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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Feb 08. 2022

나의 태양

짧은 소설




  나를 동요케 한 건 햇볕이었어. 햇살 때문이라고밖에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강렬하고도 부드러운 겨울 아침 햇살을 자세히 본 적 있니? 나는 말이야. 햇볕 때문에 나의 존재를 망각할 때가 더러 있어. 나도 나를 모르겠는 어떤 외력이 존재하는 것 같단 말이지. 햇살을 등지고 콘크리트 박스 속으로 숨는다는 건 빛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우기고 싶었어.


  묵묵히 출근 준비를 했어. 오늘 일정을 점검하며 집을 나섰지. 분명 출근을 하고 있었던 건데 나는 반대 방향의 버스를 타고 있더라고. 태양도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던 모양이야. 속으로 환호를 질렀지.


  무턱대고 탄 버스는 강변을 따라 달렸어. 창밖 기온은 느낄 수 없는 유난히 맑고 청명한 겨울이었지. 차창 안 공기는 내부 스팀이 평정했겠지만, 햇볕 영향이 컸었던 것 같아. 그 시간 버스 안으로 투과된 온도는 따스하다는 표현으로는 역부족이었거든. 버스 안에서 느끼는 안과 밖은 온통 봄날 같았어. 그게 햇볕이 뿜어내는 품격이었던 거지.


  버스에서 내려 강변을 걸었어. 블랙 모직 코트 속으로 태양열이 작동하더군. 태양과 블랙의 조화를 생각했어. 음과 양의 조화처럼 둘의 전류가 제대로 흐른다는 느낌이 들었거든. 차가운 기온에도 등짝으로 열기를 뿜어내다니 대단한 위력이지. 걷다가 멈추고 걷다가 멈추고를 반복하다 내가 멈춘 곳은 물오리 떼들이 노니는 강가였어. 물수제비돌처럼 날갯짓하는 물오리들을 오래도록 바라보았어. 누군가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물오리 떼를 응시하고 있다는 것, 예사로운 건 아니겠지? 낯선 그녀가 따뜻하게 느껴지더라. 그녀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거니, 그녀도 나처럼 중요한 약속을 미루고 강가로 달려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지. 블랙 모직 코트에 목도리를 칭칭 감고 있었거든. 우연히 고갤 돌렸을 때 무심한 표정까지 우린 똑같았어. 나와 같은 사람이 한 발자국 건너에서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다는 것이 든든하더란 말이지. 그녀는 저쪽 나는 이쪽 나란히 서서 물오리 떼 두 마리를 바라보고 있었던 거지. 누군가는 어쩜 우릴 연인으로 봤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눈이 마주쳤어. 서로 멋쩍게 웃었지. 그녀도 웃고 나도 웃고. 서로의 웃음이 마스크 너머로 보였던 거지. 나의 착각일 수도. 교감이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감동, 따스함, 편안함, 아련함, 그런 것들이란 걸 알아.


  이쪽으로 쪼르륵 저쪽으로 쪼르륵, 그러다가 물속으로 들어갔던 오리떼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가 저쪽에서 쑥 고개를 내밀고, 그들의 사랑놀이를 오래도록 바라보았지. 그녀에게 말을 걸어볼까 몇 번을 망설이다 고개를 돌렸을 땐 그녀는 거기 없었어. 이쪽저쪽 찾았지. 그 사이 멀리 가지 않았을 것 같아 길 쪽으로 마구 뛰었어. 보이지 않았어. 아쉬움이 밀려오더라고. 허탈한 마음으로 터벅터벅 걸었어. 근처 카페 하나를 지나치고 또 걸었지. 햇살을 등지고 걷는 길이 따뜻해서 다행이라 여기며.


  길 건너편 카페로 들어갔어. 이쪽 카페는 응달이었지만 건너편은 양달이었거든, 햇살이 밀려들 거라는 예감이 적중했어.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시키고 햇살 드는 창 쪽으로 빈자리를 찾았어.



  “앗, 또 만났네요?ㅎㅎ”



  세상에 그녀가 거기 있었어. 나는 너무나 반가워, 나도 모르게 오랜 친구였던 것처럼 인사를 했지 뭐야. 그런 나를 지인이 보았다면 '너 그런 웃음 첨 본다!' 했을지도. 그만큼 반가웠던 거지. 화색이 돌았을 거야, 아마. 하하.


  그녀도 오랜 친구처럼 나를 맞아줬어. 온몸에 엔도르핀이 돌았어. 이런 기분 처음이었어. 나도 나를 모르겠는. 왜 그랬는지 말이야. 나의 목적지는 처음부터 그녀였던 걸까. 태양이 나를 중심으로 돌고 있었단 말도 맞는 거였는지도 몰라.



<끝>


마트가는 길, 오후 햇살


* 이게 소설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를, 짧은 소설이라고 명명하고 올려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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