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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땡땡 Mar 14. 2020

전 애인을 잊고 싶다면, 주식하세요.

주린이가 요 근래 배운 것.




다소 비약일 수 있으나 그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전 남친 잊고 싶으면 주식해. 떨어지고 오르는 걸 보면 생각이 하나도 안나. 그땐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겼는데, 요 근래 그 말을 몸소 증명해 보였고 다른 이들에게도 농담 삼아 말했다.




연인과의 관계에서 나만 안달복달한다면,
삶의 중심이 내가 아닌 다른 이에 가있어 괴롭다면,
전 애인을 잊고 싶다면,
혹은 집에만 있는 게 너무 심심하다면,

증권계좌를 파라고.


(미리 말하자면 본인은 마이너스 수익률을 내고 있다. 돈 버는 목적으로 지금 시작하는 건 정말 말리고 싶다.)





사실 주식시장에 뛰어든 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보단, 정치 경제에 눈을 뜨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지긋지긋한 교과서를 덮은 뒤론 세계정세에 별 관심이 없었기에 종일 뉴스 채널만 나오는 아버지 방 TV를 피해 거실로 도망치곤 했다. 연예인들의 가십을 다룬 기사에만 커서를 뒀지, 채권, 증시, 금리 같은 머리 아픈 단어들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할 땐 페이지를 재빨리 다음으로 넘겼다.




최근 여가시간은 길어졌지만 밖에 나갈 순 없게 되자 집안에 혼자 멍하니 있는 때가 늘었다. 필라테스 학원이 한 달간 휴업에 들어갔고, 방송댄스 학원은 개강이래 가장 어렵다는 호소를 담은 이벤트 문자를 보내왔고, 주말마다 예정이던 학회 강의는 잠정 연기되었고, 자주 가던 집 근처 맛집에도 사람이 줄었다. 내가 있는 병원 또한 마찬가지. 휴대폰만 만지작대는 동안, 코로나는 연일 다양한 방면으로 반경을 넓혀왔고 이제 발 붙일 곳은 직장과 6평 남짓한 자취방 한 칸뿐이었다.




봄이 되면 잠잠해지지 않을까 하던 초기 예상과 달리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자, 더 이상 원내 정수기 앞 TV를 마냥 지나칠 수 없었다.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인 대규모 단톡 방에선 연일 코스피(국내 증시 지수)니 S&P500(미국 증시 3대 지수 중 하나)이니 모르는 단어들이 담긴 기사를 공유해댔다. 비슷한 일들이 이어지자 대체 무슨 상황인데? 하는 의문이 들었고 몇 번의 검색 후 '지금 들어가면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호기심이 생겼다. 더불어 모든 건 경험이고, 수업료를 낸다 해도 그만큼 얻는 게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이 생각이 반은 적중했다.






'장기 투자할 거야, 당장 조금 잃고 버는데 크게 관심이 없어. 결국 오를 거니까.'



친구에겐 쿨한 척을 했으나 틈만 나면 증권사 어플을 들락날락거렸다. 초반에 빨간 플러스를 보면서 얼마 안 되는 돈에도 왠지 마음이 푸근해졌으나, 다음 날 당장 전날 수익의 몇 배 이상의 파란 마이너스를 보자 숫자들이 생경하게 느껴졌다. 큰돈도 아니고 당분간 하향세를 감수하기로 했는데 왜 잠이 오지 않는지에 대해 까만 천장에 대고 물었다. 그리고 이후 유래 없는 증시 하락을 맞이하면서 종일 세계 정치 문제, 이전 경제 공황, 정부 대책 등에 알아보느라 시간을 다 썼는데 이는 국시 다음으로 가장 빠져들었던 공부가 아닐까 싶다. 계좌만 보지 않으면 꽤 흥미로운 취미였다.





"왜 이렇게 폭락하는 거야, 신경 쓰여 죽겠네."

"그래도 많이 배웠잖아, 그 정도면 아까운 것도 아니야. 그리고 너 그 사람 얘기도 별로 안 하고 니 삶을 잘 사는 거 같은데?"

"그건 그래. 내가 동전주 같은 걸 살 리가 없는데, 미쳤었나 봐."




며칠 만에 달라진 태도를 보며 친구가 말했다. 그 말이 맞다. 이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지속될지, 언제 반등할지는 모르지만 요즘 들어 세상을 보는 눈이 실정도는 떠졌고 멘탈도 조금 세진 거 같다. 더 내려가지 않을 거 같은데 지금 사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조바심을 꾸욱 참아보기도 했고, 좋게 생각하면 '그때 역사의 현장에 나도 있었지.'라고 안주 삼을 일도 생겼다. 삶의 중심이 타인에게서 숫자로 옮겨왔으니 적어도 누군가의 울타리 밖으로 한걸음 내디딘지도 모른다.






주식을 하는 사람이 500만,
하지 않는 사람이 4500만이라 한다.


이렇듯 안 해도 무방하고 하락세인 지금 시작하는 건 정말 권하지 않지만, 이제껏 시대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아무 관심 없던 20-30대, 혹은 타인에게 기대지 않고 혼자 잘살고 싶은 누군가에게, 주식은 세상을 달리 보게 하고 시간을 후딱 지나가게 하는 일임엔 틀림없단 건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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