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능인'이라는 이름 하나 붙였을 뿐인데
내가 하는 일에 '다능인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이고 하루하루를 기록해나가기 시작하자 신기하게도 이전보다 삶이 훨씬 즐거워졌다. 단순하게 '즐거워졌다'라는 말로는 다 담아낼 수 없을 정도로 내가 보고, 듣고, 먹고 느끼는 것들을 더 생생하게 감각하기 시작했다. 좋아하던 영상을 수업으로 들으며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한몫했다. 우리는 특별한 순간에 사진을 찍지만, 오히려 사진을 찍음으로써 그 순간이 더 특별해질 때도 있으니까. '아, 지금은 기록으로 남길만한 순간이구나.' 하면서. 그러니 사진보다 더욱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는 영상은 어떠할까. 가끔은 내 시야보다 네모난 뷰파인더에 정제되어 담긴 영상물이 더 특별해 보일 때도 있다.
이는 내게 아주 중요하고도 의미 깊은 경험이다. 예전에는 삶을 생생하게 감각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으니까. 무엇을 봐도 감흥 없던 시절이 있었다. 가족끼리 좋은 곳에 놀러 가도 나는 시큰둥했다. 여행 역시 '힘들기만 한데 왜 가?'라는 생각이었다.(이 생각은 혼자 전주로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깨졌다.)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살다가 작년에 김연수 작가의 <소설가의 일>이라는 책을 읽게 됐다.
-미식가보다는 지금 자기 앞에 놓인 이 평범한 일상을 강렬하게 맛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소설은 보고 듣고 만지고 냄새 맡을 수 있는 단어들로 문장을 쓰는 일이다. 생각이 아니라 감각이 필요하다. 장면이 바뀔 때마다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맛이 나고 냄새가 나고 만져지는지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 평소에 감각하는 연습을 많이 해서 더 많은 감각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지금 뭐가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지, 어떤 냄새가 나고 어떤 맛이 나는지, 자신에게 묻는 연습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그걸 문장으로 쓰자. 자기가 지금 뭘 보고 듣고 만지고, 또 어떤 냄새와 맛이 나는지.
-김연수, 소설가의 일-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장은 책 전반에 걸쳐 중간중간 나온다. 소재는 소설이었지만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이었다. 즉, 감각은 소설 쓰기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부터 삶을 생생하게 '감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그 순간순간에 집중하려 했고, 건물에서 계단을 오르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소리를 하나하나 골라보기도 했다. 휴대폰 메모장을 켜서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세세하게 묘사한 적도 있다. 바스락대는 나뭇잎, 빛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는 잔디, 미약하게나마 바람이 분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가랜더, 제각각의 색깔로 물든 단풍... 커다란 체에 오감이라는 모래를 쏟은 뒤에 그 속에 섞여있는 자갈을 하나, 둘 골라내는 기분이었다. 내가 집중하면 충분히 골라낼 수 있지만, 잠시만 한눈을 팔면 모래와 함께 섞여 빠져나가버리는 자갈.
어쨌든 '감각'은 내 삶에서 꽤나 중요한 키워드였지만 이런저런 노력에는 한계가 있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그 존재감이 서서히 희미해졌다. 그러다 몇 주 전, 혼자 갔던 연남동의 한 골목에서 깨달았다.
삶을 생생하게 감각한다는 건 이런 거구나.
뜨거운 햇빛, 한적한 골목의 소음, 각각의 특색을 지닌 건물들, 유리컵에 맺힌 차가운 물방울, 살짝 밍밍했지만 맛있었던 커피까지. 온몸으로 와닿는 감각은 애를 써서 골라내야 할 자갈 따위가 아니라 그 자체로 내게 스며드는 종류였다. 행복하다는 감정과 동시에 찾아왔다.
그 주에 했던 모든 경험이 좋았다. 저녁에 다시 찾아간 연남동과 작은 펍, 며칠 뒤 오랜만에 만난 친구, 산책하다 충동적으로 들어갔던 카페까지. 내가 특정한 '공간'과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점도 깨달았다. 일주일 동안 집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가지 않은 적이 있을 정도로 집순이 었던 내가 새로운 공간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다능인'이라는 이름표는 내게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주었고, 경험은 또 다른 경험을 낳으며 내 삶을 다채롭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