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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Aug 28. 2017

암 이전과 암 이후의 나는 달라진다

접촉의 심리치료 50 |  암 환우들에 대한 터치 테라피

암 판정을 받는 것은 한 인간의 삶에 축복이 될 수 있다.
암을 계기로 죽음의 가능성을 직면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암 환우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접촉

얼마 전, 홀로 되어 외롭지만 재산은 있다는 어떤 노인 암 환자를 현혹시켜 갈취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아는 분으로부터 들었다. 자기가 특별한 약과 몸에 기를 넣는 비법으로 낫게 할 수 있으니 병원에 안 가도 된다면서. 이런 분들이 아직 종종 있는 모양이다. 사람이 암 또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극한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몸과 마음이 취약해졌을 때 이러한 사술(詐術)의 유혹에 잘 빠지게 된다. 이런 행위는 생명을 담보로 저지르는 비윤리적이며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암이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그만큼 아직 현대의학도 자신 있게 모든 암을 완전히 고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는 ‘말 보다 따뜻한 몸의 언어_터치’를 부제로 하면서 ‘터치의 심리학 또는 접촉의 심리치료’를 내용으로 다룬 책 <닿는 순간 행복이 된다>를 냈다. 그 뒤로 한 대학병원의 요청으로 암 환우들의 자조모임에서 암 치료 후 환우들의 온전한 건강의 회복을 이끄는 과정에 참여했었다. 그리고 몇 분의 암 환우들을 생의 마지막까지 보살펴드릴 수 있었던, 암과 관련된 소중한 체험들이 있다.


그리고 암 전문병원에 스탭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어떻게 하면 암 환우들의 회복에 ‘접촉’의 방식으로 적절한 개입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 중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미국 콜로라도 대학병원 재활의학 의사인 리사 코르빈(Lisa Corbin MD.)의 논문 ‘암 환자들에 대한 마사지 요법의 안전과 효과(2005년)’가 접촉 행위와 관련된 가장 근접한 최근 연구결과일 것 같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보면 암 환자에 대한 터치 테라피가 암의 전이에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는 염려와 두려움은 내려놓아도 될 것 같다. 터치 테라피는 암 치료과정에서 심신의 안정과 삶의 질을 높이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효과적인 보완요법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접촉의 목적은 암의 치료가 아니라 돕는 행위

리사 코르빈 박사는 암 치유를 위한 보완대체의학(CAM; complementary alternative medicine)의 한 부문으로서의 마사지는 암 환자에게 이러한 이로운 효과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


“혈관의 확장으로 피부의 온도를 높이고, 심장박동수를 낮추며, 심신을 이완시켜준다. 이외에도 근육에 젖산이 쌓이는 것을 막고, 손상된 결합조직을 빨리 회복하게 하며, 림프액 및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등의 작용 메커니즘도 기대된다. 연구문헌은 마사지 후에 자연 살상세포(natural killer cell)의 수의 활성이 급격히 증대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마사지는 시술의 방법과 형태, 그리고 시술자에 따라 많은 차이가 난다. 대부분의 마사지는 어떠한 형태이든 일반적으로 환자를 진정시켜주고, 삶의 질을 높여준다. 마사지가 암 환자에게 스트레스와 불안감을 덜어주는 효과가 가장 크다. 마사지의 기법에 따라 암 환자의 특별한 증세의 경감과 시술 목표의 달성에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이러한 맥락을 근거로 적절한 신체적인 접촉의 보살핌은 암 환자들에게서 발생하는 스트레스, 불안, 두려움, 통증, 그리고 우울 등의 심리적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 그럼으로써 암의 치료과정에서 희망을 잃거나 좌절하지 않도록 해 주고, 치료과정을 잘 마칠 수 있도록 환우의 마음에서 긍정의 힘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어야 한다. 암 환자들에게 신체적인 접촉을 할 때는 심하게 누른다거나, 비튼다거나 하는 강한 자극은 피하며 부드럽게 터치해야 한다. 그리고 아로마 오일처럼 향이 강한 윤활제를 사용하는 것은 환우의 상태에 따라서 과민반응을 일으키게 하거나 구토가 일어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할 점이다.     

