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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달희 Mar 26. 2017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른
마음의 가시_짜증

접촉의 심리치료 37_유연함

우리는 결핵 때문에 심한 공포를 느껴왔고, 또 암을 예방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결핵이나 암보다 더 무서운 이 병은 점차적으로 더 증가되고 있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나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은 ‘짜증’이다.
진실로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에 대한 원인은 짜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선용하는 것은 짜증을 없애는 것, 활기를 증가시키는 것, 혹은 즐겁게 사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랄프 소크만 Ralph Sockman. 미국의 목사          

살아있으면서도 살아있지 않은 사람들 

온 세상이 봄기운이 완연하면서 세상이 밝아졌다. 꽃들이 여기저기서 활짝 피어나고 세상이 아름다운 색들로 채색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아무런 색깔의 빛도 보이지 않는 어두운 상태인 무채색의 검정, 그림자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다. 아무런 희망도 없이 절망의 상태에서 그저 살아서 숨은 쉬고 있지만 몸과 마음은 산 자의 그것이 아닌 무기력한 이들. 그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도 그러한 색으로 자신의 상태를 표현하곤 한다.   

   

“몸이 불편하다고 해서 신체심리치료를 검색해서 다닌다고 하더니 사람이 이렇게 달라졌어요.”     


심리상담전문가들의 모임인 한 학회에서 정신분석 이론의 한 흐름인 대상관계 이론(object-relations theory) 발표를 하던 교수가 자신의 상담사례라고 하면서 한 내담자가 자기를 표현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앞의 그림에는 검은 바탕에 아주 작은 자신이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그림이었고, 뒤의 그림은 도화지 한가운데 자신이 밝은 모습으로 크게 그려진 그림이었다. 누가 보아도 자존감과 자아강도가 확연하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던 그림이었다. 사례의 히스토리를 얘기하는데 바로 필자를 찾아오던 한 내담자의 이야기였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라는 전제를 가지고 몸과 마음의 통합치유 작업을 이끌어가는 신체심리치료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찾아왔던 그 내담자를 언급하고 있었다. 교육이 끝나고 내담자 사례를 공유한 그 교수와 인사를 나누었고, 이후 말로 하는 상담에서 진전이 없는 내담자들을 내게 보내주고 있다.      


마음의 배경이 온통 검정의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 내담자와의 첫 상담에서 주목했던, 그의 상태를 언급하는 이야기 중에 한 부분이 바로 ‘짜증’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그룹의 누가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것이 눈에 거슬려서 짜증이 많이 난다라는 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의 말을 들으면서 풀리지 않은 ‘화’가 마음속에 있군요 했다.      

짜증과 화는 대상과 원인이 있다

그 내담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짜증이란 도대체 어떤 상태인가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우리말로 짜증은 사전적으로는 마음에 꼭 맞지 아니하여 발칵 역정을 내는 짓 또는 그런 성미이고 불쾌한 마음의 상태로, 한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격양, 화 등을 일컫는다. 이 감정은 좌절이나, 노여움과 연결된다고 되어 있다. 한 개인의 짜증이란 감정상태는 매우 주관적이고 전후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경험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그 개념과 인과관계를 정리하기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왜 짜증을 내는가(Annoying : The Science of what Bugs Us)>라는 책을 낸 미국 조 폴카와 플로라 리히트만은 ‘누구나 짜증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왜 짜증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정신의학자 케빈 크레이그(Kevin Craig)는 감정과 기분을 구별한다. 그는 감정에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핵심이고, 반면 기분은 생각이나 느낌을 확대시키거나 걸러주는 렌즈나 필터에 가깝다고 언급하고 있다. 짜증나거나, 놀라거나, 혐오감을 느낀다는 것은 자기 외부의 어떤 대상에 대해 이런 감정을 갖는 것이다. 놀람 ・ 행복 ・ 분노 등의 상태는 감정이다. 이런 맥락에서 짜증난다는 느낌도 감정의 범주에 포함되며, 외부 요인 때문에 촉발된 이 감정은 보통 오래 지속되지 않고 사라지게 된다.    

  

감정조절에 관련된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인한 생리적인 문제나 만성적인 질병상태, 어떤 물질에 대한 알러지 증상도 짜증과 같은 공격적인 감정과 태도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아주 피곤하거나 과도하게 긴장하고 있을 때에도 조그만 일에 쉽게 흥분하고 예민하게 반응한다. 만성피로나 수면 부족, 불면증도 만성적인 신경과민을 유발하기도 한다. 심한 배고픔도 화를 촉진할 수 있으며 성적 불만족 또한 마찬가지다. 이러한 생리적인 요인을 비롯해서 모든 짜증과 화는 어떤 대상과 원인이 있기 때문이란 것이다.  

