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의 심리학 38 | 삶이 시들할 때는 생명의 성지에 가라
눈 감으면 열대 밀림, 눈 뜨면 선경(仙境)
한여름날 이른 아침, 뿌연 물안개가 자욱하게 차오른 습지의 모습은 신비로웠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주변에 조성된 ‘경안천 습지생태공원’.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은 이곳은 고요했으나 역동적인 움직임이 느껴졌다. 습지 사이로 난 길은 둑에서 구불구불한 나무 데크, 그리고 풀숲 사잇길로 이어졌다. 소나무, 왕벚나무, 단풍나무, 감나무, 왕버들, 선버들이 있었고, 물속에는 수련과 백련, 홍련, 부들, 꽃창포, 아이리스, 갈대와 같은 수생 식물이 꽉 채워져 있었다. 습지 산책로를 걷다가 잠시 멈추어 눈을 감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에 귀 기울이면 마치 열대 밀림에 와있는 듯했다. 손으로 꼽을 수 없이 수많은 생명들이 아침을 맞으며 내는 소리들은 정말 아름다운 자연의 협주곡. 눈 감으면 열대 밀림, 눈 뜨면 선경(仙境)이다.
습지에는 생명 있는 모든 것들이 꿈틀대며, 푸드덕거리며 분주하게 아침을 맞고 있었다. 넓은 갈대 군락과 부들 군락 너머로 하얀 왜가리 떼들이 군무를 보여주고 있었다. 무리지은 새들의 모습은 흰 점으로만 보일 뿐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먼 거리였다. 그만큼 습지는 넓었다. 새들이 놀라지 않도록 중간중간에 조망대를 만들어두었다.
입구의 연밭에는 제 철을 지나 피어 있는 연꽃들이 몇 송이 보였지만 아름다운 모습은 이미 시들어 흩어진 채였다. 경안천 습지생태공원에서 만개한 연꽃들의 화려한 모습을 보려면 6월에서 7월 초에 와야 한다. 이 습지의 볼거리는 봄이면 줄지어 늘어선 버드나무의 연두색 새잎들이 피어나는 모습이 싱그럽고, 여름이면 화려한 연꽃과 수련과 다양한 여름 철새들, 가을이면 흐드러지게 피어난 갈꽃과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겨울이면 덩치가 큰 철새들인 고니와 기러기 떼가 먹이를 찾아 이곳을 수 백 마리씩 날아든다고 하니 아주 멋진 볼거리가 될 것 같다. 어느 계절이라고 아름답지 아니할까.
습지의 풍성한 생태
경안천은 강이 아닌 천이라 부르지만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와 가까워서 그 폭은 강이나 다름없이 넓다. 경안천 생태습지공원은 1973년 팔당댐이 건설되면서 일대 농지와 저지대가 물에 잠긴 이후 자연적으로 습지로 변한 독특한 곳이다.
물이 있어서 젖어있는 땅, 습지(濕地, wetland)는 물을 기반으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 모든 생명체들의 성역이다. 습지에서 물은 정화되고, 세상을 맑게 할 신선한 공기가 발생하며, 기후가 조절된다. 용인에서 시작해서 광주를 거쳐 팔당호로 들어가는 49.3km 길이의 한강 지류인 경안천에는 팔당호가 만들어지면서 생긴 ‘경안천 습지생태공원’가 있고, 그 인근에 인공으로 조성된 ‘경안천 하류 광동리 청정 인공습지’가 있다.
습지는 물의 이동을 지연시키며 영양분과 각종 퇴적물을 함유하게 된다. 이러한 영양분은 물속에서의 미생물 활동과 습지식물의 성장을 왕성하게 하여 수서곤충이나 어패류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이러한 수서곤충과 어패류는 또한 물새나 양서ᆞ파충류, 소형 포유동물의 먹이가 됨으로써 습지 생태계의 다양한 생물상을 유지하게 된다. 이러한 자연의 풍성한 생활환경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에게는 많은 공부 거리, 생각할 거리가 된다.
공존 공생의 생태적 삶을 생각한다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삶의 전형은 바로 공존과 공생의 생태적 삶이라는 것을 습지는 알려주어서 습지 산책은 의미가 있다. 자연계와 인간과의 관계에 대하여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 자신도 파괴된다는 사상이 생태(ecology) 운동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생명이 있는 것이든, 없는 것이든―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 연결된 관계의 망 안에서 존재한다는 ‘에코 패러다임’은 인간이 존재함에 있어서 관계를 맺고 있는 대상들과 마주할 때 어떤 감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다.
오래전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온전한 건강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은 어떠한 것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욕심의 수준을 낮추는 삶이다. 인간으로서의 성공이 꼭 많은 돈, 커다란 집, 맛있는 음식으로 표현되는 풍요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 중심의 자연관을 극복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나뿐만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나 중심의 이기적인 삶이 다른 이들에겐 고통을 주고, 지구환경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면서 우리 모두의 생존을 위협하는 고도성장과 지나친 소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해보아야 할 때다. 이런 때에 느리게 살며 거칠게 먹고 욕심의 수준을 낮추고 불편과 친해지는, 대자연의 일정한 전체 에너지양을 적게 소모하는 '저 엔트로피(low entropy)'의 삶을 사는 것, 온전한 삶, 온전한 건강의 시작이다. 느림의 슬로 라이프가 아니라 뒤로 물러서는, 백워드(backward) 라이프가 우리 모두 온전하게 지속적인 건강을 누리게 만들 온전하게 건강한 삶의 라이프스타일이다.”
내 삶이 왜 이런가 답답하고, 삶이 시들해질 때, 생명의 성지인 습지에 가보라. 대자연의 역동적인 움직임 속에서 나라는 존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연으로부터 또는 내 안으로부터 전해오는 답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애쓰며 바라고 추구하면 오히려 멀어진다. 습지 안에선 당신의 텅 빈 마음에 아름답고 신선한 무엇인가로 가득 채워질 수 있기를.
●습지에 대한 정보 찾기
국립환경과학원 국립습지센터 http://www.wetland.go.kr/
글과 사진 | 이달희
https://somaticpsychotherapy.modoo.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