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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Jun 26. 2021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하겠다는 헛된 꿈

제가 집단면역의 중요성을 처음 언급한 것은 작년 2월 대구 신천지 사태 때 올린 “신종 코로나 유행이 가능한 한 빨리 종식되려면”이라는 글이었습니다. 무증상자와 경한 증상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코비드 19의 경우, 건강한 사람들이 경험하고 지나가는 자연감염은 방역의 관점이 아닌 집단면역을 올려주는 순기능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전체 사회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죠.


그 이후 2020년 여름에 올린 “지금까지 버텨준 스웨덴이 고맙다”라는 글에서는 노 마스크, 노락다운으로 대응했던 스웨덴의 사망자수 감소 그래프를 보여드리면서 다시 한번 집단면역의 중요성을 강조드린 바 있습니다. 그 당시 스웨덴은 일정 수준 집단면역에 도달했기 때문에 이러한 유행 곡선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었고요. 그런데 겨울철이 되면서 스웨덴의 코비드 19 확진자와 사망자가 다시 증가합니다. 아직도 당신이 맞다고 생각하느냐고 비아냥대는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일이 “인도 집단면역 vs. 이스라엘 집단면역, 누가 WIN?”이라는 글을 올린 후 인도가 확진자 수 급증을 보일 때도 벌어졌습니다.


이런 일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저는 전문가 집단을 포함하여 대부분 사람들이 집단면역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집단면역을 확진자 수 0이 되고 그 상태가 유지되는 상태라고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는 올 11월까지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하겠다고 여러 차례 공언한 바 있는데, 이 또한 집단면역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호언장담이라고 보았습니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집단면역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면, 혹시라도 현재 긴급 승인으로 사용 중인 백신을 이용하여 집단면역에 도달하겠다는 위험한 무리수를 정부가 재고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지고 이 글을 올립니다.


계절성 독감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아래 그래프는 OECD 국가들의 65세 이상 인구 독감 백신 접종률입니다. 우리나라는 85%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독감백신 접종률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OECD 평균은 40~50% 정도 됩니다. 대부분 동유럽권 국가들은 10% 수준이고, 독일, 노르웨이, 일본, 핀란드와 같은 국가도 50%에 못 미칩니다. 그런데 독감백신 접종률이 높은 나라나 낮은 나라나 할 것 없이 매년 겨울철마다 독감이 유행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국가에서 겨울철이 되면 사망률이 올라가고 따뜻한 봄이 되면 사망률이 떨어지는 계절성 유행 패턴을 보이죠.


 


세계적으로 독감 백신 접종률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2,3천 명 정도가 독감으로 사망한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독감 바이러스에 대하여 집단면역이 있는 건가요? 없는 건가요? 당연히 집단면역이 존재합니다. 집단면역이 존재하기 때문에 사망자수가 2,3천 명 정도로 그치는 것이지, 집단면역이 없었더라면 사망자가 수십만 명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즉, 집단면역의 존재란 환자수 0, 사망자수 0의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집단면역을 올려주는 역할은 누가 했을까요? 독감 백신 접종을 한 사람들이 해주었을까요? 아니면 백신이든 뭐든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는 건강한 사람들이 해주었을까요? 이것도 당연히 건강한 사람들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만약 백신 접종이 절대적이라면, 독감백신 접종률이 우리나라 절반에 불과한 독일, 노르웨이, 일본, 핀란드 같은 국가는 매년 독감 사망자수가 폭발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소식은 아직까지 들어본 바가 없습니다.


