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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06. 2022

낙타 등의 마지막 지푸라기

요양병원, 요양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잘 아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독립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고령자들이 삶의 마지막을 보내기 위하여 찾는 장소죠. 그렇다고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안에서도 누릴 만한 삶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저의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노인 장기요양시설에서 사망이란 사건은 일상에 가깝습니다. 겨울철에는 더욱 많은 사망이 발생하죠. 대기자 명단까지 있는 인기 있는 요양병원의 빈자리는 기존 환자들이 나아서 퇴원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망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코비드 19는 유행 초기부터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의 기저질환자, 특히 요양병원과 요양원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잘 알려졌던 감염병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백신 패스 관련 JTBC 토론에서 그분들께서 백신과 사망 간의 인과성을 부인하면서, 우리 모두는 언젠가 사망하고 어떤 병에 걸리게 되어 있다는 표현을 한 바 있습니다.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인지 이해는 합니다만, 이런 관점은 10대, 20대 사망까지 있었던 백신 접종자보다는 고령의 기저질환자가 대부분이었던 코비드 19 사망자에게 적용되는 편이 차라리 나았을 듯합니다. 만약 그랬다면 우리나라 방역정책은 예전에 큰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코비드 19 확진자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2년 동안 사회의 거의 모든 자원을 쏟아부은 국가입니다. 공존할 수밖에 없는 바이러스를 상대로 한 무모한 소모전일 뿐이었지만, 대다수 국민들이 “하나의 생명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우리나라”라면서 K방역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죠. 표현 자체는 완벽하게 도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만, 이런 관점이 과도하게 그리고 장기간 사회를 지배하면 결국은 모두가 불행에 빠지게 됩니다. 여기에는 애초에 소중하게 보호하고자 했던 그 하나의 생명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은 무엇으로도 사망해도 괜찮으나 코비드 19로는 사망하면 안 되는 그런 기만적인 세상이었습니다. 


"It is the last straw that breaks the camel's back”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이미 엄청난 짐으로 쓰러질 지경에 있었던 낙타 등에 지푸라기 하나를 얹었더니 낙타의 등이 부러집니다. 이를 두고 마지막 지푸라기 때문에 낙타의 등이 부러졌다고 우긴다면 난센스죠. 많은 감염병들이 고령의 기저질환자들에게 마지막 지푸라기와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이 분들은 이미 등에 진 짐이 너무나 무거워 독감에 걸려도, 감기에 걸려도, 코비드 19에 걸려도 사망할 수 있죠. 





최근 오미크론 변이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망자도 다시 증가할 것으로 봅니다만, 의료시스템의 과부하가 없는 한 동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코비드 19와 같이 사망 대부분이 고령의 기저질환자에게서 발생하는 감염병은 사망률 치환 현상이 광범위하게 발생한다는 점을 항상 고려해야 합니다. 평소 독감이나 폐렴으로 사망하실 분들이 코비드 19로 사망하거나, 사망 시점이 몇 달 앞당겨지는 것과 같은 일이 흔하게 일어나죠. 노마스크 노락다운으로 대응했던 스웨덴의 2020년 코비드 19 사망자수가 무려 만 명에 이르렀지만 총사망률이 예전과 큰 차이가 없었던 이유는 사망률 치환 현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동시에 작동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 대부분 국가들이 확진자수에 관계없이 거의 모든 방역 조치를 다 해제하는 추세입니다. 작년부터 사회적 거리두기의 가장 높은 단계인 전면 락다운조차 별 의미 없었다는 논문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었죠. 최근 리뷰논문에서는 이런 방역 조치가 바이러스 전파를 막는 효과는 미미했으나 전체 사회에 미친 파괴적인 영향 - 경제, 교육, 정치, 폭력, 기본권 훼손 등- 은 매우 심각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는 K방역 2.0을 이야기하면서, 백신접종률 1등도 부족한 듯 백신 패스, 거리두기, QR코드, 마스크 의무화 등등 지구 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다양한 방역 수칙을 가지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방역 당국이 우리나라는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들이 적어서> 다른 국가처럼 방역을 완화할 수 없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이런 이야기를 할려면 지금까지의 방역 정책에 오류가 있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난 뒤 꺼내는 것이 상식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부터 수업시간에 아래와 같은 연령별 사망원인 순위표를 보여주면서 본인이 원하는 사망원인을 선택해보라는 질문을 가끔 던져보곤 했습니다. 평소 죽음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학생들이 처음에는 농담으로 받아들입니다만, 암, 치매, 뇌졸중, 자살과 같이 구체적인 사망원인을 나열하면서 다시 질문을 던지면 자못 진지해지기도 합니다. 이때 학생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사망원인은 다름 아닌 보라색으로 표시된 폐렴입니다.  고령층 사망원인 3, 4위를 다투지만 그 이하의 연령대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망원인.. 폐렴에 걸릴 때까지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면서 살다가, 폐렴으로 딱 일주일만 앓다가 죽고 싶다는 거죠. 삶의 마지막까지 야외에서 자신이 원했던 풍경화를 맘껏 그리다 폭우를 맞고 폐렴에 걸려 7일 만에 사망한 폴 세잔같이.. 



인간은 불멸 불사의 존재가 아니므로 언젠가는 사망을 합니다. 고령의 기저질환자가 감염병으로 사망한다는 것이 암, 치매, 뇌졸중으로 사망하는 것보다 더 불행할 이유는 없습니다. 고령의 기저질환자에서 발생하는 사망을 두고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사망까지 이르는 과정에 겪어야 할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가능한 한 줄여주는 것이지, 특정 감염병으로 인한 사망을 막기 위하여 사회가 가진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그분들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을 겁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공공의 선으로 포장되었을 뿐이라고 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삶의 고된 여정을 끝낸 수많은 분들이 각자의 사연을 남긴 채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의 마지막이 고통스럽지 않고 외롭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제 삶의 끝도 그러하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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