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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Oct 12. 2020

내 이름은, 감나무야

훌륭한 감나무로 서 있는 나를 보았어. 꿈결처럼 말이야.

  



 “우와!”

 꽃이 피었어. 창밖은 꽃 천지야. 노란 개나리도, 분홍 꽃물 든 진달래도 내 마음을 흔들고 있어. 아침 햇살 속 매화 꽃잎은 꿈을 꾸게 해. 곧 살구꽃 복사꽃도 필 거 같아. 나에게도 봄이 왔어. 연둣빛 잎사귀가 삐죽삐죽 솟았거든.


 창문을 활짝 열었어. 바람이 달달해. 베란다가 아닌 창밖 저 햇살 속에 서 있고 싶어. 개나리 진달래꽃 옆이 아닌 매화나무 살구나무 옆에 서 있고 싶어. 그들처럼 나도 당당하게 꽃도 피고 열매도 맺고 싶어.

 처음에는 쓰레기 더미 속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했어. 흙 내음을 맡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거든. 그런데 말이야. 점점 욕심이 생겨. 껍질을 깨고 나온 싹을 매만지며 몇 번이고 꿈이 아니길 바랐던 적도 생각 나. 화분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기적인데.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자라고 또 자란 것도 기적인데. 지금 나는 행복한데… 왜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참, 내 이름은 감나무야.

 나는 아파트 베란다에 살고 있어. 놀랐지? 감나무가 베란다 화분에서 자라고 있다니 말이야. 베란다 가장자리 사기 화분 안에서 네 해를 보냈어. 아니 다섯 해라고 해야 맞겠다. 1년 동안 화분 흙속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니 그 시간까지 합하면 아마 다섯 해는 넘은 것 같아.

 나는 처음 씨앗이었어. 아, 씨앗이 아니었구나. 감이었다고 말해야 정확하겠구나. 훗날 내가 태어나고 자라고 살았던 곳을 자세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오겠지? 내가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은 우연이었어. 우연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해. 운명인 거지.


 “오늘은 꼭 감을 따야 해요. 내일 장에 내다 팔아야 하거든요.”

 할머니는 장대를 손질하며 소리쳤어. 주렁주렁 열린 감을 다 먹을 수 없으니 5일장에 내다 팔아 반찬값이라도 해야 했으니까. 내일 팔지 못하면 다시 또 5일을 기다려야 했거든.

 나는 할머니의 울안에서 자란 감이었어. 그날 오후 내내 할머니 부부는 장대로 감을 땄어. 장대에 매달린 감은 요술을 부리듯 장대 끝에 매달려 마당으로 떨어졌어. 그걸 잘 손질하여 할머니는 망태기에 담아서 오일장으로 갖고 갔지. 그러니까 나는 할머니 울안에서 자라서 할머니가 장대로 딴 감이었고, 망태기에 담겨 시장 난전에서 손님을 기다렸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시장 난전, 가을 햇살이 유난히 눈부셨던 그날 나는 처음으로 세상으로 나왔던 거지.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 그 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에서 왔을까?


 꿈을 꾸듯 손님을 기다렸어.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눈부신 햇살 속에 앉아 중얼거렸어. 몸을 공굴리며 맨 앞쪽에 나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았지.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 귀중한 내 몸을 잘 받아줄 멋진 사람을 기다렸어. 한나절을 장터 난전에서 가을 햇볕에 몸을 쬐고 있었어.


 “감 사세요~~~ 무농약 감임더!!”

 “하하.. 무농약 감? 내가 무농약 감인 거야? 호호.”

 나는 무공해 감이었어. 할머니는 가을 햇살 아래 감을 어루만지며 그렇게 말했어. 금방 팔릴 거 같던 감은 쉽게 팔리지 않았어. 무농약 감이라고 했음에도 못생긴 감은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야. 아이를 안고 온 아주머니는 감 하나를 베어 물더니 그냥 가버렸어. 감이 깨끗하지 않고 크기도 똑같지 않다고 투덜대며 갔지. 살짝 기분이 나빴어. 못생긴 감이라고 말하는 거 같았거든. 감이 달고 맛있음 됐지 생긴 게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말이야. 참 별꼴도 다 있지? 그런데 그뿐이 아니었어.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망태기 아래 쭈그리고 앉았어. 이리저리 감을 뒤적거리더니 감 하나를 손에 쓱싹 닦더니 한입 베어 물고서 발음도 어정쩡한 소리로 외쳤어.


