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Nature에 아주 짧은 논문 한 편이 발표된 적이 있었습니다. 남극의 아문센-스콧 기지에 장기간 고립되어 근무하고 있던 대원들에게서 두 차례 호흡기계 감염병 유행이 발생했는데 세포배양으로 확인해본 결과 동일한 바이러스인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내용이었죠. 연구자들은 여러 상황을 고려하였을 때 이 바이러스는 외부에서 새롭게 유입된 것이 아니라 대원들의 호흡기계에 비활성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가 재 활성되면서 유행을 일으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Nature와 같은 저널에 이런 에피소드에 가까운 연구 결과가 실렸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지도 모르는데요, 이 논문 내용이 그 당시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호흡기계 감염병에 대한 고정관념에 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Nature에 실릴 수 있었다고 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호흡기계 감염병이 유행하면 병원체가 외부에서 유입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숙주 내에 비활성 상태로 장기간 생존할 수 있으며, 이들이 재 활성됨으로써 유행이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죠.
많은 호흡기계 바이러스 감염병들은 겨울이 되면 환자수가 급증했다가 봄이 되면 사라지는 계절성 유행 패턴을 보이는데, 여기에는 연구자들이 수수께끼같이 여기는 현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겨울철이 다가오면 북반구의 아주 넓은 지역에 걸쳐 짧은 기간 동안 유행이 거의 동시에 시작되었다가 봄이 되면 거의 동시에 유행이 종식되곤 하는 패턴을 보여줍니다. 외부에서 유입된 바이러스 전파로는 이런 유행 패턴을 설명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존재할 것이라고 보고 있었죠.
현재 이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많은 바이러스들이 사람들의 호흡기에 비활성 상태로 상주하고 있다가 환경과 숙주 조건에 따라서 깨어나면서 유행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즉, 바이러스가 철새처럼 봄이 되면 남반구로 날아갔다가 겨울이 되면 북반구로 돌아와서 계절성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동일한 사람들을 장기간 추적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여름철에도 다양한 호흡기계 바이러스가 검출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죠. 물론 대부분 무증상자들입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는 19세기에 있었던 루이 파스퇴르와 앙투안 베샹간의 치열한 논쟁을 떠올리게 됩니다. 파스퇴르는 의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우리나라로 치면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급 대우를 프랑스에서 받고 있다고 하죠. 그러나 현시점 베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파스퇴르가 활동했던 19세기 중반, 감염병의 원인에 대하여 대립하던 몇 가지 가설이 있었습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파스퇴르의 세균론 (Germ theory)과 베샹의 세포론 (Celluar theory 혹은 Terrain theory)입니다. 세균론은 감염병이란 외부에서 인체로 침입한 미생물에 의하여 발생한다는 관점으로 코비드 19 유행시 대중들에게 강요된 수많은 방역수칙들은 모두 다 파스퇴르의 세균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항생제와 백신 개발은 세균론에서 시작된 훌륭한 과학적 성과들이죠. 한편 베샹은 미생물이란 모든 유기체에 항상 존재하는 것이며 병으로 진행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전적으로 세포 상태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보았습니다. 세포의 상태는 다양한 섭생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했고요. 파스퇴르와 비교했을 때 베샹의 주장은 모호하고 실증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20세기가 되면서 파스퇴르의 세균론은 승자의 과학으로 살아남고 세포론은 패자의 과학으로 베샹이라는 인물과 함께 잊히게 됩니다. 하지만 현재 과학의 시선으로 되돌아보면 세균론과 세포론은 어느 하나는 맞고 다른 하나는 틀린 개념이 아니라, 서로 상호보완적인 이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를 들어 환자 vs. 건강한 사람으로 구분해 본다면, 환자는 세균론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맞지만 건강한 사람은 세포론의 관점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죠.
베샹은 생명체의 작동원리에 대하여 상당한 통찰력을 가졌던 인물로 판단되는데, 그 시대에 이미 공생 미생물의 존재와 중요성을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 와서야 공생 미생물과 인체 건강 사이의 불가분 관계가 학계에서 인정받았음을 기억한다면, 베샹의 관점이 얼마나 앞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감염병의 발생에 있어서 숙주의 상태, 즉 면역력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당시 대다수 과학자들에 비하여 보다 더 거시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는 파스퇴르의 과학에서 파생된 방역과 백신만이 코비드 19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베샹의 주장이 잊히지 않았더라면 인류는 코비드 19 사태를 지금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풀어갔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혼란의 많은 부분은 “환자와 병원”이라는 상황에 사용되는 관점을 무분별하게 “건강한 사람들과 지역사회”에 적용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은 왜 이 두 집단을 분리하여 접근해야만 하는가를 세상에 설명하는 선언문이었으며, 스웨덴은 이것이 옳은 방향이었음을 증명하는 실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스웨덴=집단면역 실패>의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분들과 스웨덴은 주변 북유럽과 비교해야 한다는 분들은 아래 스웨덴의 코비드 19 사망자수 추이와 함께 “스웨덴이 주는 교훈, 코비드 19는 벌거벗은 임금님?”과 “스웨덴은 100% 옳았다”를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편 확진자 폭증에도 불구하고 사회를 완전히 열었던 영국이 며칠 전부터 확진자 수 감소 추세로 돌아서기 시작한 듯하군요. 일단 바이러스가 지역사회 전파를 시작하면 이순신 장군의 "生卽死 死卽生"의 원리가 바이러스와 인간의 싸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방역 만능주의자들은 모르고 있죠. 바이러스는 퍼지면 멈추고, 멈추려고 하면 잠시 멈칫하는 것처럼 보일 뿐 다시 퍼집니다.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 후" 건강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나가는 감염은 막을 수도 없고 막을 필요도 없는 이유이자, K방역의 핵심인 역학조사와 확진자 수 헤아리기가 사회에 혼란과 공포만 초래할 뿐 별 의미 없는 이유입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되어도 여전히 K방역을 자화자찬하고 있는 정부, 조금만 더 힘내자는 전문가들, 그래도 방역은 우리가 최고라는 국민들을 보면 앞으로도 덤 앤 더머들의 행진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K방역을 국가 브랜화하면서 모든 국민이 한 마음으로 방역 1등 국가를 추구해왔습니다만 방역이란 결코 1등을 추구해서는 안 되는 독이 든 성배일 따름입니다. “방역 vs. 면역: 공존 불가능한 두 세계”에서 설명드렸듯, 방역에 사용되는 모든 방법들은 결국 건강한 유기체의 면역을 서서히 낮추는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영웅은 파스퇴르가 아닌 베샹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 우리는 이번과 같은 어리석은 일을 끝없이 반복하게 될 듯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