 몇 년 몇 월에 네가 그런 행동을 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말한 거지.”라고 답하는.

옳고 그름을 가려야만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전쟁터 같은 말싸움.


아마 이런 경력(?)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느덧 T 중에서도 ‘쌉T’가 되어 있었다.

한 줄 한 줄 기억해 버리는 좋은 기억력과
옳고 그름에 목매는 습관이 합쳐져서 생긴 부작용은,
지금 생각하면 꽤 한심하다.

누군가의 한마디를 들으면
그가 과거에 했던 말들이 줄줄이 딸려 나온다.

“그때는 이렇게 말하더니,
지금은 이렇게 말하네.”

“울면서도 자기가 진짜

뭐 때문에 우는지를 모르다니…”


주변 사람들의 감정이
순순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올바르게’ 보이지 않는달까.

모순과 오류가 있는 주장에
붙어서 나오는 감정을 대할 때

언제나 감정보다 논리를 우선했다.


소중한 상대일수록
‘모순과 오류’를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랐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나의 ‘진정성’이라고 믿어왔다.


그런데 이 문장.

“원칙은 큰일에나 적용할 것,
작은 일에는 연민으로 충분하다.”

이 말이, 그동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 온 원리원칙을
오히려 하나의 모순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이 문장은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 같다.

정말 ‘원칙’을 내세우는 거야?
- 아니면 ‘너의 옳음’을 내세우는 거야?

정말 상대를 위해주고 싶은 거야?
- 아니면 상대를 판단하고 있는 거야?


내가 정말 나의 옳음을 주장하지 않고,
상대를 판단하지 않으면서,
오직 그를 위한 정교한 T식 솔루션을
다정하게 건넨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그걸 슬프게 받아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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