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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Aug 25. 2017

심리적 '얽힘'을 푸는 어루만짐

접촉의 심리치료 49 |  생존을 위한 대안, 여벌시스템

‘바로 그것’이 아닌 대안으로 이끄는 심리적 ‘얽힘’과 터치

종편 티브이에서 요즘 인기 있던, 청춘남녀들의 짝짓기 프로그램 ‘하트 시그널’이 종영될 모양이라 즐겨보던 아내가 좀 아쉬워하고 있다. 이전에 필자도 짝지어주기 프로그램의 원조격이었던 '짝'을 즐겨보았었다. 짝을 찾기 위해 애태우는 선남선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사이의 미묘한 감정 변화와 역학적인 관계구도가 예측하기 어렵게 변해가는 걸 보면 아주 재미있었다. 물론 당사자들은 애가 타겠지만. 수많은 오해와 이해가 노출되면서 밀착과 소외, 융합과 분리, 사랑과 미움이 그들 관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힌다. 

우리 삶에서도 가족 또는 사회적인 관계 안에서 심리적인 갈등 요소가 되는, 그러한 ‘얽힘’은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변화의 촉발제로 아주 미묘하게 작용한다. 그러한 수많은 자극들에 대한 마음의 반응을 경험하는 성장통을 통과의례처럼 거치면서 남자와 여자는 서로 마음에 두고 있었던 짝과 연결된다. 그 선택에 결정을 미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감정적인 요인일 수 있다. 그래서 정말 예측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스치듯 지나간 잠깐의 신체적인 접촉, 따뜻한 터치은 아주 미세했지만 감정을 폭발적으로 증폭시키며 관계에서의 선택에 대반전을 가져오기도 한다.


한 여성은 자신에게 적극적인 남자와 소극적인 남자 사이에서 고민을 하다가, 모든 이들의 예상을 뒤엎고 소극적인 남자를 선택했다. 그 여성의 대답은 이러했다.

해변에서 춤을 출 기회가 있었는데, 손과 어깨를 잡는 순간,
‘아, 이 사람이다’라는 느낌이 오더라구요.

이 사례의 체험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내 몸의 거죽인 피부에 와 닿는 순간 그 감각체험은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내 마음에서 느낌이 일어나게 한다. 말로 옮겨지는 어떠한 정보는 판단이라는 사고 과정을 거치지만 이러한 신체적인 접촉 신호는 즉각적으로 반응하게 한다. 그런 심리적인 요인들이 작용해서 여벌의 다른 짝과 이어지기도 한다. 여벌을 찾지 못한 남자 또는 여자는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자존심을 내세우거나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상황을 그럴듯하게 합리화시키기도 한다. 여기에서 여벌이란, 본래 소용되는 것 이외의 것, 즉 대안으로서의 어떤 대상을 뜻하는 것이다. 이러한 심리적인 ‘얽힘’의 갈등 장면을 체험한다는 것은 인간관계를 좀 더 큰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인간적인 성숙으로 이끌어 줄 수도 있다.       


취약함을 보완해주는 생명의 신비

이러한 얽힘이 가져오는 여러 가지 다양한 갈등 상황과 선택의 반전을 짝짓기 프로그램의 예를 통해 보았다. 짝을 위한 선택은 인간의 생존과 종족보존을 위해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며 본능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아니면 유사한 다른 것을 선택하도록 이끌면서 그러한 에너지는 나름대로의 기능과 역할을 다한다. 

진화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인간의 몸은 생존을 위해 적응할 수 있도록, 또 최적의 기능을 스스로 조율할 할 수 있도록 변해왔다. 적응에 필요하다면 나눠지고, 묶어지면서, 배치되고,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역할하도록 구조를 이루고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모양새는 제각기 다르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생존을 위한 적응이라는 자연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  

이달희 사진

서양에서는 기능과 미적 기준에 따른 균형으로 파악하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생성과 성장, 소멸에도 법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음양과 오행사상이 만들어졌다. 개별적인 기관과 요소들은 독립적으로도 기능하는 것 같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대해서 기본적인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하나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 우리가 개인과 사회, 자연의 법칙을 하나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다. 그물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자연의 모든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회적 관계, 그리고 소우주라고 하는 우리 인간의 몸에 있는 모든 신체 기관은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기능에 있어서 주된 역할을 맡도록 정해진 것이 있지만 그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때에는 보조적인 여벌 시스템이 그 역할을 맡도록 되어 있다.     


상실의 아픔 어루만져주는 사랑의 터치

사람의 몸을 보면 위협적인 신체손상에도 불구하고 생존을 위해 대체 가능한 기관이 있다. 우리 몸에 대칭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팔 · 다리 · 눈 · 콧구멍 · 귀 · 폐 · 신장 등이 두 개씩 한 벌인 짝으로 되어 있다는 게 그런 예이다. 양쪽의 젖가슴은 아이의 생존을 위해 절묘하게 창조된 기관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셸리 테일러(Shelly Taylor)는 어머니가 아이를 돌보는 모성의 작용에도 이와 같은 보완책이 마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아기의 생존에 반드시 필요한 보살핌을 위해 모성 호르몬인 옥시토신이 주된 기능을 하지만 옥시토신의 방출에 문제가 생길 때는 모성 행동에 관여하는 또 다른 호르몬들이 모성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대신해준다. EOP(내인성 오피오이드 펩타이드), 에스트로겐, 프로게스트론, 프로락틴 등이 그런 역할을 하는 호르몬들이다. 

우리 몸에서 주요한 하나의 기관이나 경로가 손상이 되거나 상실을 하게 되었더라도 그것을 대체할만한 여벌 시스템은 상실된 그 기능을 보완해주기 위해서 더 강화된다. 그래서 잠시 잃었던 균형감각을 되찾고 현실에 적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몸도 그렇지만 마음도 그러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로 상처받은 아픈 마음은 새로운 사랑으로 가슴이 채워질 때 다시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있게 만들어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마음이 참 아프다. 그러한 상실에 대한 아픔이 치유되는 애도의 과정 중에 만나는 친밀한 접촉의 체험은 그 아픔을 넘어 더 큰 사랑과 연결될 수 있게 하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이끎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애정 어린, 연민의 접촉은 폐허가 되어버린 마음에 다시 생명의 꽃들이 피어오를 수 있도록 해준다. 그가 존재하는 세상은 새롭게 리세팅(resetting)된다. 가슴 아픈 이가 대안으로 선택하는 여벌 시스템은, 그가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늘 존재하고 있다. '바로 그것'에 대한 사랑에 집중하고 있을 때에는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또다른 '바로 그것'이 여벌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그래서 아픈 마음에 사랑이 다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우리는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천천히 벗어날 수 있다. 


여벌의 선택, 그것은 사람이 이 힘든 세상을 살아낼 수 있게 해주는 신의 뜻이다.



https://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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