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의 심리치료 19_모성의 대리체험
신체 접촉을 통한 촉각은 태어나면서 가장 먼저 나타나며 가장 빠르게 발달되는 감각으로 모든 감각의 어머니다.– <Touching>의 저자 애쉴리 몬태규-
치과의사는 냉정했다. 침착하게 빠른 손놀림으로 시간을 줄여준 건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불안과 공포의 마음, 평소에 치아 관리를 잘 할 걸 하는 후회, 좀 부드럽게 해주면 안 되나 하는 불만, 왜 배경음악은 틀지 않는 거야 하는 짜증, 임플란트 비용을 어떻게 갚지 하는 계산 등 많은 생각들이 온 몸과 마음을 긴장시켰다. 이윽고 잇몸을 실로 꿰매면서 공포의 작업이 끝나자 간호사가 다가왔다.
“힘드셨죠? 아유, 이 땀 좀 봐. 잘 참으셨어요.”
눈물까지 찔끔 흘릴 정도로 고통을 참아내느라 아무런 대꾸를 할 힘조차 없었다. 그런 나의 반응이 안타까운지 간호사는 이마에 종종 맺힌 땀들을 티슈로 닦아내고는 턱에 가만히 손을 살짝 대었다. ‘이건 무슨 느낌이지?’ 고통스럽다는 느낌과 그 많은 생각들이 왠지 뒤로 훅하고 밀려가버렸다. 간호사의 자상한 마음이 담긴 ‘돌봄’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흐뭇해졌다. 그 다음부터는 치과 가는 일이 이상하게도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 한 달 뒤에 오면 되겠습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섭섭함마저 느껴졌다. 고통 받는 순간, 따뜻한 접촉이 주는 위로와 위안을 몸으로 느꼈던 체험이었다.
나의 체험과 같은 상태를 <인간의 친밀 행동 Intimate Behavior>을 쓴 영국의 동물행동학자 데스몬드 모리스(Desmond Morris)는 ‘일시적 유아성 증후군’이라고 말한다. 병에 걸리면 어쩔 수 없이 자리에 드러눕게 되는데, 여기서 건강할 때에는 누리지 못했던 큰 위안을 얻게 된다. 고통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약해진 사람은 유아적인 심성에서 나오는 메시지를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보낸다. 그러면 보살핌의 손길을 줄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의료인, 몸을 만지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어머니의 손길을 대신해줄 수 있는 사람의 ‘일시적 모성’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세상에 태어난 인간은 최초의 의사소통도 신체적 접촉을 통해 이루어지며, 신체 접촉을 통해 타인과의 사랑과 신뢰를 배우기 시작한다. 말이 아니라 따뜻한 접촉의 손길로 마음을 전달받았을 때 마음이 안정되었거나, 불안한 마음이 덜어졌거나, 함께하고 있다는 연결감과 일체감을 느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접촉하는 인적 네트워크 위에 존재한다. 그래서 사람이 거스를 수 없는 네 가지 고통, 즉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순간마다 내 곁에는 누군가 나를 돌봐주고 보살펴주는 이의 접촉을 통해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에너지가 방전되듯, 내 안에 긍정적인 자원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고갈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누군가와의 접촉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은 안전함과 돌봄을 받고 있다는 믿음과 위안의 마음이 들게 한다. 그러한 접촉은 한 사람에게 삶을 살게 해주는 생명줄, 생명의 안전망이 되어 준다. 이처럼 사랑과 친밀함을 느끼는 마음인, ‘정(情)’으로부터 나오는 이러한 접촉행위들은 놀라운 치유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따뜻한 정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은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는 말과 동의어다.
어른이 되어서도 따뜻한 사랑과 친밀함이 뭍어나는, 정이 가득한 보살핌의 손길은 내 몸과 마음에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았던 엄마의 사랑이 담긴 손길을 대신해줄 수 있다.
"YOU RAISE ME UP" - MARTIN
https://www.youtube.com/watch?v=lNdZy4ewG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