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인데, 혼자 집에 있다. 급하게 봐 달라는 교정지를 한 묶음 끌어안고 아무도 없는 집에서 고요히 글을 읽다가 문득 든 생각이 우습다.
‘나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북적이던 주말이 고요하니 낯설다. 신입사원 연수중인 둘째는 주말 엠티가 잡혀 있다고 오지 못했고, 큰애는 부산에서 입사 동기 결혼식이 있다고 못 왔다. 남편은 건설 현장에 발령을 받은 지 1년을 꼬박 채운 시점인데, 현장이라는 특징은 매주 토요일 쉬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늘도 출근을 했다.
아이들이 집에 왔다가 친구를 만나러 나간 주말과 아예 집에 오지 않은 주말. 혼자 있는 시간은 전자나 후자나 같은데 왜 느낌이 다른 걸까.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없어졌고 자유롭기 이를 데 없는 편안한 오후를 보내고 있는데 속이 허전하다. 눈알이 아프도록 문장을 꿰뚫어 봐야 하는 노동을 하면서 글자와 글자 사이를 비집고 들어앉은 부사와 형용사에 몰입하는 중에 그 좁은 1미리의 틈을 비집고 들어서는 낯선 공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것. 월요일 오전까지 마무리해서 보내야 하는 쉬지 않고 해도 빠듯한 작업을 수행하는 중에 왜, 쓸데없이, 이 낯선 감정의 공기가 주입되었는지. 예측불가의 감정 앞에 놀라는 중이다.
아무 노동이 없는 오후였다면, 그저 소설책 한 권쯤 읽고 있던 오후였다면, 어땠을까. 달라졌을까. 아이들에게 짐을 지우지 않고, 고요히 나의 일과 취미에 심취하며 나를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폭이 넓은 어른. 심심하다고 수선 떨지 않고 외롭다고 칭얼거리지 않고 묵묵히 엄격하게 나를 재단하여 들여다볼 줄 아는 폭이 깊은 어른, 나는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묻고 있는 것이다.
'그때 거기'의 '그'가 '지금 여기'의 '나'에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새벽'을 선물할 수도 있다. 그 감동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이어지며 쉽사리 소멸하지 않는다. 시간을 견디고 공간을 초월해 살아남은 고전은 대부분 이런 원형적 이야기다.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
현재, 우리집 발코니 식물들. 왼쪽 붉은 열매는 올해 첫 열매를 맺었다. 이름을 모른다는 게 흠 ㅎㅎ
*매일 일기를 씁니다. 매일 저녁 9시. 매일의 루틴을 만든다는 것,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