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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Oct 28. 2021

사진이 말을 해요

2021년 10월 27일




오전 10시 57분, 식탁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막 마시려던 중이었어요. 그때 드르릉 울리는 카톡 소리! 열어볼까 말까, 잠깐 망설였어요. 커피에 집중하고프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얼른 안방에 있는 폰을 들고 나왔어요. 커피 한 모금을 깊게 음미하듯 마시고 톡을 열어보았지요. 사진 한 장이 와 있더군요. 아!! 깊은 탄성이 나왔어요. 나도 모르게 신음처럼 품어낸 감탄사였죠. 하늘과 강, 산과 강, 그리고 내 마음과 숲이 하나로 묶이는 순간이었을까요? 삽상한 기운과 명쾌한 운치가 어우러진 풍경은 누구라도 탄성을 지르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 거예요. 조화롭다. 명경 같다. 깊다. 재인폭포 부근이겠구나…. 그때 문장 하나가 툭 올라왔어요.



“지금 한탄강에 왔습니다~~”



그 순간, 이 흔한 문장조차도 시(詩) 같더라고요. 누구라도, 이러한 가을편지는 여운이 남는다는 것. 저 한 문장의 행간을 가늠하자니 뭉클 북받치는 그 무엇이 가슴에 차오르더라고요. 상관도 없는데, 한 지인이 보낸 사진 한 장일 뿐인데, 왜 서러웠던 기억의 산물이 공명하듯 제 안을 둥둥 울리며 걸어 나오는것일까요?




스물두 살이었어요. 프러포즈를 받았어요. 딱 저 빛깔의 가을 산에서요. 딱 저 빛깔의 단풍잎 아래서요. 대구 팔공산이었어요. 그날 저 빛깔의 강을 보았고 저 빛깔의 산을 보았고 삽상한 공기만큼이나 시리고 아팠던 날이기도 했어요. 왜 하필 팔공산까지 가게 되었는지, 울산에서 대구까지 왜 기차를 타고 간 것인지. 그는 그날 투명한 코르크 마개가 있는 빈 병을 왜 가져왔는지. 편지는 왜 쓰라 했는지.

편지는 쓰지 않았고, 20년 후 아들딸은 상상할 수 없었고, 진실한 프러포즈는 공허했고, 둥둥 떠다니는 낙엽 같았고, 내 마음은 스파게티보다 더 복잡하게 엉켜버렸고, 잠시 무서웠고, 인생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했고. 그의 사랑이 좋고 행복했던 게 아니라 서럽고 슬프고 외롭고 무서웠던. 그 하루를 나는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시점에서 생각하게 되었네요. 아무 상관 없는 사진 한 컷으로 말이지요.


그날 20년 후에 열어볼 타임캡슐은 만들지 않았고, 그의 프러포즈로 우린 그날이 끝이었고, 나는 며칠 몸살을 앓았고, 그는 앓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해 겨울 그는 선을 보고 결혼을 했고 전임 사역자가 되었고. 어린 나는 좋아하는 그를 떠나보내야 했고, 떠난 그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고. 

지금 나는 평신도로 건강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고, 그는 담임목사로 훌륭한 사역을 잘하고 있을 것이고….


딱 아는 만큼 잠시 말을 고르는 이 순간이 있을 뿐이고. 그 모든 것들은 이야기의 형태로 내 몸에 남아 있을 뿐이고.^^






*일기를 쓰기로 했습니다. 매일 저녁 9시. 매일의 루틴을 만든다는 것, 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지요.

그 일기 중 하나, 가끔 여기 올려놓으려고 합니다.  


사실,  어제 일기는 쉬어갈까 했었는데, 올려놓습니다. 사진 보내신 분을 위한 배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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