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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Sep 06. 2017

열린 대성당, 비밀의 정원에 가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과 성가수녀원

빌딩 숲 속 고풍스러운 유럽풍 성당

덕수궁 돌담길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걷고 싶은, 그 가을이 다시 오고 있다. 덕수궁 주변을 지나다 보면 정오와 아침저녁 여섯 시면 언제나 경건하게 울리는 종소리가 시선을 한 곳으로 이끈다. 종소리를 따라간 시선에 들어온 노란 은행잎들 사이 주황색 기와지붕이 펼쳐 보이는 이국적인 스카이라인은 얼마나 상큼한 아름다움이었던지. 서울 한복판에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성당이 있다니.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이 바로 그곳이다. 대한성공회는 서울, 대전, 그리고 부산 3개 교구로 이루어져 있다. 교구장인 주교의 의자가 있는 곳이라고 해서 주교좌성당이라고 한다. 서울 주교좌 대성당은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의 이름을 빌어 영어로는 Sts. Mary & Nicholas' Anglican Cathedral이라고 불린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이 근대 건축물은 1978년 12월 18일에 지정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35호이다. 

대한성공회는 다가오는 9월 29일 선교 127주년을 맞는다. 선교를 위해 영국에서 찰스 존 코프(Charles John Corfe, 한국명 고요한) 주교가 1890년 제물포항에 도착한 날을 기념일로 정한 것이다. 대한성공회는 선교 초기부터 한국문화의 토양 깊이 뿌리를 내린 교회가 되고자 토착화에 힘썼다. 그래서 성당의 건축에도 한국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강화도의 강화 성당과 온수리 성당, 청주 성당은 오래된 한옥 성당으로 유명하다. 

아무튼 고층 빌딩들의 숲인 서울 도심에서 유럽의 고풍스러운 성당 정취를 그렇게 머리끝으로만 살짝 보여주던 성당이 이제 곧 온몸을 그대로 보여주게 되었다. 세종대로와 대성당 사이를 두껍고 높은 벽처럼 가로막고 있던 일제 강점기의 잔재 국세청 남대문세무서 7층 건물이 재작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철거하기로 하고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대성당 앞에 설치된 가름막 안에선 서울시청 신청사와 지하로 연결되는 시민을 위한 전시 공간 공사가 한창이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부활의 참된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도심 속의 거룩한 성소

겉모습만 흘낏 보고 지나다녔던 이 성당 안을 구석구석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명상 길벗' 모임을 이끄시는 대한성공회 부산교구 5대 교구장 윤종모 주교님의 초대 덕분이었다. 성당 입구에는 종교개혁 5백 주년을 맞는 한국교회 캠페인 ‘나부터 새로워지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길게 걸려있었고, 한정식집 달개비와 오래된 카페 세실이 있는 별관과 성당 왼쪽 사이의 공간에는 초대 한국인 사제 김희준 마가 신부 흉상과 한국전쟁 중에 순교하신 성직자들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 그늘이 좋은 큰 나무 아래에는 탈북여성들의 자립 프로젝트로 운영되는 노천카페 그레이스가 있어서 점심시간이면 휴식을 즐기려는 주변의 직장인들로 번잡했다. 

이곳에 자리 잡은 최초의 성공회 성당은 고요한 초대 주교가 매입한 한옥이었다. 그 한옥은 보존되어 있지 않고, 지금의 대성당은 1922년 9월 4일에 착공해서 1996년 5월 2일 완공되었으니 햇수로는 74년이 걸린 셈이다. 하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1926년부터 공사가 중단된 채 70년 동안 미완의 상태였다. 성당 재건축은 선교 100주년을 맞는 1991년에 결정되었다. 그러한 결정이 있고 난 뒤, 놀라운 일이 있었다. 원래 설계도는 분실된 줄만 알고 있었으므로 설계 단계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큰 과제였다. 하지만 한 영국 관광객이 그러한 소식을 듣고 자신이 근무하는 영국 렉싱턴 지역 도서관에서 원래 설계도를 본 적 있다고 알려주었던 것. 대성당의 건축은 그렇게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영국왕립건축협회 소속 건축가 아더 딕슨(A. Dixson)의 처음 설계도면 그대로 지어진 성당은 마침내 완공되었다.      


성당 바닥에 성당 건립 주교 유해 안치

십자가 모양으로 지어진 서울 성공회 주교좌성당은 대성당과 소성당 두 공간으로 크게 나뉘어 있다. 지하에는 별세한 성공회 신자들의 추모공간인 안식의 집, 집회 공간인 프란시스 홀(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헌정했다고 한다), 식당이 있고, 한옥 별채로 주교 집무실인 경운궁 양이재, 사목관, 그리고 성가수녀원과 피정의 집이 있다.  