 “감 더 업떠요? 이게 다요?”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그렇게 물었어. 난전에 내어놓은 것이 전부라고 하니 그냥 가버렸어. 할머니는 나보다 더 속상해했어. 늦은 오후가 되니 바람이 생각보다 차가웠거든. 할머니는 몸살 끼가 있다며 얼른 팔고 들어가고 싶어 하셨어. 감을 살 것처럼 말하더니 그냥 가버리니 실망이 컸던 게지. 더 많은 감이 필요했던 모양이야. 그 아저씨는 아마 다른 곳에 가서 감을 샀겠지?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지나가다가 다시 되돌아왔어. 무농약이라는 소리에 되돌아온 것 같아. 감을 하나하나 만져보았어. 또 그냥 갈 것 같은 느낌에 약간 불안했어.

 “이거 다 주세요.”

 “이게 단가요? 더 있음 더 주세요.”

 망태기 감 전부를 다 담아달라고 했어. 모양도 색깔도 보지 않고 할머니의 무농약 감이라는 말에 그냥 다 달라고 하는 것 같았어. 전혀 팔아줄 것 같지 않았는데 말이야. 겉모습만으로 쉽게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 같기도 하지? 말 한마디 않고 할머니와 감을 번갈아 보더니 그렇게 이야기했어. 감을 팔지 못하고 해가 져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 같았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

 ‘아주머니 고맙습니다.’

 마음속으로 인사를 했어. 어딘가로 떠날 수 있다는 것이 기대가 됐거든.

 나는 사각 상자 안으로 들어갔고 어디론가 실려 갔지. 지금 생각해보면 사각 상자는 우체국으로 갔던 거야. 우체국에서 주소를 쓰고 택배 아저씨를 통해 이곳, 이 아파트로 나는 날아왔던 것이지.


 지금 창밖은 꽃 천지야. 눈부시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비로소 실감해. 나에게도 봄이 왔어. 간질간질 근질근질하던 내 몸에도 삐죽삐죽 싹이 돋았거든. 꽃들의 이야기 소리가 나에게도 들려. 그래서 밖으로 뛰어 나가고픈 마음이 간절해지곤 하지.

 앗, 깜빡 잊을 뻔했구나. 사각상자 안에 잘 담겨서 배달된 이곳에서 내가 다시 태어날 수 있었던 그 이야기가 빠졌구나. 키가 아주 큰 고목나무, 그 감나무에 매달려 있던 내가 여기까지 와서 다시 싹을 틔워 키가 자라고 또 자라 아파트 베란다에 살게 된 그 기막힌 이야기 궁금하지 않니?

 하필 그날 밤 주인아주머니는 감을 깎았고, 연거푸 5개가 넘는 감을 깎아서 먹기 시작했어. 지금 나에게 매일 물을 주고 잎사귀를 닦아주기도 하지.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아주머니는 감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아. 아마 아이의 이모가 할머니의 무농약 감을 보냈던 거 같아. 그날도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에 감을 깎았고, 몇 개를 게눈 감추듯이 먹어치우더니 마지막 한 개를 남겨두더라. 그 마지막 한 개의 감이 바로 나였어.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감속에는 3개의 씨앗이 있었고, 그 3개의 씨앗 중 하나가 나였다는 거지.

 긴 밤, 껍질이 벗긴 채 감 하나는 식탁 위에 앉아 있었지. 뒷날 아침이었어. 남아있던 감 하나를 한 입 가득 베어 물더니 베란다로 나갔어. 햇살 속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아주머니는 씨앗을 뱉어 화분 안으로 던져 놓았어. 가을은 무르익을 대로 익어 스산한 아침이었어. 그 많은 감 중에서 유독 나만이 다시 태어난 거라고 말해야 하겠지? 이런 걸 행운이라고 하는 거 맞지? 대부분 쓰레기 더미로 들어갔어. 씨앗 3개가 싹을 틔웠지만 혼자 남았어. 셋 중 하나. 가장 야무졌던 하나, 그게 나야.  


 , 그 순간을 잊을 수 없어.

 흙내음, 흙내음, 그 흙 내음을 잊을 수 없어. 흙 내음이 다디달았어. 긴장했던 온몸이 스르르 풀렸어. 흙 속에 잠겨 들던 그 순간 어찌 잊을 수 있겠어. 나는 흙이 있는 곳이 안식처란 걸 비로소 알게 되었던 거야. 씨앗에게 흙은 엄마 품과 같은 거였나 봐. 세상의 모든 씨앗들이 꿈꾸는 곳은 흙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흙은 생명의 근원이란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어.

