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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Aug 25. 2020

낯선 시간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50일이 넘는 긴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시작됐다. 땡볕을 피해 날아왔는지 그늘진 방충망에 붙은 매미가 바락바락 소릴 지르며 운다. 매미가 울어야 한더위가 실감 나고, 동구 밖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서 놀던 그 여름의 추억이 삼삼해지니 어찌 됐든 매미가 찾아온 첫소리는 늘 감동이다.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같은 순한 매미소리는 오간데 없지만 소낙비 쏟아지듯 질러대는 매미소리도 이리 정겹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울음으로 여름을 여름이라 소리치고 있는 셈일 테니 매미는 제할 몫의 삶을 지금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점심을 먹고 우연히 포도농장에 들어갔다. 성근 포도송이가 지난 시간의 흔적을 대신했다. 설익은 포도송이는 인생의 어디쯤 서성이는 청춘을 보는 것도 같고, 익어가는 질곡의 시간을 보는 것도 같았다. 예상치 못한 날들이 길었던 올해의 시간들, 코로나로 잃어버린 시간과 폭우와 긴 장마로 수해를 당한 사람들의 시간을 생각하면 포도송이가 이만큼의 열매로 자라온 것도 대견하고 숱한 지난날이 짐작되기도 했다. 푸르고 붉은 그 어디쯤 서성이는 포도송이의 여름도 매미소리만큼이나 정겨웠고 장하구나, 싶었다.


 매일의 뉴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코로나 19의 재확산으로 불안이 가중된다. 모든 것이 뒤죽박죽 같다. 학교는 정상적인 수업을 이루지 못하고 직장은 재택근무의 연속이다.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다. 박물관과 미술관은 물론 전국 해수욕장도 폐쇄된 상태다. 인기직종의 직업이 퇴색되고 교회는 비대면 예배요, 사회는 온라인 생활로 바뀌고 있다. 그런 가운데 장기간의 장마와 폭우로 수해를 입고 도시가 물에 잠기는 대혼란을 겪었다. 홍수로 떠밀려가던 소가 지붕 위에서 구조되고, 구례 축사를 벗어난 소는 남해 어느 무인도에서 발견됐다. 경남 합천의 소가 80여 km 떨어진 밀양에서 발견되고, 전북 남원의 젖소는 40여 km 떨어진 전남 광양에서 구조돼 주인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미 개가 땅을 헤치며 애절하게 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주민이 흙더미 속에서 새끼 개를 구출했다. 저 본능으로 견디고 이겨냈다고 가볍게 건너뛰기엔 모든 이야기가 너무 깊다.


 생명에 대한 경의와 결핍이 주는 간절함을 생각했다. 폭우와 홍수를 견뎌내고 사력을 다한 그 몸부림의 여름이 어떠했을지, 감히 상상할 수 없지만 지구가 아프다는 그 이상 징후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홍수에 떠밀려 외딴섬에 당도하여 풀을 뜯는 소, 흙더미에 묻힌 새끼 곁을 떠나지 못하고 애절하게 울던 어미개의 지극한 모성, 폭우를 피해 지하주차장으로 피신한 길고양이의 발칙한 어미 사랑…. 인지상정의 도를 넘어버린 인간을 향한 경종은 아닌 것인지. 역병이 돌고 홍수가 나고 인간의 감성을 넘어선 동물들의 생태방식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주지시키는 신의 계시는 아닌 것인지. 인간이 저지른 만행에 대한 신의 보복은 아닌 것인지. 우리에게 정말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이 도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저녁, 길고양이의 오붓한 저녁시간을 훼방하고 싶지 않아 살며시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평화를 내가 깰 의무가 없었으므로. 내게도 훼방 받고 싶지 않은 시간이 있었고, 강요받으며 억지로 자리를 내주던 그 억울함을 아는 터다. 바닥의 흥건한 물을 피해 아기 고양이를 이끌고 자동차 지붕으로 애쓰며 올랐을 그들의 평화와 안녕을 위하여 기어이 돌아갈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방식이든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몸부림은 필요하다. 지나친 욕심에서 비롯된 탐욕을 내려놓고 아픈 지구를 쓰다듬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회복되고 치유되는 과정을 잘 견뎌 자연도 사람도 원시 그대로의 삶에 순응하는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랄 뿐이다.

 코로나로 인한 거리두기는 잠잠히 묵묵히 주위를 돌아보라는 신호인가. 자유롭던 해외여행,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 그에 대한 감사도 없이 보냈던 것이 미안하다. 삶이 의도된 설정이라면 지금 이 상황도 신의 의도된 설정이고 계획인 것일까. 매몰된 강아지를 애타게 구조 요청하는 어미개의 모성은 무슨 의미일까. 바이러스 감염병과 수해로 인한 피해는 어떤 의미이며 길고양이의 천연덕스런 휴식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들을 우연한 일이라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천재지변이라고 단순하게 말해도 될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되새기라는 신의 경고는 아닌 걸까.  


 지금 우리는 세상에 없는 상상할 수 없는 계절을 살고 있다. 꽃피는 봄을 잃어버렸고, 다시 그 바닷가를 잃어버렸고, 카페에서의 달콤한 오후의 휴식도 잃어버렸다. 잠시 멈춤의 깃대를 꽂고 아픈 지구를 쓰다듬는 시간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다. 자연의 신음과 탄식을 귀 기울여 들으며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얕추 묻힌 뿌리처럼 사는 인생이 아니라 100년 200년 후의 그날까지 깊이 뿌리내리는 인간다운 역사를 우린 만들어내야 하고 견뎌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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