1층 사무실과 성물방을 지나가면 소성당인 ‘성 세례자 요한 성당’이 왼쪽으로 있다. 아늑한 동굴 같은 느낌으로 작은 규모의 의식이 치러지는 공간이다. 이곳에는 1920년 서울대성당을 건립한 제3대 교구장 마크 트롤로프(M.N. Trollope, 한국명 조마가) 주교의 유해가 영구 안치되어 있다. 유해 위 성당 중앙 통로 바닥에는 그의 형상이 동판 부조로 장식되어 있어서 다른 종교시설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모습이었다. 조선시대 한양 사대문 안에 왕이 아닌 다른 이의 시신을 안치하는 것이 금지돼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하에서는 가능한 일이었다고 한다. 그 부조 위를 밟고 지나가기가 께름칙해서 한국 신자들은 피해 다닌다. 이 소성당의 오른쪽에는 세상을 떠난 대한성공회 주교 두 분의 유골이 안치된 추모공간이 있다.

성당 뒤편으로 난 출입구로 마리아-니콜라 성전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제대 배경장식인 황금색의 대형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숨이 멈추어지면서 잠시 압도된다. 영국 화가인 조지 잭크가 디자인한 것을 1927년부터 38년까지 11년 동안 손으로 시실리 전통에 따른 채색 각석(tessera)으로 모자이크 했다고 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모자이크 벽화는 소박한 로마네스크 성당에서 화려하고 아우라가 가득 찬 성스런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676호이다.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제단화는 반 돔형으로 윗부분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그 아래로 중앙에는 아기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 왼쪽에는 성 스테파노, 사도 성 요한, 오른쪽에는 성 이사야과 성 니콜라스 주교가 있다.  사도 성 요한은 신약 성경을, 예언자 성 이사야는 구약 성경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든 책에는 라틴어로 ‘나는 세상의 빛이다(EGO SUM LUX MUNDI)’라고 쓰여 있다. 이 성화는 국내에 도입된 모자이크 중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름다운 제대화. “나는 세상의 빛이다.”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영국에서 2년 10개월간 제작해 1985년 설치되었다. 파이프가 1450개로 1450개의 음을 낸다.


오방색을 소재로 한 스테인드그라스


예수의 열두 명의 제자(사도)들을 뜻하는 12개의 기둥이 성당 지붕에서 내려오는 아치들을 받치고 있다. 기둥 모양은 허리 부분이 가장 볼록하고 천장과 밑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배흘림 기법이 적용됐다. 그리고 눈에 띄는 것은 일반적으로 성당의 유리 창문에는 성화를 이미지로 하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게 되는데 이 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특이하다. 성당 내부를 우리에게 더욱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창호문의 창살에 우리 전통의 오방색을 의미하는 은은한 오색 빛깔이다. 1995년 성당을 증축할 때 파리에서 활동 중인 유리공예가 심현지 씨가 만들었다고 한다. 


이 성당의 건축 양식인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이란 로마제국 때 서유럽 등지에서 유행했던 건축 양식이다. 두꺼운 벽으로 장중한 느낌을 주고 비잔틴 미술의 영향으로 반원과 로마 스타일의 아치로 동양적 느낌을 가미한 것이 독특하다. 건물 중앙의 큰 종탑과 그 옆에 달린 2개의 종탑, 모서리에 소탑 8개가 생동감 넘치게 이어져 있다. 성당의 십자가 모양에서 가로 구조물은 둥근 아치 형태로 되어있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과 이용했기 때문에 층높이가 낮고 둥글둥글한 느낌이 든다. 우리나라에선 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과 전주에 있는 천주교의 전동성당이 로마네스크식 건물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이 고딕보다는 덕수궁 터의 스카이라인에 어울리고, 한국의 성공회 선교 초기를 상징하듯이 순수하고 단순함을 표현하려 한 이유였다고 한다. 이에 비해서 천주교의 명동성당은 뾰족한 첨탑과 수직적이고 직선적인 느낌을 주는 고딕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유럽풍 성당과 전통 한옥의 묘한 조화로움

성당 뒤편에는 시민들이 항상 기도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인 ‘평화의 기도처’가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자리 잡고 있는 전통 한옥 두 채 중 왼쪽은 주교관으로 쓰이는 양이재(養怡齋)이고 오른쪽은 사제들의 업무공간인 사목실이다. 양이재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267호로 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원래 대한제국의 마지막 왕실 공사인 덕수궁의 옛 이름인 경운궁(慶運宮)을 중건할 때 궁 안에 건립한 건물이었다. 궁 안의 황족과 귀족의 자재들을 교육하기 위해 설치한 근대식 교육기관인 수학원(修學院)으로 사용됐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 순례의 마지막 코스는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성가수녀원 방문이었다. 성당 뒤편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건물에 한옥의 문만 붙여놓은 성가수녀원 정문으로 들어갔다. 수녀원에 들어서자 피정의 집과 수녀원 이정표가 보였다. 넓지 않은 아담한 잔디밭 둘레에는 아기자기한 정원 장식물들과 나무들이 있었고, 맞은편으로 검은 바위들을 높게 쌓아 십자가를 모신 기도처가 있었다. 물이 흐르게 하면 보기 좋은 폭포 모양이 될 듯싶었다.  

내년이면 가름막이 벗겨지고 제 모습을 온전하게 보여줄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의 모습이 기대된다. 성당의 모습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장애물인 주차공간도 이번 기회에 지하로 들여보냈으면 좋겠다. 사계절의 모습이 다 아름답지만 낙엽을 밟으며 덕수궁과 정동 길을 한 묶음으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대성당을 둘러보면 가을 나들이 코스로 아주 좋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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