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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gang Feb 27. 2021

꽃은 고고하다

호접란

 



호접란이 피었다.


 호접란은 11월쯤이면 여드름 자국처럼, 아니 열꽃처럼 툭 불거지는데 그게 꽃대의 시초다. 꽃대를 형성하는 기간은 1달여쯤 걸린다. 느리게 느리게 꽃대를 키우고 꽃봉오리를 부풀린다. 그러다 1월이면 꽃을 피운다. (올해는 정확하게 1월 24일에 첫 송이가 피었다.)


 농장에서 왔다. C품이라고 했다.

 정품(A 품)은 상품으로 팔려간다. B품까지도 상품가치는 있어 주인을 찾아 떠나지만, C품은 거의 폐기처분이라고 했다. 그 C품이 어찌하여 내게로 와서 햇살 드는 겨울 베란다에 자리했다. 이름 하여 호접란, 나비가 날개를 펼친 것 같다. 꽃은 두어 달 이상 피어 있다. 아니, 피기 시작한 첫 꽃과 마지막 지는 꽃까지 계산하면 거의 100일은 피어 있다가 스스로 꽃대에서 말라 나비처럼 날아 앉는다. 내가 아는 꽃 중 가장 수명이 길다. 가장 깔끔하게 죽는다.


 적당히 한철 피었다 지겠지 생각했던 것이 한 해 두 해… 여섯 해 째 꽃을 피운다. 초라하기 짝이 없는 비닐집에서도 정직하고 당당하다. 스스로 가치를 일깨운 호접란의 자태에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본연의 가치를 본 게 아니라 출신을 먼저 본 것은 아니었을까. C품, C품 인생이 어디 있나. 스스로 정품이 된 꽃. 좋은 집이 아니어도 꽃은 고고하다. 이제 집을 지어줘야겠다.



1번 2월27일 아침. 2번 3번은 1월 24일
2월 9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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