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핏 눈발도 날렸다. 점심을 먹으려고 직원식당으로 나서던 중이었다. 그때 왜소한 할머니 한 분이 무언가 이고 들고 정문으로 들어섰다. 무심히 지나쳐가다가 어떤 예감에 순간 멈춤, 바람처럼 획 되돌아보았다. 엄마였다. 잠시 멈칫했으나 반사적으로 뛰쳐나갔다. 이고 든 물건을 얼른 받아 들고 맞이해야 하는데 그 자리 세워두고 화를 냈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나는 버릇없이 엄마에게 ‘지금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쳤다. 여긴 직장이라고. 창피하게 옷은 이게 뭐냐고. 그 무거운 것을 이고 들고 새벽부터 준비하여 왔을 엄마에게 나는 그리 대했다. 날도 추운데,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서 사람 난감하게 만드느냐고 소리부터 지르고 나니, 눈물이 났다.
“막둥이 하나 있는데 운동회도 안 오고 너무하네...”
흠칫 나를 보던 동네 아주머니가 엄마 흉을 봤다. ‘아니거든요!’ 소리치고 싶었지만 못 들은 척 도시락을 챙겨 들고 교실로 향했다.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화도 나고 눈물도 났다. 엄마를 못 오게 했던 것은 나인데 나 때문에 엄마가 욕먹는 것이 짜증 났다. 후회도 되었고 속도 상했다. 고아도 아니고 이게 뭐람... 친구 엄마들은 모두 젊고 예쁘게 화장도 하고 파마도 했는데 왜 나의 엄마는 태어나면서부터 할머니였던 것인지. 아직도 쪽진 머리가 뭐냐고, 원망도 했다. 도시락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러나 맛이 없었다.
하필 그 순간 후회로 점철됐던 가을운동회 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던 것이다. 아차, 싶었다. 엄마에게 그리하면 안 되는 거였다. 이미 짜증은 내버렸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엄마에게도 미안했고, 직원들 보기도 부끄럽고 민망했다. 그날 엄마는 호박죽과 수제 조청유과를 만들어 갖고 오셨다. 찬바람이 시작되면서부터 준비를 했을 터이다. 엿기름 찹쌀가루 뻥튀기 가루 등등 하나하나 재료를 준비하는 동안 막내를 생각했을 터이다. 엄마 특유의 쓸쓸한 콧노래도 흥얼거리며 눈물도 지었을 터이다. 단시간에 준비되지 않는 그 일을 겨우내 혼자서 조금씩 준비하며 엄마 나름의 서프라이즈를 기획했을 터이다. 까칠한 막내의 짜증도 충분히 예감했을 터이다. 그런데 엄마는 그 일을 자처했다.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했을까.
엄마는 아무 말이 없었다. 죄인처럼 가만히 묵묵히 그것을 들고 이고 들어와 사무실에 내려놓았다. 직원들 다 같이 나눠먹으라고, 그 한마디 말만 남기고 서둘러 일어섰다. 이른 새벽부터 끓인 호박죽을, 겨우내 만든 수제 조청유과를 차곡차곡 담고 포장해 이고 들고 오신 것이었다. 음력 섣달 초아흐렛날이었다. 내 생일이었다.
방바닥이고 부엌이고 온 집안에 가루를 날리며 유과를 만든다고 분주했을 엄마의 그 겨울을 생각한다. 이제 막내도 품을 떠나는구나. 혼삿날을 받아놓고 곧 서울로 떠나야 하는 막내의 결혼 전 마지막 생일을 그렇게라도 표현해야만 했던 그 모든 순간을 생각한다. 인생이란 한 끗 차이라고 서로 이해하며 잘 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엄마의 마음을 생각한다. 우리는 작은 것에 상처 받고 작은 것에 감동하는 법이라고 그게 곧 한 끗 차이라고 그렇기에 크게 실망할 일도 크게 기뻐할 일도 없는 법이라고 그게 인생인 거라고 말했던 그 순간의 의미를 생각한다. 이제 막내까지 떠나보내야 하는 서운함과 아쉬움을 수제 조청유과 속에 단맛을 채우며 보냈을 그 겨울 엄마의 휑한 가슴을 생각한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아니 다시 태어난다면? 주제를 받아 들고 가장 먼저 생각해낸 것은 엄마였다. 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었으니 나는 늙은 부모님의 늦둥이 막내로 태어날 수밖에 없었다. 부모를 선택하여 다시 태어날 수 있다면 젊은 부모의 큰딸로 태어나고 싶지만 단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마의 늦둥이 막내딸로 다시 태어나 지금 이 장면 속의 나로 서 있고 싶다. 눈 오는 음력 섣달 초아흐렛날 호박죽과 수제 조청유과를 이고 들고 오신 엄마와 눈이 마주친 그 순간과 초등학교 6학년 가을운동회 날로 돌아가 그 운동장에 서 있고 싶다. 초스피드로 뛰쳐나가 무거운 그것을 반갑게 받아 들고 들어와 모두에게 자랑스럽게 엄마를 소개해 드리고 싶다. 그런 후 나는 엄마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어 드리고 엄마 고마워요, 조곤조곤 마음을 나누며 살갑게 굴어보고 싶다. 다정한 모녀로 마주 앉아 맛있는 점심을 나눠먹고 싶다.
엄마와의 시간은 모든 것이 후회이다. 그냥 다 미안하다. 엄마와의 소통은 늘 2% 부족했다. 그때 그 시기에 누릴 수 있는 우리만의 행복을 제대로 교감하지 못했다. 마음과는 달리 언제나 나의 표현은 빗나갔다. 그날 직원들은 내 마음도 모르고 엄마가 갖고 온 호박죽과 조청유과를 즐겁게 나눠먹으며 감사했고, 감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