암 치유 과정은 죽음을 넘어서는, 심리적 재탄생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간호학 분야에서 손과 발 등의 신체 말단 부위를 만져주는 치료적인 접촉이나 수술 전후의 접촉이 암 환우들의 심리적인 상태를 완화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논문들이 있다. 암 환우들에 대한 터치 테라피의 효용성에 긍정적 평가가 늘어나고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하지만 나는 암 환우들에 대한 신체적인 접촉의 보살핌은 그처럼 하나의 매뉴얼로 패턴화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터치 테라피는 그 치료적 장면에 노출되어 있는 환우의 현재 몸 상태와 직면하고 있는 심리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감정, 호소하고 있는 불편함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테라피스트는 바로 그 마음의 요구를 손길로 반영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마사지의 효과가 시술자에 의해서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요소가 영향을 크게 미칠 수 있다는 것으로, 학술적인 용어로는 '치료자 변인'이라고 한다. 그런 점에서 테라피스트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자질은 두 가지이다. 첫번째는 암 환우들에 대한 존중과 깊은 이해, 그리고 배려의 마음이다. 두 번째는 환우의 상태에 따라 적절하게 손쓰기의 변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유연함이다. 그것은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인간의 죽음에 대한 연구에 일생을 바쳐 미국 시사 주간지 <TIME>이 ‘20세기 100대 사상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된 사람인 정신과 의사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zabeth Kübler-Ross)의 연구결과는 여기에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그녀는 말기 암 환자 5백 명과 나눈 인터뷰를 정리해서 낸 자신의 책 <죽음과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On Death and Dying)>에서 사람들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단계를 부정과 고립-분노-타협-침체(절망)-수용의 다섯 단계로 나누었다. 그의 이런 구분은 암 진단을 받은 환우들에게도 유사하게 적용된다.


암이란 판정을 받고 암 치료를 시작하는 환자가 체감하고 있는 세상은 마치 나를 덮치려고 엄청난 속도와 크기로 달려오는 쓰나미, 나를 끌어당기려고 벌어지는 땅의 지진과도 같이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을 압도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하는 환우들은 자신의 삶에 대해 돌아보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심리적인 변화 체험 과정에 대해서 적절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심리학 이론은 형태를 의미하는 게슈탈트(Gestalt) 이론이다. 우리의 의식은 현재 직면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가장 긴급한 문제에 초점 맞춰지면서 ‘전경(foreground)’이 된다. 그것이 의식의 전경이 될 때에는 오직 그것 밖에는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나머지 생각들은 의식의 ‘배경’으로 물러가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서 완결되지 않은 과제(분노, 미움, 원한과 같은 정서 등)는 완결 지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몸과 마음의 반응에서 우선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완성된 과제보다 미완성된 과제가 기억에 오래 남는 현상을 차이가닉 효과(Zeigarnik-Effekt)라고 한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환우의 호소에 초점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


암을 받아들이는 심리적 단계를 부정과 고립, 분노, 타협, 침체(절망), 수용의 다섯 단계라고 했다. 그러한 단계를 잘 거치면서 ‘자신의 현실을 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체로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치료라는 큰 틀 안인 보살핌의 영역에서 제공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이다.      


라는 항변이 아니라 어떻게라는 응답을 찾게 한다

신체심리치료라는 접촉을 통한 보살핌으로 할 수 있는 접근은 두 단계이다.


초기 단계에는 마음의 응어리들이 풀릴 수 있도록 그들의 몸을 통해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잘 듣고 지지해주고 버텨주면서 암 환우들이 과거의 관계와 사건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정서적 응어리, 원망, 한(恨)들을 직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지금 여기에 머물면서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 ‘왜’라고 항변하기보다는 ‘어떻게’라는 답을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응답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심리치료의 기본적인 원리와 같다. 적극적인 경청과 수용을 통한 공감이다. 터치 테라피에서는 몸을 통해 전해오는 마음의 메시지를 잘 들어준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해줌으로써 고통을 겪고 있는 환우 개인이 이 세상에 홀로 고립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존재이고, 누군가는 그 고통을 지금 여기에서 나누고 있음을 알게 해주어야 한다.


따뜻한 보살핌의 손길은 몸과 마음을 느슨하게 이완시켜주면서 환우 자신이 스스로에 대한 관찰자가 되어서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 보살핌의 체험은 암 전의 나와 암 후의 나는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를 알아차리게 해준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말기 암 판정을 받는 것이 한 인간의 삶에 축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암을 계기로 죽음의 가능성을 직면하면서 자신의 현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접촉을 통해서 암 환우를 보살펴주는 일은 그의 내면에서 파편화되어 떠오르는 고통의 시간들과 체험들이, 남은 삶을 좀 더 가치 있게 살아가는데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알게 해주는 역할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줄 내 안의 긍정의 자원들은 무엇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가 얻을 수 있는 긍정의 응답은 암이 생겨나게 했던, 자기 삶에서의 반복된 패턴들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고 어떻게 바꿔나가면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날 것인가 하는 데에 의식의 초점이 맞춰지도록 이끌어주어야 한다.


그러한 앎의 체험은 인간으로서의 삶이란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라는 깨달음으로 이끌어준다.


https://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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