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이든 뭐든 한 인구집단에서 감염병 유행이 종식되려면 그 병원체에 대한 면역을 가진 사람의 숫자가 일정 % 이상 되어야 합니다. 집단면역 (herd immunity)이라고 부르는 개념이죠. 그 숫자가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느냐? 는 전파력에 따라 다릅니다. 당연히 전파력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숫자는 올라갑니다. 예를 들어, 전파력이 높기로 유명한 홍역의 경우, 집단면역 효과가 있으려면 인구집단의 90% 정도가 면역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 집단면역을 올리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백신 접종입니다.
그럼,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이 백신이 없는 경우에는 무슨 수로 집단면역을 올릴 수 있을까요?
사실 백신 개발은 20세기 중반이 넘어서야 시작된 것이고 오랜 기간 인간은 맨 몸으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를 상대해왔습니다. 이놈들은 두 가지 무기를 가지고 있죠. 전파력과 독력입니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유명한 감염병들은 이 두 가지 무기 모두 성능이 상상초월이었던 놈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세의 흑사병, 신대륙의 천연두, 스페인 독감 같은 것들이죠.
그러나 이것은 매우 예외적인 상황입니다. 그런 대단한 놈들이 나타나지 않았던 시간에도 인간들은 끊임없이 수많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 투쟁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사책에 이름을 남기지 못한 이들의 특징은 두 가지 무기 중 하나의 성능만 쓸만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전파력이 강하면 독력이 낮고, 독력이 강하면 전파력이 낮고..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으면 소규모 유행은 가능하지만 대륙을 휩쓰는 대규모 유행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오대양 육대주가 하루에 연결되는 현대사회에서는 전파력만 높으면 대규모 유행이 가능합니다).
아무리 소규모라도 유행이 종식되려면 집단면역이 일정 수준 이상 올라가야 합니다. 백신도 없던 그 시절, 무슨 수로 집단면역을 올릴 수 있었을까요? 그렇죠. 무식해 보이지만 병원체와의 접촉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이 집단면역을 만드는 것입니다. 즉, 병원체는 여전히 환경 내에 존재하고 있지만, 집단면역 덕분에 그 인구집단은 한 동안 평화롭게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아기가 태어나고, 외부에서 인구가 유입되고 하면 점차적으로 집단면역이 떨어집니다. 그럼 이 기회를 틈타서 병원체는 다시 유행을 일으킵니다. 공생미생물로 자리잡기까지 이런 과정은 일정한 주기를 두고 끝없이 반복됩니다.
여기서 독력은 강하나 전파력이 낮은 놈과 전파력은 강하나 독력이 낮은 놈을 비교해봅시다. 그 당시 인간들의 생사여탈은 주로 전자에 의하여 좌우되고 후자는 존재감조차 없었을 겁니다. 강한 전파력이란 강한 독력과 함께 존재할 때만 사람들이 인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파력은 강하나 독력이 낮은 놈들에 대한 집단면역은 많은 사람들이 본인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무증상 혹은 가벼운 병을 앓으면서 자연스럽게 높여가게 됩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신종 코로나의 특징은 후자에 가깝습니다. 어제 마크 립시치 하버드대학 전염병학 교수가 1년 내에 전 세계 성인의 40~70%가 감염될 거라고 예상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를 인용하는 기사에 "대재앙", "통제 안되면 팬데믹", “방역 실패 시나리오” 이런 제목이 붙어 있는 걸 보고 제가 꽤나 분노했었는데요, 립시치 교수가 한 발언의 방점은 “대부분 사람들은 가볍게 앓고 지나가거나 무증상자로서 지나가게 된다는 것”에 찍혀야 합니다. 즉, 신종 코로나가 매우 빠르게 전 세계 인류의 절반 이상을 감염시키고 결국은 인간과 공존하게 되나, 가끔은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는 그런 바이러스로 남게 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성격의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현재 우리 사회가 하고 있는 그런 철저한 방역의 대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감염자 = 환자가 아닙니다. 이런 경우 감염자란 이 바이러스에 면역을 가지게 된 사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그렇게나 오매불망하는 (자연산) 백신 접종자가 되는 겁니다.
신종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 우한의 천만 도시 봉쇄라는 소식은 충격적으로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중국 환자 44,000명 임상보고서에 의하면 약 80%는 경증 환자로 폐렴 증상이 아예 없거나, 폐렴이 있다 하더라도 아주 가벼운 증상이었습니다. 즉, 현재의 결론은 중국에서조차 전염력은 높으나 치사율은 낮아 보인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치사율은 더 낮을 것으로 봅니다. 대부분 신종은 발생 초기에 독성이 가장 강합니다. 따라서 의료 환경 등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처음 시작된 장소에서 가장 높은 치사율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1차 감염, 2차 감염.. 이렇게 계속 전파됨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독성이 낮아집니다. 제가 앞서 글에서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는 진화의 법칙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 사회를 비상식적일 정도로 마비시키고 있는 이 신종 코로나 유행은 과연 어떤 방식으로 끝날 수 있을까요? 백신은 집단면역을 올리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지만, 신뢰할만한 백신을 만든다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21세기에 이런 원시적인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싫든 좋든 역사 속의 그 무식한 방법을 통하여 유행은 서서히 잦아들 것으로 봅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와의 접촉을 통하여 무증상 혹은 가볍게 병을 앓으면서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집단면역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면서 종식의 과정을 밟게 될 것입니다. 그 와중에 병이 심각하게 진행하는 사람들이 발생하게 됩니다만 다행히 현대의학은 의료시스템에 과부하만 걸리지 않는다면 이런 환자들을 잘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극소수 사망자는 불가피하겠지만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아주 심각한 딜레마에 마주치게 됩니다. 현대사회는 증상 여부에 관계없이 신종 코로나에 감염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신종감염병 대응 표준 프로토콜은 유사합니다. 환자와 접촉자 관리가 핵심입니다. 증상이 있든 없든 유전자 검사, 항체검사 등을 통하여 “확진자”로 분류되면 병원체를 배출하지 못할 때까지 격리를 합니다. 이는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집단면역을 올리는 역할을 하는 무증상자와 가볍게 병을 앓는 사람들을 모두 격리해버리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특히 검사를 "선제적으로" 많이 해서 감염자를 조기에 찾아내면 낼수록 유행의 기간은 점점 길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게 됩니다.
신종 코로나와 같이 가공할 만한 전파력을 가지고 있으나 독력이 낮은 감염병이 감염원을 찾을 수 없는 지역사회 전파를 시작하면, 증상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신속히 진단하고 적절히 관리하는 의료 시스템에 집중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무증상자나 감기 증상자를 대상으로 하는 선제적 검사는 중지해야 합니다. 지역사회 전파가 시작된 이상 전파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시간만 지나면 저절로 낫는 대다수 경미한 환자들이 확진자로 분류됨으로써 정말 신속히 진단받고 치료받아야 할 소수의 진짜 환자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의미 없는 확진자 숫자만 급증시키면서 이미 언론의 맹활약 덕분으로 신종 코로나를 흑사병급으로 인식해 버린 대중들을 돌이킬 수 없는 패닉 속에 몰아넣게 됩니다. 오히려 건강한 사람들은 개인위생과 면역력 강화에 집중하면서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유행의 종식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고, 사회적 경제적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기저질환을 가진 고위험군은 보다 더 철저한 개인위생으로 걸리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신종감염병은 앞으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찾아올 겁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감염성 질환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에 변화가 없는 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향후에도 고스란히 반복될 것입니다. 제가 이 블로그 곳곳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데요, 감염병 질환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니, 그 어떤 질병보다 한시가 급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