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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 솜 Aug 24. 2021

<다능인의 성장기록>'다능인'이라는 이름

새롭게 얻은 정체성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여러 분야를 넘나들어야만 하는 사람이라면, 과연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나니, 나는 본질적으로 무언가를 완수하거나 끝낼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마음을 사로잡는 것에 대해(때로는 거의 강박적일 정도로) 열정적이다. 우리의 열정은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것들을 흡수하도록 이끈다. 우리는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속독을 하며, 새로운 활동에 깊이 몰두한다. 


-에밀리 와프닉, <모든 것이 되는 법>-








인생관의 변곡점을 꼽으라면 단연 24살 강신주 작가님의 책을 읽게 된 순간과 28살 다능인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관심을 갖고 몰입하는 것도 많고 그곳에서 어느 정도 재미를 보고 나면 빠르게 흥미를 잃고 빠져나온다. 올해 새로 시작하거나 간단하게 배운 것만 해도 글쓰기, 범죄심리, 번역, 피아노, 그림, 사진 보정, 블로그, 모션그래픽, 촬영이 있다. 내 인생 적성이라도 찾은 것처럼 즐거워하다가 흥미를 잃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빠르게 잊어버린다.


스무 살 때부터 그랬다. 대학만 해도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다 디지털미디어과로 전과하고 싶어서 전과 신청서까지 다 작성해놨었다. 아빠의 거센 반대 때문에 내밀지는 못했다. 차선책으로는 광고홍보학과를 부전공했다. 그러다 편입을 하고 역시나 식영과를 다니면서도 다른 과 수업을 찾아들었고, 마지막 학기에는 실내 디자인과를 덜컥 복수 전공했다. 그것 때문에 졸업이 미뤄지고 결국 복전은 그만두는 슬픈 기억이 되었지만.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나에게 집중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매일 일기를 썼는데, 괴로울 정도로 내 마음속을 샅샅이 파헤쳤다. 하고 싶은 게 뭔지, 왜 그걸 하고 싶은지. 주변 시선 때문은 아닌가?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 원하는 것은 아닌가? 도피처로 선택한 것은 아닌가? 이렇게 모든 걸 까발리고 나니 나중에는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냥 하루하루에 집중하게 됐다. '이렇게 살다 보면 언젠가는 뭐가 되어있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되지 않았고 쉽게 시작했다가 쉽게 그만둔 것들은 쌓이지 않고 파스스 흩어져버렸다. 흩어진 채 그대로 사라져 버리면 좋으련만 심장 한 구석에 찝찝한 잔해로 남아있다가 '실패'의 경험으로 탈바꿈했으며 시시때때로 태클을 걸었다. 가장 괴로웠던 순간은 시작도 하기 전에 '어차피 이것도 그만둘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며 내가 나를 의심했을 때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급기야 나중에는 이 모든 것들이 시간낭비, 돈 낭비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상태로 거의 2년을 살았고, 

이런 불확실한 인생 속에서 내가 그리는 궤적을 찾아내려면 무조건 기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록하고 정리할 것이 많아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상 시간도 빨라졌고, 신기하게도 나한테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고 남들 앞에서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부끄럽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 한다.


그런 내게 위안이 된 건 에밀리와프닉이 테드 강연과 <모든 것이 되는 법>이라는 책에서 설명한 '다능인'이라는 개념이다. 원래 한 분야로는 만족을 하지 못하고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배우고, 초보자가 되어서 새로운 것을 익히는 상황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서메리 작가님 역시 강연에서 이 개념을 스치듯 언급했던 게 떠올랐다. 


신기하게도 '원래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이 모든 게 위로가 되었다. '다능인'이라는 용어로 따로 지칭할 정도로, 범주화할 수 있을 정도로 그런 사람들이 많다는 게. 인터넷을 더 찾아보자 다능인을 위한 커뮤니티도 나왔고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조금씩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부캐, n잡러가 유행하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요즘 시대에서는 나를 단어 하나로 정의하는 것이 마치 한계를 규정짓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 단어 하나에, 이름 하나에 큰 위안을 느꼈다. 내 정체성을 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지금 하는 일들이 언젠가 그만둘 거라고 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도록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기록한다는 것은 조수간만처럼 끊임없이 침식해 들어오는 인생의 무의미에 맞서는 일이기도 하죠.

-김영하-





본격적으로 기록하려고 한다. 내가 그날 한 것과 그날 느낀 감정을 조금이라도 남겨둘 수 있도록. 그동안 수많은 것들에 도전했다가 그만두고, 그런 경험을 '실패'라 칭했다. 평생 이렇게 살다가 나는 아무것도 되어있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곧 망할 거라고.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기록들은 더는 망하지 않도록, 부정적인 실패의 경험들이 내 앞을 가로막지 못하도록 하는 마지막 발악일 수도 있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는 것 같지만, 전문가 수준에 오른 건 없지만, 결국 또 그만두고 말했지만 그 순간순간은 이렇게 밀도 높은 경험을 해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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