독감 시즌은 보통 11,12월에 시작하여 3,4월까지 이어지는데 이 기간 동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독감 바이러스에 대한 노출을 경험합니다. 면역력이 약한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했다 하더라도 위중한 상황이나 사망까지 이어질 수도 있지만, 건강한 사람들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부분 무증상과 경한 증상만으로 넘어가게 되죠 (이 사람들을 대상으로 PCR 선제 검사를 하고 접촉자를 추적하면 이번 코비드 19와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자연감염을 경험하고 회복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집단면역의 수준도 지속적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여기에 바이러스 전파와 숙주 면역에 영향을 미치는 계절적 요인이 추가되면 어느 시점 유행 곡선이 꺾이는 패턴을 보이게 됩니다. 즉, 집단면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항체가 소실, 새로운 변이 출현 등으로 인하여 집단면역 수준이 떨어지게 되고, 동시에 유행을 촉발하는 계절적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다시 유행이 시작되죠. 다시 말하면, 집단면역이란 이분법적으로 접근하는 정적인 개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는 다이내믹한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호흡기계 감염병의 계절성 유행 패턴에 기여하는 하나의 요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한 인구집단이 집단면역에 도달했음은 항체 양성률 혹은 백신접종률 등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행 곡선의 패턴이라는 현상을 보면서 단지 “짐작”할 뿐입니다. 언뜻 보기에 전자는 과학적인 판단 기준인 듯하고, 후자는 비과학적인 접근방법 같습니다만, 실상은 정반대입니다. 항체란 유기체가 가진 면역시스템의 일부일 뿐이고 집단면역의 기준치는 환경 조건에 따라서 지속적으로 변하는 수치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지금쯤은 코비드 19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에 도달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꽤 늘었을 듯합니다. 최근 방역당국에서는 델타 변이 소식을 전하면서 더욱 백신 접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합니다만, 사실 변이의 출현은 백신 접종의 효과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하는 것은 바이러스의 기본 속성으로, 전 국민 백신 접종을 끝낸다 하더라도 변이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수밖에 없으며 그리스 알파벳 24개로는 턱도 없을 겁니다. 즉, 코비드 19의 집단면역을 백신 접종만으로 올리고 유지하겠다면 우리 모두 매년 업데이트된 새로운 백신을 접종하는 것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자연감염을 통하여 획득하는 면역은 항상 우월합니다”에서 설명드렸듯, 한 개인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자연감염의 경험을 통하여 얻게 되는 면역은 백신을 통하여 얻는 면역보다 훨씬 포괄적이고 강력합니다. 특히 끊임없이 변이를 일으키는 호흡기 바이러스의 경우에는 점막 면역계, 즉 1차 방어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하기 때문에 호흡기를 통한 자연 감염의 경험이 더욱 중요합니다. 또한 인구집단의 관점에서도 자연감염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인구집단의 집단면역은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따라서 코비드 19 정도의 치사율을 가진 감염병 유행시에는 건강한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해주어야만 장기적으로 감염병 유행 관리에도 유리하고, 그 밖의 광범위한 신체 및 정신 건강,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에 끼치는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겁니다. 이는 제가 작년 2월부터 계속 해왔던 주장이자 그레이트 배링턴 선언문의 요지이며, 노 마스크 노락다운으로 대응해도 예전과 별 다를 바 없는 총사망률을 보이고 있는 스웨덴의 방역정책이기도 합니다.


최근 동아사이언스에 2만 년 전 동아시아권에 코비드 19와 유사한 감염병이 휩쓸고 갔다는 증거를 유전자 분석에서 발견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더군요. 반갑게도 동아시아권은 교차면역으로 인하여 처음부터 코비드 19에 대한 높은 저항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저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동아시아권의 코비드 19는 이렇게까지 대우할 만한 감염병이 아닙니다. 중앙임상위원회 위원장이신 오명돈 교수님께서도 일찍부터 코비드 19는 무증상과 경한 증상이 대부분이며 증상이 있다 하더라도 합병증이나 후유증이 독감보다 심하지 않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내신 바 있고, 최근 명지병원 응급의학과 서주현 선생님께서 내신 “코로나19, 걸리면 진짜 안돼?” 책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죠.


곧 수능을 앞둔 고3을 대상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될 것이라고 합니다. 아직도 저는 코비드 19에 대한 저항력이 높은 동아시아권에서 왜 건강한 청소년들이 긴급 승인으로 사용 중인 백신을 맞아야 하는 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요?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가요? 아니면 제가 모르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건가요? 코비드 19는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번 사태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향후 코비드 25가 나올 때 우리는 지금과 같은 일을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고스란히 다시 겪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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