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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May 14. 2024

나는 사람도 주식도 손절을 못했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울면서 돈 얘기를 꺼냈다.




발신자는 OOO. 바로 두 번째 매칭 상대였다.


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 건 처음이었다. 첫 만남 이후 연락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건축가 집안의 장남에 비 그는 삽 하나 들고 설렁설렁 걸어오는 수준 밖에 안 됐다. '나이 때문에 쫓겨서 결혼하고 싶진 않아요.' 처음부터 묻지도 않은 얘길 하길래   관심이 없다 판훨씬 적극적인 상대와 인연을 만들어 가려던 참이었다. 서울 태생이라 도하.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다. 이 바닥에 널린 게 사람이었고 내게는 많은 미차감 프로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선생님 이 분이 정말 뵙고 싶다고 하시는데요. 매니저가 부탁한 적도 여러 번이라 내가 뭐라도 된 줄 알았다. 하.



한참  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과는 전혀 판이었다. 울역에서 처음 본 뒤 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애프터를 거절당할까 봐 두려웠다고. '죄송합니다. 좋은 분 만나시길 바라요.' 이 멘트를 듣게 되면 다시는 연락할 수 없으니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다. 또 그는 본래 말 수가 적 다소 조심스러운 성향럼 보였. 그래서 발신자를 보고 다소 놀란 마음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된 건 군자역의 한 고깃집에서였다. 음보단 긴장이 풀려서인지 훨씬 열성적으로 직진하는 게 느껴졌다.  양 어깨에 고 단단히 채비를 하고 온 느낌? 하지만 2퍼센트 정도 끌림이 부족고심 끝에 출근길 지하철에서 장문의 메시지를 썼. '짧은 시간이나마 잘 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으신 분 같은데 저랑은 인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중략... '


전송 버튼 위 올려진 엄지가 뭇대는가 싶더 빠르게 무를 마치고 팅방을 빠져나왔. 매하다 싶으면 정리하는 게 맞. 숨을 돌리려는데 검은 화면 위로 예상치 못한 이름이 떴다. ?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 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30초 정도 지났을까. 결국 입술을 뗐다. 여.. 여보세요?


나는  순간을 수십 번 회상했다. 내가 그때 전화받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고.





당시 머릿속은 빚으로 가득 차 있었다. 투자 실패로 마이너스 통장에 찍힌 아홉 자리 숫자. 따지고 보면 몇 년 바짝 일하고 덜 쓰면 회복이 가능한 금액이었음에도 왜 그렇게까지 무너졌을까 싶은데, 그건 내가 번 돈이었기 때문이다.


출근길 차에 치으면 했던 인턴시절, 퇴근 후 다시 새벽녘처럼 어스름이 깔린 육교를 지날 때면 여기서 떨어지면 죽을까 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전조등 불빛을 바라보곤 했다. 이후 리 떠나온 수도권에서도 결국은 떠돌게 됐지만 참아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대표 원장 종종 내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가져다 댈 때. 일을 마친 늦은 저녁, 버스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일 곱씹었. 벅터벅 10분 남짓 걸어 신발이 뒤엉킨 좁은 현관에 들어섰다. 그만하고 싶었다. 그러나 계약기간이 한참 남은 이 방과 저년차로서 직의 어려움터 떠올리는 소름 끼치는 현실감각자조 섞인 울음었다. 내 눈물이 마르고 이력서를  썼다. 그렇게 모은 이었는데, 그걸 잃었다.



인간은 원래 득 보다 실을 크게 느낀다고 한다. 상실에 있어 남들보다 더욱 뼈 아픈 고통을 느나는, 늘 손절이 어려웠다. 사람이든 주식이든. 끝이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꽉 움켜쥐고 있었고, 회복될 기미가 없는 종목물을 부어 탈출을 꿈꿨다. 그러나 결말은 피가 뚝뚝 흐르는 만신창이가 되나, 원액이 13 퍼 밖에 되지 않는 맹맹한 바이오 주스를 양산해 내는 것이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처치곤란이다.) 다소 당혹스럽 통화 있고 마 후 그에게서 고백을 받았다.


지만 여전히 가민가했다. 호감이 없는 아녔지만 계속 전달되는 메일 속의 상대들을 알아가고 싶은 마음 더 컸다. 프터에도 애매하면 인연이 아닌 거겠지. 고민 끝에 전화로 생각을 전하려는데 화기 사이, 다정한 서울말가 먼저. 구와 약속을 마친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고 싶다. 아니, 이러면 란해지는데. 괜찮다는데도 상대는 꼭 그러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 남자 꽤나 집념이 강하군. 순간 동질감이라도 느낀 건지 러라고 했고 결국 그날 그와 시작하고 말았다.



