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행복연금술사 홍원 이대근
Oct 16. 2021
마당에 선비의 꽃 국화가 폈다.
선비의 꿈은 과거를 통해 위정자로 출세하는 것이다.
소위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지향한다.
治國과 齊家의 기초인 修身이란 무엇일까?
사서삼경을 배워 옛사람의 말에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일까?
불교에서는 무지(無知)로 행한 잘못이 알고 한 잘못보다 나쁘다고 한다.
죄를 미워해도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된다고 배웠는데, 모르고 한 나쁜 짓이 왜 더 악덕일까?
옳고 그름을 모르면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란다.
같은 맥락에서 보면 조금 아는 것은 아주 모르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이 된다.
100년 전 시민계급이 없던 신분사회에서 제도의 틀에 의해 자행되는 폭압을 몸으로 버티고 견딜 수밖에 없는 민초의 삶을 바라본 당시의 위정자는 아마도 그것이 비인간적인 죄악 상황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배운 지식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 폭압에 편승하는 잘못된 治國을 행했을 것이다.
만약 그가 현재로 와서 과거 자신의 행동을 본다면 과연 어떤 평가를 할까?
분명 "그때는 몰랐다. 누구라도 알 수 없었다."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 앞에서 그의 악업은 변명으로 용서받지 못한다.
이와같이 오늘 우리가 스스로 옳음으로 확신하고 선의로 행한 것이 100년 뒤 사회가 성숙되고 발전된 이후 역사 앞에서 잘못으로 수치스러운 죄악으로 재평가 될 수도 있다.
修身은 선비가 齊家治國平天下를 할 때 無知로 인한 잘못을 피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다.
修身이란 깨어있는 정신으로 늘 의심하면서 참지혜와 진리를 성찰하는 것이다.
아마도 修身의 결과는 "행복을 추구하는 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될 것이다.
조금 더 나아가면 "나와 함께 남도 소중함"을 알아채게 된다.
그리고 우리라는 공동체의 가치와 공동선을 알게 되는 것이 修身의 마지막 단계일 것이다.
齊家는 가족과 이웃과 동료가 모두 修身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동선이 충만한 공동체 국가를 지향한다면 이것을 治國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기어이 이웃나라를 넘어 지구 생태계의 공동 번영으로 나아가면 바로 平天下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修身은 위정자만의 몫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사회인이면서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타인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관계와 위치에 있기 때문에 역사 앞에서 악덕을 쌓지 않으려면 修身에 치열해야 한다.
서늘해진 가을 아침에 따뜻한 국화차 한 잔의 여유를 갖고 지난여름의 뜨거웠던 일상을 되돌아보면서 나와 너의 삶이 모두 소중함을 느끼는 修身의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