    

개인이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 즉 대상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 대상관계 이론에서 대상(object)이란 다른 사람(중요한 타인)을 의미하는데 이 내담자의 짜증 유발의 대상은 표면적으로는 그가 좋아한다는 걸 그룹의 한 여성 싱어였다. 하지만 그와의 상담을 하면서 그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근원적인 짜증 유발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자신을 늦은 나이에 외아들로 낳으신 이미 연로하신 부모님은 건강을 잃고 계셨고, 자신에 대한 큰 기대는 큰 부담이었다.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지만 취업의 길은 막막해서 자신이 경제적으로 자립하고 한 가정을 이루고 부모님을 모실 수 있을지 마음은 조급하지만 막막하고 답답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내담자에게서 짜증을 일으키고 있는 유발자인 실제 대상은 그 걸 그룹의 멤버가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만 자기를 신뢰하지 않고 자기 삶을 들여다보고 계신 그의 양육자 부모님, 또는 현실의 문제 상황을 잘 풀어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었다. 


늦게 본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는 부모의 보이지 않는 속박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대학진학 이후 따로 나와 살고 있지만 온전하게 자유로움을 느끼지 못하며 불안과 두려움이란 무게가 늘 함께 하고 있었다. 독일 출생 미국의 정신분석학자인 카렌 호나이(Karen Horney)가 ‘기본 불안’이라고 부르고 있는 이러한 불안은 상호관계가 안정적이어서 서로 신뢰를 바탕으로 사랑과 온정을 나누는 가정에서 양육되면 최소화된다고 한다.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양육될 경우에는 문제가 악순환 되어서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면 사랑에 대한 욕구의 자각이 증대되고,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결과로 불안감과 불안정감이 증가한다. 이러한 악순환은 오직 애정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어야만 해결된다는 호나이의 주장은 이 내담자를 이해하고 신체심리치료를 통해 그가 변화된 치료적인 성과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몸이 풀어지면 마음도 풀어진다

내담자는 연로하신 부모님으로부터 사랑과 관심 그리고 기대가 크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아낌없는 지원으로 부족함이 없이 성장했지만 따뜻한 보살핌의 손길을 체험하지 못했다. 사랑받고 있음을 몸으로 확인하지 못한 그는 늘 채워지지 않은 애정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하지만 부족한 자기 신뢰와 책임이란 부담은 어떠한 관계 맺기에도 장애가 되었다. 부정적인 자기 신뢰는 곧 외부 세계, 즉 타인과 세상에 대한 신뢰형성으로도 연결되지 않아 그를 불안하고 두렵고 무기력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에게 짜증이란 감정적 상태는, 사방으로 꽉 막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듯한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른 마음의 가시였다.     


첫 상담에서 이 내담자의 모습은 키는 컸지만 몸은 아주 말랐고, 어깨가 올라가 긴장되어 있었으며 등은 굽고 가슴은 안으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몸에서 ‘신체는 삶의 경험과 맞닿아있다. 무의식은 몸에 저장되어 있다’는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Sigmund Freud)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몸에 깃들어 있는 그 마음은 얼마나 불편할까 하는 생각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올라왔다.    

  

이탈리아의 신경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가 ‘원래 애착 관계에서 충분히 받아주지 못했던 안전한 보살핌과 따뜻한 접촉 경험을 다시 체험하게 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경험을 통합한다’고 말한다. 지금 여기라는 삶의 현실, 그 장(場)에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고 이해받고 있음에 대한 확인과 믿음의 존재가 자신의 삶의 장면에서 가까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신뢰관계의 체험이었다. 따뜻한 마음을 담은 손길이 닿아 접촉하는 접점에서 전해지는 몸으로부터의 언어는 사랑과 보살핌을 온전하게 받고 있다는 마음의 진실을 전한다. 온전하게 사랑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느낌은 몸을 느슨하게 만들어주고 단단하게 닫힌 마음의 문도 열리게 하면서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만들어준다. 몸과 마음에 장애가 사라지고 조화롭게 소통하고 균형을 잡으면서 내담자는 몸의 불편함이 사라지면서 몸에 맺힌 정서의 매듭도 풀렸다. 그리고 검은 그림자가 자리 잡고 있던 마음에 봄볕처럼 따뜻하고 밝은 빛이 가득 찼다. 바뀐 그의 삶에 대한 관점과 태도는 앞서 오래 지켜보아온 다른 상담가의 그림검사에서 그린 그림과 자신의 역동적인 삶의 선택 속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따뜻한 손길에 담긴 사랑의 마음은, 몸에 조용히 깃들어 한 개인의 치유에 강력한 힘과 긍정적 자원이 되어준다. 그림자 속에서 솟아오른 마음의 가시, 짜증은 몸과 마음이 유연해지면서 그렇게 사라졌다. 


몸이 풀어지면 마음도 풀어진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https://somaticpsychotherapy.modoo.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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