이후 우리는 가을의 끝자락까지 연애했다. 한 계절이 조금 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는 내 밑바닥을 본 유일한 남자가 되었다. 이런 류의 결핍은 절대 드러나서는 안 되니까. 아니, 나만 그런 건 아녔으니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그에게 덜 미안해도 되니까? 


그는 나를 다그쳤고 나는 엉겨 붙은 것을 토해내 울기 시작했다. 만난 지 한 달이 조금 넘은 사람 앞에서, 모든 사회적 체면을 내려놓은 채 아이처럼. 돈을 갚지 않는 외삼촌을 비난하는 아빠를 따라 외가에 반감을 가지던 유년기를 지나, 사방이 꽉 막힌 어두컴컴한 독서실로 대표되는 학창 시절, 크게 달라진 것 없이 도서관에서 혼자 빵으로 점심을 때우던 본과생 때, 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 심해로 빨려 들어갈 것 같던 인턴, 이후 투자 실패로 무기력증에 빠졌던 지난 1년까지. 오랜 시간 퀘퀘이 부식되어 문드러진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는 건 정말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이해받고 싶었다. 내 고름 같은 결핍까지 수용되길 바랐다. 착잡한 표정으로 얘길 듣던 상대는 긴 한숨을 었고 울음으로 들뜬 내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러나 리는 서로를 불신했다. 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우리는 서로에게 있어 지인들이 '걔랑 왜 사귀어'할 때  역할이었다. 그럼에도 한으론 믿었다. 나는 의 눈물을, 그는 나로 인한 아픔보다 나를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 각의 이유로 만남을 이어갔지만 관계는 급속도로 너덜너덜해다. 마치 Ktx의 충전포트처럼.



"이럴 거면 차라리 그냥 헤어지자고 해."


수화기 너머 상대는 여러 번 같은 말을 뱉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잃는 것을 그리고 후회를 병적으로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상대가 먼저 나를 떠난다면 합리화 기제를 동시켜 어떻게든 잊어내지만 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정에 대해서는 돌이킬 수 없는 책임이 따르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너무 경솔했던 게 아닐까. 다시 그렇게 날 아껴줄 사람 못 만나면 어떡하지. 그리고 그는 실을 병적으로 무하는 나를 알고 있었다.



"그럼 오빠가 헤어지자고 하면 되잖아. 왜 나한테 그러는 거야?"


현 상황이 너무 괴롭다면서 이별을 전가하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는 유해보이는 생김새와는 달리 결단력 있는 사람이었다. 특히 확신이 서면 강하게 밀어붙였는데 투자에 있어선 전 재산을  종목에 몰빵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3-4배까지 불었던 잔고가 원금까지 모두 날아가고 마이너스로 추락해 버렸지만 그날도 꿋꿋이 야근은 했다고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멘털 하나는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심기일전한 코인 풀린 것도 런 정신력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러나 그도 도저히 견디기 힘든 게 있다고 했다.



"... 나는 너랑 헤어지기 싫으니까."


바로 계랬다. 신을 해하는 관계를 놓지 못해서  키우는 우리, 닮아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예전의 나 닮은 면이 있어서  보듬어주고 싶. 하지만 디고 견디고 견디던 어느 날, 마침내  입에서 별이 나왔다. 우리 정말 그만해.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어. 그는 절절하게 붙잡았지만 이미 수십 번 속으로 뱉은 말이었다. 너덜너덜해진 지 오래, 둘 중 하나만 힘주어 잡아당기면 끝나는 거였는데 너무 오래 끌어버렸다.



이후 열댓 명과 선을 봤다. 그중 한 두 명과는 사귀기도 했지만 오래가 못했다. 비록 배우자 찾기엔 실패했지만 후회진 않았다. 우선 헤어지자고 먼저 해도 천지개벽할 일은 생기지 않음을 깨달았다. 만약 후회하더라도 잠시뿐이라는 것도. 당시 그만해야겠다고 판단한 이유가 있고 30년간 쌓인 빅데이터에 의한 결론이니 최선이었다고 믿으면 된다. 그래서 더 이상 손절을 금기시 여기지 않게 되었다. 또 결혼에 대해, 배우자에 대해, 특히 스스로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아무리 돈이 중요하대도 돈으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깨기까지 사계절 시간이 다. 다시 돌아온 여름, 가입한 지 1년을 채우기 직전 결혼 정보 회사를 탈퇴했. 모든 게 조금씩 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다만, 그날 아침 끝까지 휴대폰을 엎어두었으면 어땠을까. 보이지 않는 한 가닥이 그와 나 사이에 여전히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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