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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l 15. 2021

과연 영국은 백신접종률이 높아서 사망자가 적은걸까?

혹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빙하기가 시작된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열차에 올라탄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처참한 갈등과 투쟁 끝에 두 명의 아이가 이 열차를 탈출합니다. 그리고 마주치는 북극곰 한 마리로 영화는 막을 내리죠.


영화는 빙하기가 시작된 지 17년 후를 가정하고 있었는데 그때까지 먹이사슬 최상층부에 위치한 북극곰이 생존해 있기 위해서는 그 아래의 먹이사슬들도 존재했음을 의미합니다. 아마도 빙하기로 인하여 모든 생명체가 멸종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땅으로 회복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이 열차 밖으로 나와 보지 않았더라면, 과연 지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코비드 19가 지금껏 인류가 경험했던 그 어떤 호흡기계 감염병 유행보다 오래 끌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그 이유를 코비드 19가 특별해서라기보다는 인류의 대응이 전례가 없어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바이러스와 숙주 간 신속한 공진화의 원동력이 되어야 할 건강한 사람들을 오로지 전파원의 관점으로만 보았던 방역 만능주의자들의 단견이 초래한 비극이라고 봅니다. 특히 설국열차에 등장하는 북극곰의 존재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바이러스 변이를 가지고 또다시 사회가 이런 혼란과 공포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많은 국가에서 일상으로 돌아가기 위하여 다양한 출구전략을 모색하고 있는 시점, 우리나라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숙주와의 공존을 위하여 빠르게 진화하는 바이러스의 본질을 무시하고 의미 없는 확진자 수 헤아리기로 국민들을 1년 반 동안 세뇌시킨 덕에 무려 70% 이상의 국민들이 4단계 거리두기를 지지한다고 하는군요. 이번 코비드 19 유행 중에 인류는 정말 바보 같은 짓을 많이 저질렀다고 보는데, 유행이 시작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무증상, 경한 증상이 대부분인 확진자 수에 기반하여 4단계 사회적 거리두기를 선택한 어떤 국가도 최소한 10위안에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당시 해당 국가의 코비드 19 일일 사망자수가 1,2명에 불과했다는 정보까지 제공된다면 어쩌면 3순위 안에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만 집착하는 폐단을 꼬집는 많은 격언이나 명언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냈는데 환자는 죽어버렸다”라는 표현입니다. 제가 작년 3월에 올린 “신종 코로나, 이젠 전략을 바꾸어야 할 시점이 아닐까”라는 글에서 코비드 19와 같은 성격을 가진 바이러스를 상대로 우리나라와 같이 전파방지에 초점을 맞춘 방역정책을 장기간 유지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고 예상한 바 있는데 점점 현실화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번 4단계 거리두기 후 코비드 19 확진자수는 성공적으로 줄었으나, 훨씬 더 많은 생명과 삶에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남기는 일이 없기만 바랄 뿐입니다.


방역당국에서는 최소한 영국 수준으로 백신 접종률이 올라갈 때까지는 K방역을 고수할 생각인 듯합니다. 이제는 가족처럼 익숙해진 얼굴을 가진 전문가들이 나와서 영국의 일일 확진자수가 수만 명이 넘지만 사망자수가 적은 이유는 백신 접종률이 높아서 그렇다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니 다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우리가 이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백신 접종뿐이라고 믿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정말 영국의 사망자수가 적은 것이 백신 접종률이 높기 때문인 걸까요?


다시 스웨덴 사례를 보겠습니다. 아래 그래프에서 보듯 스웨덴의 경우 2월 말경부터 확진자가 급증하기 시작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망자 증가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시기 스웨덴의 백신 접종률은 1차 10~20%, 2차 5~10% 정도에 불과했고요. 현재 우리나라보다 낮은 백신 접종률이었지만 영국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죠. 즉, 확진자가 증가해도 사망자가 늘어나지 않는 현상은 바이러스의 치명률은 낮아지고 숙주의 면역력은 높아지는 공진화, 그리고 고위험군에만 집중하는 백신 접종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리고 영국의 경우 시기상 계절성 요인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고요. 



혹시나 스웨덴은 죽을 사람들이 이미 다 죽어서 그렇다고 해석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참고로 덧붙이자면, 스웨덴의 코비드 19 사망률은 영국보다 낮으며, 총사망률을 반영하는 초과사망은 훨씬 더 낮습니다. 다시 말하면, 죽을 사람이 다 죽어서 그렇다면 이는 영국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더 적절하다는 의미입니다. 더 자세한 결과를 확인하고 싶으신 분은 "스웨덴이 주는 교훈, 코비드 19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유행 시작부터 노 마스크, 노락다운으로 대응했던 스웨덴과는 달리 영국은 그동안 무려 3차례 전면 락다운에 마스크 착용 의무화까지 했던 국가임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수만 명의 관중들이 노 마스크로 운집한 스포츠 경기장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나라도 백신 접종률만 높이면 곧 그런 미래가 찾아올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백신 접종률이 100%가 되어도 지금처럼 역학조사에 기반하여 확진자수를 헤아리는 방역 정책을 고수하는 한 그런 날은 결코 오지 않습니다. 유행 초기부터 코비드 19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보였던 동아시아권에서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고 무증상자를 격리하는 방역정책을 지금까지 유지하면서 의미 없는 확진자수에 전 국민을 울고 웃게 만든 것은 사실 난센스에 가깝습니다. K방역 덕분에 이 정도로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분들은, 작년 5월까지 4일 이상 고열이라는 거의 폐렴에 준하는 증상이 있어야만 PCR 검사를 해주었던 일본의 코비드19 누적 사망률을 아래 그래프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비유하자면 우리는 빙하기가 오지도 않았는데 자진해서 설국열차에 올라탄 승객들입니다.

 


최근 가장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의 형태인 전면 락다운조차 별 의미가 없었다는 연구결과들이 줄지어 나오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도 방역 신화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대부분인 듯합니다. “바이러스 지역사회 전파 후” 전체 사회를 대상으로 한 사회적 거리두기란 단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일 뿐입니다. 사람들 간의 접촉이 시작되면 다시 바이러스는 제 갈길을 가기 시작합니다. 거리두기의 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 효과는 더욱 단기적이고, 대신 전체 사회가 치뤄야 할 유무형의 대가는 장기적이며 파괴적이죠.




정부에서는 이번 4차 유행을 두고도 여전히 K방역 극대화가 가장 효과적인 대응이라는 놀라운 인식 수준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스웨덴과 같이 임시 병상만 준비해 두고 고위험군, 의료시스템 중심으로 방향 전환을 했었어도 별 문제가 없었을 대표적인 국가라고 봅니다만, 그렇게 하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확진자수가 K방역의 성과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지표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확진자수에 근거하여 방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는 듯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기 전에, 방역당국에서는 적당한 출구전략 만들어 K방역의 늪에서 하루 빨리 탈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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