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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Dec 12. 2019

다이어트에서 해방된 날.



대학교 때 나를 모르는 사람도 내가 다이어트를 하는 건 알았다고 했다. 웃기지만, 나라는 사람을 대표하는 가장 큰 사실이 다이어터였다. 실은 내게, 그것은 습관에 가까웠다.




어릴 적엔 키가 빠르게 자란 편이어서 먹는 게 옆으로 안 가고 위로 갔었다. 하지만, 중학교에 들어서 성장에 정체기가 왔을 때쯤 경보음이 울렸다. 중2 학기초, 체격검사를 하는 날 조심스레 올라선 체중계 바늘은 애써 도피하고 있던 현실을 수치화해줬다. 1년 만에 정확히 10kg가 불어있었다.





마르진 않았어도 적당히 보기 좋았던 몸에는, 당시 혐오스러웠던 하얀 피하지방이 자리 잡았고, 남자 사람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게 수줍던 소녀 곁에는, 어느새 서로의 외모를 놀려먹는 짓궂은 여자 친구들만 남아있었다. 조선시대 규수와 같은 생활이 계속되면서, 내가 과연 남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걱정이 종종 들었고 그때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것은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이어졌다.





나는 2번 10kg 씩을 감량했다. 한 번은 학창 시절, 두 번째는 대학 입학 후에. 두 번의 다이어트를 통해 소위 연예인 몸무게에 도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때도 내가 말랐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내 눈에만 내 몸을 왜곡하는 렌즈가 씐 건가.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지만, 남들이 날씬하다고 말해줄 때 그제야 상기됐고 안심했다.



그리고 그 얘기를 듣는 텀이 길어지면 불안감에 더욱 노력했다. 미의 기준에 벗어난 여자에게 세상이 얼마나 무례하고 오지랖이 넓은 지를 잘 알고 있었다.






15살이었다. 내 친언니는 태생적으로 마른 사람이었다. 어릴 적에 내가 보통이었던 시절에도, 언니 밥을 뺏어먹는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듣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초등학생한테 어른들이 할 말인가 싶지만 그 무례함이 유머로 둔갑될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날은 친언니가 피자 심부름을 시킨 날이었다. 다이어트 중이었던 나는, 사 오기만 할 뿐 입에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피자배달원이 되어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거기엔 한 중년부부도 있었다. 내손엔 방금 마트에서 사 온 피자 봉지가 들려있었고 좁은 공간엔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 부부는 내게 무엇이냐 물었고 순진한 나는 있는 그대로 답했다. 그러자 그들 입에서 나온 얘기는 뜻밖이었다.








그러니까 살이 찌지.



 서로 바라보며 재밌다는 듯, 웃으며 내뱉은 말에 머리를 맞은 듯했다.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어버버 하다가 정신 차리라는 듯한 띵- 소리에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예상치 못한 돌을 맞아 잠시 멈췄던 사고 회로가 돌아가자,  먼저 든 감정은 예상외로 친언니에 대한 분노였다. 내가 먹으려고 산 것도 아닌데, 언니가 미웠다.




몇 날을 끙끙 앓았다.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감정이 날뛸 때면 그들의 무례함을, 어른답지 못함을 책망하는 말들과 저주 섞인 말들을 A4용지에 썼다 지웠다. 살이 쪘다는 이유 하나로 내가 그들의 조롱거리가 될 이유는 없었다. 층수를 알았지만,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운 종이를 결국 전해주진 못했다.  그때 나는 세상을 피해 작은 궤짝 속에 몸을 웅크리고 싶었다.




남들이 피자 2조각을 먹을 때 그래서 살이 쪘다는 말이 듣기 싫어 1조각을 먹었고, 만석인 버스에서 서있는 내게로 향하는 시선이, 내가 살이 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몸이 커질수록 나는 작아졌다.




살이 쪘다는 이유로 돌을 맞는 세상에서, 피하지 못하고 생채기를 입었기에, 나는 살을 빼야 했다. 모의고사 점수 하나에 생명의 존속을 운운하던 수험시절에도 날씬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험기간에 밤을 새울 때면 빵, 과자가 아른거렸다. 내가 마음대로 먹어도 된다면 전교 1등을 할 텐데. 다소 어이없는 생각을 하며 혼자 웃었다. 하지만 참았다. 하루에 16시간가량 앉아있던 그때, 뱃살이 접힌 느낌이 들면 가뜩이나 하기 싫은 공부가 더 하기 싫어졌기 때문이다.




전교 2등을 했고, 다행히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제껏 야식, 간식 모두 눌러왔던 내 자제력은 '음주'라는 신문물을 만나 뚝 하고 끊겨버렸다. 3개월 만에 만난 친언니가 왜 이렇게 살이 쪘냐고 했을 때, 또 한 번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 아득해졌다. 누군가 나를 절벽에서 15살 때로 민 것만 같았다.




이후 1년간, 아니 그 이후 줄곧 다이어트를 해왔다. 칼로리를 확인하는 것은 일상이고, 냉동실은 온통 다이어트 식품으로 가득 차 있으니 안 한적은 없는 것이 맞다. 물론 먹고 싶은 것을 안 먹는 것도 아니다. 적당히 타협할 건 하는 편이다.




내가 해방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살아온 인생의 반을 함께해왔는데, 그게 악연일 뿐이다. 초연해지기 위한 노력을 해봤고 그 결과 조금씩 덜해지고 있는데,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아예 벗어나긴 힘들다.




굳이 다 놓아야 하나 싶기도 하다. 나를 종종 음주의 유혹으로부터 멀어지게 해 주고, 게으름으로부터 일어나 사이클을 타게 해주는 이점도 있다. 요즘은 좋은 게 좋은 거라 생각하는 게 내 정신 건강에 낫다고 생각한다. 이 굴레에서 나오진 못해도, 그 범위를 점점 더 넓혀볼 생각이다. 조금씩 늘어가는 몸무게에도 약간 담담해져 가는 걸 보니 나름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니 오늘은 간만에 양념치킨을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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