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존엄성, 몸으로부터 되찾다

접촉의 심리치료 05_ 휴머니즘 힐링

by 이달희

이러한 접촉의 순간은 정말 거룩하다고까지 할 수 있다.

이러한 접촉은 회복과 화해, 안식과 용서 그리고 치유의 몸짓들이다

-헨리 나우웬 Henry Nouwen, <영혼의 양식> 중에서


접촉, 아름다운 만남과 이별의식

그이의 몸에 손이 닿을 때마다 기도하듯 손이 머무는 그 접촉의 지점에 사랑의 마음을 탑처럼 쌓았다. 서로 몸과 마음이 통하여 하나가 된 듯, 말 아닌 말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오고 또 갔다. “고마워. 이 서방 덕분에 이 세상 편안하게 떠나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얼굴이 곧 편안해졌고 누군가가 뒤에서 ‘이제 너무 애쓰지 마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난 누가 내 몸 만지는 것 싫어’ 하시며 보살핌의 접촉 제안에 고개를 저으시던 장인께서 ‘나 좀 주물러 줘’하시며 중환자실에서부터 내게 몸을 맡겼다. 누군가에게 무엇을 받는다는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시던 그였기에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렇게 누군가와의 접촉을 싫어하시던 장인께서 세상을 떠나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나, 이 서방만을 찾으셨고 내 손을 통해 몸과 마음의 평화를 얻으시며 깊은 잠을 주무시듯 떠나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접촉하며 환영받으며 이 세상에 태어난다. 그리고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과 접촉하며 위로받고 힘과 용기를 얻으며 세상을 살다가 마침내는 그 손으로 따뜻하게 배웅받으며 저 세상으로 돌아간다. 그런 이에겐 이 세상에서 주어진 삶이란 축복이다.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이 제 등에 닿는 걸 느끼면서 아버님 생각이 났어요. 돌아가시던 그 날, 침대에 옆으로 누워 계시던 아버지를 뒤에서 안아드렸던 그 기억이……(울음) 저희는 그런 걸 잘 못해요. 무뚝뚝해 가지고. 되게 쑥스러워하는데. 제가 우리 아버지 안아드리고 ‘아버지 참 예쁘다’ 그러고…… 그날 돌아가셨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앞서 떠나보내고 상실의 아픔으로 깊은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내담자는, 신체심리치료의 초기 단계에서 따뜻한 접촉의 감각체험이 일깨워준 이런 기억을 회상했다. 그리고 그가 내면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슬픔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 만남의 그 날, 아버지와 딸은 생전에 하지 못했던 접촉으로 사랑을 서로 전했고, 그 딸은 이제 그 접촉의 느낌이 이끌어주는 자기 내면의 탐색을 통해 자신에게 남겨준 의미가 무엇인지 찾고 있다. 이처럼 나와 내담자의 사례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담은 손길로 온기를 나누는 접촉 행위는, 아픔을 달래주는 위로와 위안의 의미를 넘어 떠나는 이와 남겨진 이 모두에게 사랑으로 함께했던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는, 특별하고도 진정한 이별과 애도의 의식이다.


몸에서 마음을 찾다

이처럼 인간의 생애 모든 순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서 삶에 에너지를 불어넣어주며, 생명현상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친밀한 접촉행동인 ‘터치’에 대해서 심리학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 이전만 하더라도 심리학자들 대부분이 신체적인 접촉의 효과, 우정이나 매력, 사랑에 대한 실험적인 접근 자체를 금기시하고 있었다. 대학들 역시 인간 심리에 대해 관념적이고 지나치게 성적인 방식으로 접근하는 프로이트 정신분석학과 어떻게든 거리를 두고자 했으며, 인간의 개인적인 영역은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았다. 학문으로서의 심리학이 시작된 서양에서 주류였던, 몸과 마음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심리치료에도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 결과 말로 소통하는 대화치료 방식에서 지적 접근을 강조하면서 심리치료에서 신체 현상을 분리시켜버렸다.


이러한 언어적 심리치료의 불합리에 대한 반동으로, 몸을 통해 마음에 다가가는 역발상의 심리치료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한 사람은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 Freud의 제자였던 정신분석가 빌헬름 라이히 Wilhelm Reich(1897~1956)였다. 그는 자연스러운 욕구와 감정을 계속적으로 억압하게 되면 사람의 몸과 마음은 경직되고 만성화되면서 마치 갑옷을 입은 것처럼 단단하게 무장한 것과 같게 된다고 했다. 이러한 상태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몸의 문제와 병증을 만들게 되므로 근육이 풀어지면 마음도 풀려서 심적 장애도 치유된다는 것을 밝혔고, 심리치료에서 그의 이론을 따르는 실천가들을 라이히언Reichian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후 접촉에 대한 연구들이, 20세기 중엽에 접어들면서 과학의 영역 안에서 실험과 관찰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일본 원자폭탄 투하, 한국과 베트남, 그리고 최근에는 중동에서 일어나고 있는, 비참한 인간 참극의 전장(戰場)을 인류가 지켜보고, 그 피해를 공유하면서 시작된 것이 바로 ‘접촉과 애착 attachment’에 대한 연구이며 그것이 ‘터치의 심리학’의 뿌리가 된다. 1950년대에 이루어진 부적응 아동 연구를 통해 존 볼비 John Bowlby는 애착 이론의 아버지가 되었고, 해리 할로우 Harry Harlow가 수행한 원숭이 실험을 통해 ‘접촉 위안’이란 용어가 탄생했다.


접촉을 통한 공감과 소통

터치의 심리학 흐름의 핵심인 신체 접근방식의 심리치료에서 근본이 되는 메시지는, 인간에게 사랑이 담긴 접촉의 손길은 건강한 생존과 관계를 위해 본능적으로 필요하며, 몸을 통해 마음이 치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 몸의 에너지 체계가 평형상태를 되찾고, 순환이 막혔던 곳이 풀려 소통되게 되면 몸과 마음,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을 자연스럽게 이루게 되며, 신체 작업을 통해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에는 접촉을 통한 공감의 소통이 이루어지게 된다. ‘신체심리치료’는 이러한 맥락 위에 있다.


접촉이란, 생득적인 인간 현상의 속살이 ‘과학’이란 이름으로 아주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인간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간의 갈등으로 공격성은 안팎으로 증폭되고 있고, 환경 대재앙으로 지구의 위기상황이 예고되고 있는 이즈음에, 다시 가장 인간적인 행위, ‘접촉’에 대한 관심이 크게 되살아나고 있는 것은 왜일까? 그것은 생명을 가진 존재들이 근원적인 곳에서 본능적으로 살 길을 모색하게 하는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을 잃고 헤맬 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주변을 돌아보면 길이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새로운 문화적인 흐름과 경향은 어느 한쪽이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균형이 깨어졌을 때 나타난다. 건강과 치유에 있어서도 인간다움, 인간성을 되찾자는 ‘휴머니즘 힐링 humanism healing’이 요즘 트렌드 키워드가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고자 하는 ‘인간의 접촉 문화’에 대한 복권 움직임이 심리학에서 뿐만 아니라 지구촌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의미 있게 바라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몸에서 속마음을 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