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패, 나의 두려움

행복연금술사의 꿈 이야기

by 화평 이대근

꿈이 있고 기대 수준이 높은 자만이 실패와 실망의 아픔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에게 동일한 것이어서 극복과 재도전은 늘 새롭고 힘겨울 수밖에 없다. 이제 보장된 정년을 포기하고 조금 늦은 듯 이른 퇴직을 결심하고 보니 지난 30년의 직장생활 동안 거쳤던 수많은 실패가 문득문득 추억으로 스친다. 그리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공기업을 떠나 새로운 출발을 마주하고 있는 지금 나는 또 다른 두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생각 없는 천둥벌거숭이로 사회 첫발을 내딛고 첫 10년은 대부분의 신입 직장인이 그랬던 것처럼 시키는 대로 좌충우돌 열심히 일했고, 칭찬과 승진으로 보상을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불현듯 "이게 아닌데?"라는 의문이 생겼고, 조직의 목적과 존재 이유 그리고 지속성장의 길에서 벗어난 일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보였다. 열심히 일할수록 오히려 조직의 성공을 저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첫 10년 동안의 모든 것들이 사실 통째로 실패였던 것이다,

이후 10년 나름 치열한 고민과 학습의 기간이었다. 결과적으로 빠른 승진은 잃어버렸지만 그 대가로 "자기조직화 경영"이라는 공기업에 바람직한 경영 모델을 찾게 되었다. 자기조직화 경영이란 임직원 모두가 스스로 조직의 존재 이유와 지속성장에 부합하는 가치제공(Value Proposition)을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조직원 개개인이 작은 일상 업무를 시키는 대로 혹은 아무 생각 없이 규정에만 따라 형식적으로 일하는 관료화/정치화 조직을 거부하고, 조직의 미션에 근거하여 일의 주인에 맞춰 실질적인 가치제공에 충실한 유기체적 조직을 지향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런 조직에서 직원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고, 관리자는 "해야 할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자기조직화 조직을 "꿈의 직장(DWP, Dreamable Work Place)"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조직의 노회한 기득권자들을 어떻게 극복하지?" 기획팀장이 되어 자기조직화 경영 혁신의 첫 단계로써 야심 차게 추진한 "미션중심의 경영혁신"이 허무하게 실패한 뒤에야 어리석게도 나는 이 문제를 깨달았다. 모든 사람들이 옳고 그름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기득자들은 이해득실에 충실했기 때문에 현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어떤 시도는 계획과 동시에 실패가 결정되는 것도 있는데, "미션중심의 경영혁신"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지혜롭지 못한 자의 꿈은 고단하고 안쓰러울 수밖에 없다.

원래 꿈이란 큰 실패 뒤에도 계속되는 것이어서 나는 조직생활의 마지막 10년을 행복연금술사로 재도전하기로 했다. 조직 내에서 자기주도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동료를 도와 작은 성공 체험을 쌓으면서 이를 국내 300개 공공기관으로 확산한 뒤에 마침내 공공부문 혁신 리더들이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이 행복연금술사의 구상이었다.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행복연금술사는 "자기조직화 경영 연구소"를 설립했을 것이고, 공공부문의 혁신을 선도하고 있을 것이다. 이것 또한 실패했다.

나의 실패가 켜켜이 쌓이는 것과 병행해서 조직은 점점 피폐해졌고, 이제 가치제공 측면에서 보면 지속성장으로부터 꽤나 멀어진 것 같다. 물론 되돌리기에 이미 늦어버린 것이란 없는 것이므로 언제든 새로운 도전은 가능한 것이고, 그래서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진실로 옳은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껴안은 채로 조직을 떠나는 선택을 수밖에 없는 것 또한 실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드디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의 오랜 소망은 무엇이 되었던 사회에 이로움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비록 지난 30년은 실패로 점철되었지만 앞으로 주어진 30년 동안 나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적어도 두 개의 기회는 놓여있다. 멘토인 박항기 대표님이 과분하게도 함께 하자며 제안해 준 공공부문 대상의 "꿈 코치"의 길과 젊은 친환경 농업인들의 성공을 지원하는 역할이다. 과연 나는 성공에 이를 수 있을까?

여전히 꿈이 있고 기대 수준이 높기 때문에 앞으로도 많은 실패와 실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 두려움 속에서 어렵게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은 30여 년 뒤의 어느 좋은 날 아침에 아내와 차를 나누는 나 자신에게 "그간 애섰네"라고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를 두려움과 마주하도록 내모는 것은 성공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사명감 혹은 지금 이렇게 선택하지 않으면 결국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한편, 기대를 조금 낮춘다면 누구나 결코 실패하지 않을-쉽게 성공할 수 있는 것이어서 꿈이라고 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두려움 없이 도전할 수 있는 소박한 꿈 한두 개는 가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으로 인해 삶의 의미와 보람과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희망"처럼. 내게도 그런 꿈과 희망이 하나 있는데 "글을 쓰고 지혜를 나누는 늙은이의 삶"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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