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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덕희 Feb 21. 2024

예측모델? 맥나마라 오류

의사수 추계, 누가 맞을까? 

한국의 보건의료정책은 K방역과 아주 흡사합니다. 일단은 둘 다 복지부와 질병청이란 공공보건의료 관료조직이 주도했다는 점이 동일하고 그들과 함께 밑그림을 그렸던 전문가들의 전공분야도 유사합니다. 또한 첫 단추부터 잘못 꿰어졌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온갖 기기묘묘한 정책들을 더하여 전체 시스템을 누더기로 만들면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점도 비슷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코로나 사태동안 그들이 만들었던 <거리두기 세부지침>과 이번에 나온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라는 것도 관리 및 통제 지상주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는 점도 꽤나 유사합니다. 그들은 자율성, 능동성과 같은 가치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 되는지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집단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이 두 사례를 영락없는 데칼코마니로 보는 가장 큰 이유는 둘 다 예측모델의 허구와 위험성을 보여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의사수 추계와 관련하여 대중들은 꽤나 혼란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추계하는 사람에 따라 엄청나게 부족하다부터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남아돈다까지 광범위한 스펙트럼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전자는 정부 측 주장이고 후자는 주로 의사 측 주장입니다. 대중들은 아니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나?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분명하고 그 거짓말은 당연히 직역이기주의에 사로잡힌 의사들이 하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 시 대부분 감염병 예측 수리모델링이 엉터리였음이 판명되었듯, 의사수 추계와 같은 예측모델도 어떤 결과가 나오든 신뢰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예측모델의 허망함을 알려주는 오류중 맥나마라 오류 (McNamara fallacy)라는 것이 있습니다. 월남전당시 미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다양한 요소에 대한 정량적 측정에 기반한 예측모델을 이용하면 합리적 정책결정을 할 수 있다고 확신했었던 경제학 전공자였습니다. 포드자동차 경영 쇄신과 같은 몇몇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긴 했습니다만 베트남 전쟁 시에는 전혀 먹히지 않았고 결국은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게 되죠. 그가 실패한 이유는 현실에는 정량적 측정이 불가능한 많은 요소들이 존재하며, 경우에 따라서 이런 요소들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맥나마라 오류는 아래 4가지 요소로 구성된다고 봅니다.

첫째,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측정한다. 여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쉽게 측정할 수 없는 것은 무시하거나 임의의 수치를 부여한다.  이것은 인위적이고 잘못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셋째, 쉽게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가정한다. 이것은 맹목적 무지라고 봐야 합니다.

넷째, 쉽게 측정할 수 없는 것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자살행위에 가깝습니다.


코로나19 예측모델과 의사수 추계모델 모두 심각한 맥나마라 오류가 존재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예측모델링은 소위 교차면역과 같은 요인이 감염병 유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아무런 이해가 없는 상태로 이루어졌죠. 수리모델링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그 전문가들은 끝까지 교차면역은 가설일 뿐이라고 주장했었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맥나마라 오류에 해당하는 경우입니다.


의사수 추계는 코로나19 예측모델보다는 난이도가 낮습니다만 여전히 맥나마라 오류가 존재합니다. 특히 연구자에 따라 추계 결과에 큰 차이가 나는 이유 중 하나는 변수에 따라 임의로 부여하는 수치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맥나마라 오류에 해당하죠. 예를 들면, 연령구조변화, 의료이용량, 의사업무량 등은 통상적으로 의사수 추계에 고려되는 변수들인데, 여기서 의사업무량을 현행대로 두는가 아니면 OECD수준으로 낮추는가에 따라서 모델 결과는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데이터기반 보건정책이 세계적 유행입니다. 주먹구구식 정책이 아니라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 증거를 가지고 정책을 펴겠다는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데이터기반이라는 단어에 속으면 안 됩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측정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고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보건의료정책분야에서 만들어내는 각종 통계치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맥나마라 오류로 가득 차 있다고 보면 됩니다.


모든 생명 현상이 복잡계의 결과물이듯 인간의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지는 사회현상도 일종의 복잡계입니다. 그중에서도 의료시스템이란 복잡계가 가진 특성들 -다양한 구성요소들, 구성요소들 간의 상호작용, 적응 및 피드백 기전, 불확실성 등-을 가진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복잡계 현상을 몇몇 변수로 환원시켜 접근하는 경우 필연적으로 맥나마라 오류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보건의료분야의 정책은 신중하고 점진적인 동시에 또한 유연해야 합니다.


많은 의사들은 한국의 문제는 의사 절대수 부족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의료 정책으로 인하여 의사들이 더 이상 필수의료에서 일하기를 거부하는 데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부와 대중들은 의사수를 대폭 늘이면 낙수효과로 필수의료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거라고 주장하고요. 과연 내년부터 2천명 더 증원된 의대생들이 실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는 10년 후 그 효과가 진짜 나타날런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복잡계의 가장 큰 특성이 예측불가능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확신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필수의료란 낙수효과로 할 수 있는 그런 분야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자부심 하나로 하는 분야라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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