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48_동물 매개 치료
세상과 단절된 채 자기 안에 갇혀 삶을 살아가던 내담자가 이제 세상 속으로 들어가려고 마음 밖으로 손을 내밀고 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이에게 고양이는 사람보다 더 진실된 친구들이다. 사람으로부터의 스트레스를 감당하지 못해 낮이고 밤이고 불쑥 공황장애를 맞게 될 때마다 필자에게 ‘어떻게 해요’하고 어쩔 줄 몰라하며 카톡으로 간절하게 살려달라는 메시지와 함께 답을 청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주세요. 쓰다듬어주세요. 그 아이들과 마음속의 이야기를 나눠보세요 했다. 길고양이들을 한 마리씩 거두어 보살피다 보니 열일곱 마리나 되었다는 그이에게 고양이들은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반려이자 삶의 이유이기도 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세상으로 그이를 연결시켜주고 힘이 되어주는 것도 바로 고양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해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이가 선택한 일도 고양이 관련된 일이다. ‘아주 괜찮은 생각’이라고 힘을 실어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옆 나라 일본에선 고양이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지금 네코노믹스 열풍’이라는 뉴시스 보도(2016년 10월 18일 자)다.
최근 애묘가(愛猫家)들이 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려 동물하면 강아지를 떠올렸지만 이제는 그 흐름이 고양이로 옮겨가고 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고양이 카페, 고양이 호텔, 고양이 전문 병원 등 오로지 고양이만을 위한 시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여기에 고양이 신간이 꾸준히 나오고 있으며, 고양이 책만을 파는 책방이 문을 열기도 했다. 그런데 고양이가 가장 대접받는 나라가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단순한 ‘애묘’ 수준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붐’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때문에 엄청난 경제적 효과까지 만들어냈다. 일본 와카야마 현의 한 전철역은 고양이를 역장 자리에 앉혀 유명세를 탔고, 오사카 신사이바시에는 올해 ‘고양이 빌딩’이 문을 열기도 했다. 5층 규모의 건물 전체를 고양이 관련 시설로 꾸미고 유기 고양이들을 풀어놓아 빌딩을 찾는 고객들이 고양이와 편안한 휴식을 갖도록 한 것이다.
고양이 붐이 불면서 ‘네코노믹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네코노믹스는 ‘고양이’를 뜻하는 일본어 ‘네코’와 경제학을 뜻하는 ‘이코노믹스’(Economics)의 합성어로, 고양이 신드롬의 경제적 효과를 말한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네코노믹스로 인한 경제 효과가 2조 3162억 엔(20조 원)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일본인의 지극한 고양이 사랑은 ‘고양이로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각박하고 차가운 도시 생활의 고독감을 고양이를 통해 치유하려 한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또 우리와 달리 충성스러운 개보다는 자유분방하고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 고양이를 더 선호한다. 아울러 고양이의 가냘픈 몸매와 우아한 성품의 특징이 일본인의 미적 감각과 맞아떨어지면서 일본인들의 고양이 사랑은 더 커질 전망이다. 일본에서 2월 22일은 고양이의 날로 정했다.
6월 27일 통계청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7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여성 1인 가구는 261만 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우리나라 총 1인 가구 520만 3000가구의 50.2% 규모다. 이렇게 1인 가구가 많아지고 인구 고령화가 진행됨에 따라 동물을 곁에 두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반려동물의 역할도 다양해지고 있다. 반려 동물과의 교감을 통한 외로운 삶의 위로과 우울의 치료 효과도 부각되고 있다.
출판에서도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은 잘 반영되고 있다. 올 상반기 출판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예스 24)를 보면, 나 홀로 라이프에 맞춘 ‘홈트(홈트레이닝의 줄임말)’를 비롯해 ‘혼자’ 키워드 도서와 ‘반려동물’ 관련 도서 판매량도 크게 늘었다. 특히 홈트레이닝 관련 도서 판매권수는 올 상반기에만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했고, 반려동물의 행동을 이해하고 반려동물을 위한 옷이나 소품 만드는 법을 소개하는 반려동물 관련 도서 판매량도 올 상반기 10% 성장했다고 한다. <고양이의 기분을 이해하는 법>, <고양이 공부> 등이 바로 그런 책들이다.
이런 조짐으로 보아 우리나라에도 일본의 고양이 열품의 여파가 조용히 밀려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만화 캐릭터 '도라에몽'과 팬시상품인 '헬로 키티'가 고양이로 모든 세대의 인기를 모으고 있다. 그 인기는 우리나라에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소설 중에는 고양이를 소재로 한 것이 꽤 많다. 귀여운 고양이가 손님에게 '달라붙어' 치유해주는 모바일 게임 어플도 나올 정도로 고양이는 인간의 속성이 오버랩되어 있는 친밀한 캐릭터이다.
현대인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말동무를 해주는 반려동물 시장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엔 인간이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대상을 뜻하는 애완동물이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사는 대상이란 뜻으로 반려동물이라고 이름 붙이고 있다.
반려동물은 이제 인간에게 치유의 매개체가 되어주고 있다. 그것은 최근 관심을 모으고 있는 ‘동물 매개 치료(animal assisted therapy)’의 메커니즘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감정이 있고, 따뜻한 체온이 있는 살아있는 동물과의 생활이나 함께 나누는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역동적인 상황을 활용하여 치유가 일어나게 한다는 것. 동묾 매개 치료는 미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인 레빈슨(B. Levinson)이 자기 진료실에서 진료를 기다리던 아동들이 자기 애견과 놀면서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도 치료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연구되었다고 한다.
애묘가들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고양이 신체구조의 특징 때문에, 안고만 있어도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해진다고 말한다. 고양이들은 친밀감의 표시로 몸을 맞대어 비비고 주인의 몸에 올라가 마사지같이 몸을 깊숙하게 터치한다. 이렇게 터치로 자신과 교감하며 자기의 생각이나 행동에 반응해주는 생명체와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인간은 위안을 얻는다. 그리고 부드러운 촉감과 따뜻한 온기로 서로 접촉하면서 감정을 나누고 정서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은 삶에 온기와 활력의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이처럼 나와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우리 인간은, 인간의 내면에 간직되어 있는 본능으로서의 ‘접촉 욕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으며 접촉은 우리 삶에 있어서 필수요건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인간이든 반려동물이든 살아있는 생명과의 ‘따뜻한 접촉’이 우리 사회의 새로운 키워드가 되고 있는 이유를 분명히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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