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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18. 2022

나쁜 선례, 매우 나쁜 선례..

이제 우리나라 일일 확진자 수도 십만 명을 넘어섰군요. 유행 초기부터 수도 없이 강조했지만 PCR 검사에 기초한 확진자 수란 아무런 의미 없는 숫자 놀음일 뿐이고, 중증환자로 의료시스템 과부하가 없는 한 확진자수는 수십만 명, 아니 수백만 명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무려 2년 넘게 엄청난 예산과 인력을 사용하여 이 의미 없는 숫자를 최소화하겠다고 소수집단을 마녀사냥하면서 사회를 피폐화시켜왔다는 것이 비극이었지, 급증하는 확진자수가 비극이 아닙니다. 



최근 급증하는 확진자수를 두고 세간의 반응은 아래 정도로 나눠지는 듯합니다. (1) 일일 확진자수가 십만 명이 넘다니 K방역은 완전히 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2) 서구권에 비하여 월등하게 낮은 인구수당 확진자 수, 사망자수를 이야기하면서 그래도 K방역은 성공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그러나 둘 다 착각이며 오해입니다. 방역의 성공은 확진자 수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전체 사회에 미친 피해를 최소화했는가로 평가되어야 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확진자 수에 목숨 걸면서 사회를 통제해왔던 K방역은 시작부터 실패가 예정된 정책이었습니다. 다들 확진자수에 세뇌가 되어 벼룩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죠. 그리고 우리나라가 코비드 19에 대한 피해가 작았던 것은 K방역 덕분이 아니라 동아시아권은 원래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지역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찍부터 의료시스템만 확충하고 고위험군과 환자 중심으로 관리하면서 나머지 국민들은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두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인 정책이었고, 훗날 진짜가 나타나면 K방역이 아니라 KKK방역이라도 무용지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겁니다. 


지난해부터 인류가 코비드 19 사태 와중에 방역이라는 이름으로 벌였던 수많은 일들이 별 의미가 없었으며 사회에 엄청난 2차 피해만 가져왔다는 다양한 분석 결과가 나오고 있습니다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방역 만능주의자들이 견고하게 지배하고 있는 듯합니다. 최근 그 동안 우리나라 방역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쳐온 J교수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2년간 견뎌왔는가"라는 장문의 글을 여기저기 올려 두었더군요. 결론적으로 지금의 대유행을 견디기 위해 그동안 준비를 해온 것이라는 것이 글의 요지로, 국민들에게 지난 2년이 헛된 것이 아님을 설득하기 위하여 올린 글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 글을 읽고 제가 받은 느낌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기만”이었습니다. 국민들은 지금을 위하여 2년간 준비하고 견뎌왔던 것이 아닙니다. 수시로 말을 바꿔왔던 방역당국과 전문가들의 무지함과 오만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끌려 다닌 것뿐이죠. 


얼마 전 변협에서 주관했던 코비드 19 백신 피해구제 제도 관련 심포지엄에 토론자로 참석한 바 있습니다. 참석자 대부분이 거의 만장일치로 현재 백신 부작용 인과성 평가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보기 드문 심포지엄이었고, 각 정당의 백신 피해구제 관련 입법 공약까지 들을 수 있었던 좋은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토론자료를 준비하면서 내내 답답함을 느껴야 했는데, 심포지엄 기본 전제가 <백신접종률을 높이는 것은 전체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며, “이를 위하여” 백신 부작용에 대한 피해보상도 폭넓게 인정될 필요가 있다>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주장을 펴기 위해서는 코비드 19는 전체 국민의 백신접종률을 높이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볼 수 없으며 여기에 정부의 중대한 판단 착오가 있었음을 먼저 설득해야 했으며, 일개 토론자로서 심포지엄의 기본 전제를 뒤집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변협 구성원들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을 포함하여 이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1) 확진자수는 적을수록 좋은 것이다, (2) 백신 접종은 전체 국민 건강과 사회 안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다라는 고정관념이 자리 잡은 듯하여 우리 사회의 미래가 매우 우려됩니다. 과연 2년동안 방역과 백신으로 세뇌되었던 국민들이 건강한  면역시스템을 가진 사람들은 그냥 일상생활을 하면서 감염을 경험하고 가는 편이 개인에게도 사회적으로도 더 낫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코비드 19 사태 이전의 호흡기계 바이러스 감염병 유행은 모두 그렇게 대처해왔으며, 코비드 19만이 예외적인 비정상이었다는 점을 납득할 수 있을까요? 건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PCR 선제검사, 역학조사, 동선추적.. 따위가 얼마나 어이없는 짓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을까요? 


더욱 우려되는 것은 코비드 19 유행와중에 거대 조직이 된 질병청 때문입니다. "승자의 과학과 패자의 과학"에서 설명드렸듯, 방역과 백신으로 대표되는 파스퇴르의 관점은 환자와 병원에 적합하며, 건강한 사람과 지역사회는 면역력이 핵심이라는 베샹의 관점을 필요로 합니다. 베샹의 관점이 지배하는 곳에서는 더 이상 질병청과 같은 조직이 할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죠. 그러나 이미 거대 조직으로 탄생한 질병청은 감염병에 대한 19세기적 패러다임을 계속 확대 재생산해 나가면서 이번과 같은 방역 시스템을 고착화시킬 가능성이 큽니다. 


아직도 백신 패스, 인원 제한, 시간 제한, 마스크 등 온갖 규제로 국가가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를 원하는 우리나라는 아마 지구 최후의 방역국으로 남아 있을 듯합니다. 코비드 19에 대한 저항력이 매우 높았던 동아시아권에서 끊임없이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하면서 방역을 국가브랜드화 하기를 원했던 그분들은 한여름에 모피를 입고 자랑하는 허영심 많은 여인네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방역 당국과 관련 전문가들이 계속 지난 2년을 의미 있었던 시간으로 포장하는 한, 우리는 향후 이번과 같은 일을 고스란히 반복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나쁜 선례를 남겨버린 코비드 19 사태로부터 어떻게 우리 사회가 상식과 이성을 회복할 수 있을지 다 같이 치열하게 고민해 볼 시점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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