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심의 전시회 Better day <그 곶>을 다녀와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던 친구의 사진 전시회를 다녀왔다. 카톡으로 짤막하게 나마 서로 사는 얘기를 나누고서는, 전시회를 열 거 같다는 얘기를 해줬었다. 나중에 전시회를 열게 된다면 시간과 장소를 알려달라는 나의 요청으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런데 그 후로 감감무소식이라 이것도 나중에 밥 한번 먹자 같은 얘기였는지 내심 섭섭함이 생길 즈음이었다.
어느 날 그 친구의 이름으로 사진을 보냈다는 카톡 한 줄이 떴고, 나는 냉큼 카톡창에 들어갔다. 카톡에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듯한 느낌의 포스터가 있었다!
better'd
/Better day
신사역 부근 카페 베러디에서 'Better day'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전시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이 사진전은 사진작가 3명이서 주마다 돌아가면서 하는 릴레이 사진 전시회였다. 그 친구는 9/27부터 10/9까지 KUSIM(쿠심)이라는 작가명으로 전시의 한 부분을 담당했다.
릴레이 전시라는 개념은 처음 접해서 신기했고, 그냥 갤러리에서 전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카페의 남는 공간들을 활용해서 전시회를 하는 취지가 좋았다.
카페에 들어서니 이 사진이 제일 먼저 보였다. 친구가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찍은 사진들이라고 하는데, 유럽에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로서는 우리나라와 비슷한듯 어딘가 다른 풍경들에서 묘한 낯섦을 느꼈다.
사실.. 전시에 오기 전에 한 가지 걱정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전시를 어떻게 관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였다. 나는 예술을 관람하는 어떤 정석적인 방법이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걸 잘 모르니까 무엇을 봐도 느끼는 게 없는 거 같았다. 특히 추상적인 회화 그림 같은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해했던 기억이 있어서 예술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너는 보통 전시를 어떻게 관람하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내 고민거리를 얘기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그냥 내가 볼 수 있는 만큼, 보이는 만큼 자유롭게 보면 돼요"
라고 얘기해주었다. 어쩌면 굉장히 무성의한 답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안심이 됐다. 정말 그 친구의 말 그대로 그 그림을 보고 내가 보는 만큼 보면 되는구나. 어쩌면 나는 '정답'을 찾아 헤맸던 건지도 모른다. 사실, 정답은 어디에도 없었던 건데. 나한테 있었던 건데. 그걸 또 하나 알아갔다.
릴레이 사진전 속 이 친구의 전시 이름은 <그 곶>이다. 6개월 간의 교환학생 그리고 일상 속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느꼈던 이방인으로서의 모습을 곶으로 표현했다. 이방인을 돌출한 곶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인상 깊었다. 또, 관광지를 담아낸 사진이 아닌 그 반대편의 모습을 선별해 전시회로 꾸민 것도 흥미로웠다.
전시회를 다 둘러보고-
전시를 보기 전, 그 친구가 해준 말을 듣고 한 가지 다짐한 게 있었다. 사진을 '이해'하려 하지 말고, 마음으로 받아들여보자고. 그저 내가 느끼는 느낌대로.
그리고, 사진을 다 둘러 본 나의 느낌은 "무소음"이었다. 사진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물론 '사진'이기에 당연히 소리를 들을 수 없겠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사진 하나하나가 모두 평온했고, 고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공상태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내 감상을 이 친구한테 들려주었더니 참 신기하게도 이 사진들을 찍었던 당시의 마음가짐이 바로 그렇다고 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충분히 느낌으로, 마음으로도 전달될 수 있구나. 앞으로 미술 작품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