 흙속에서 오랜 시간 단잠을 잤어. 얼마나 잤는지 기억에도 없어. 나는 그렇게 오랜 시간을 흙속에 있다 깨어났지. 새싹으로 깨어났던 거야. 화분이 꿈틀거리던 그 봄날, 3개의 씨앗은 서로를 다시 만난 기쁨에 들떠 있었어. 주인아주머니도 너무 기뻐해 주었지. 온 가족이 둘러서서 우리 셋을 구경했어.


 “이 화분에서 세 개나 키우게?”


 세 개나 키우게? 그 말이 계속 내 귓전을 울렸어. 눈을 감았어. 기도했지. 어떤 상황이라도 감사하겠노라고. 사실 여기까지의 경험도 소중하고 감동이었거든, 나의 내일은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도 되었지만 그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묵묵히 받아들이자 생각하니 한결 편해졌어. 지금 현재를 즐기기로 마음먹었어. 그런데 말이야. 눈을 뜨면 펼쳐지는 창밖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포기가 잘 안되더라. 눈물이 났어. 너는 왜 이렇게 욕심이 많은 거냐고 나 스스로 나무라기도 했지. 모든 것이 너무 소중했어. 행복한 주인집 풍경도, 베란다로 나와 창밖을 함께 바라봐주는 강아지도 사랑스럽고,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는 거야. 왜 그랬을까?


 지금 나는 베란다에서 키가 제일 커.

 수국 라일락 풍로초 사랑초 등등 그들 중에서 가장 키가 크다는 거지. 주인아주머니는 새순이 움트는 나를 사진 찍어 친구들에게 보내는 것 같았어. 씨를 심어 싹을 틔워 이 정도 키웠노라고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우쭐하게 돼. 더 멋지게 자라서 더 큰 기쁨을 줘야지 다짐도 하게 돼. 그런데 어쩌니. 나는 여기 베란다 화분에서 만족할 수 없으니 말이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으니 어떡하면 좋니? 제발 너 생각을 이야기 좀 해줘.


 가끔 할머니 댁 감나무 가지 끝에 매달린 열매였을 때를 생각하곤 해. 그때를 생각할 때면 더 간절해져. 나뭇가지마다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싶다는 생각 말이야. 베란다 온실 안에서 매일 주인이 주는 물을 마시고, 창밖을 내다보며 사람들을 구경하고 또 다른 나무들을 구경하는 이 편안한 시간을 왜 자꾸 벗어나려고 하는지 모르겠어. 창밖에서 묻어오는 바람이 참 달아. 바람이 전해주는 향기에 취하게 돼. 그럴 때면 처음 꽃이었던, 열매였던, 모양을 서서히 갖춰가며 감이 되었던, 그 시간들을 그려보곤 해. 그 여름 땡볕과 비바람과 태풍을 생각해 보곤 해. 힘든 날도 많았지만 견뎌내고 이겨낸 만큼 가을은 더 감격이었던 기억이 나.


 “하나님, 나도 열매를 맺을 수 있겠지요?”

 흙속에서 긴 잠을 자던 그때, 환영처럼 나를 이끄는 그 빛나는 시간들이 어렴풋이 생각 나. 그때 나는 보았어. 훌륭한 감나무로 서 있는 나를 보았어. 꿈결처럼 말이야.

 간절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어. 그리고 기도했지. 문득 마당 있는 집이 내 안에 달려들었어. 주인아주머니와 아저씨, 그리고 두 딸들과 강아지가 넓은 마당 정원에서 차를 나누며 환하게 웃는 풍경 말이야. 그게 그림처럼 펼쳐졌어. 정원 중앙에서 가족을 바라보는 내 모습도 보였지. 키 큰 감나무가 바람에 몸을 맡긴 한가로운 풍경 말이야.

 꿈을 꾸는 건 좋은 것 같아. 꿈을 꾸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고 감사란 걸 깨닫게 돼. 꿈을 꾸는 동안은 누구라도 행복한 것 같아. 나는 믿어. 꿈을 꾼다는 건 이루어가기 위한 발판이라고 생각해. 정원을 꿈꾸는 내 마음속 나는 이미 넓은 마당 중앙에 서 있어. 참 신기하고도 놀랍지? 나는 지금 주렁주렁 열매를 맺은 감나무를 상상해. 지금 꿈꾸고 그리는 마음속 큰 나무는 언젠가 내 모습이 될 거라는 걸 확신해. 너도 믿지?

왼쪽 키 큰 감나무(2019년 사진)


(저녁 식사 후, 감을 깎아 먹다가 오래전  놓은 글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그때,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아 사실을 바탕으로 이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감을 먹다 말고, 형식도 없는 이 글을 찾아와 올려놓습니다. 재미있으면 좋겠습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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