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브런치 독자분이 기사 하나를 링크해 주시면서 제 의견을 듣고 싶다는 댓글을 다셨더군요. 제목은 “간헐적 단식, 심혈관 질환 사망률 오히려 높인다”로, 워싱턴포스트지발 외신기사를 번역한 것이었습니다. 요즘 간헐적 단식이 나름 핫한 식습관으로 뜨고 있는데, 그 기사를 보고 놀라신 분들이 꽤 많을 듯했습니다. 원 기사를 검색해 보니 최근 미국 심장병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 초록을 기사화한 것이었고요.
이 논문은 미국의 국민건강영양조사라는 공개된 데이터셋에 기반한 연구였습니다. 이 자료는 저한테 아주 익숙한 데이터셋으로, 한 때 제 취미 중 하나가 이 자료를 다운받아 제가 가진 crazy 한 가설들을 이리저리 검증해 보는 것이었죠. 간단히 요약하면 미 질병청에서는 매년 일정 수의 미국인들을 무작위 표본추출하여 각종 설문과 임상검사를 한 후 데이터를 웹상에 공개하는데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운받아 논문으로 작성할 수 있습니다.
이 자료에는 24시간 회상법이라고 부르는 식이습관에 대한 정보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제 하루동안 무엇을 언제 먹었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문을 2차례에 걸쳐서 하죠. 이번 논문 저자들은 2003년부터 2018년까지 국민건강영양조사에 참여했던 약 2만 명의 성인들을 대상으로 24시간 회상법에 기반하여 간헐적 단식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들을 구분했더군요. 그리고 미국 통계청 사망자료와 연계하여 사망률을 비교해 본 결과 간헐적 단식을 했다고 분류된 사람들이 심장질환 사망률이 91% 높았다는 것이고요.
이런 연구를 전형적인 관찰 역학연구라고 하죠. 많은 관찰 역학연구는 믿을 만한 것이 못 됩니다만 먹는 것과 관련된 연구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루는 커피가 암 발생위험을 높인다는 결과를 보고했다가 다음 날은 커피가 암 발생위험을 낮춘다는 결과를 보고하는 논문들이 바로 이 분야 역학 연구들이죠. 위 연구에서 간헐적 단식 여부를 정의 내리는 데 사용된 정보는 <연구시작시점 단 2차례> 시행된 24시간 회상법임을 다시 한번 강조드립니다.
앞서 “의료관리학이라는 학문은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에서 소위 의료관리, 보건관리를 전공한다는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학문이 가진 한계를 제대로 알지 못함으로 인하여 사회에 끼치는 폐해가 얼마나 큰지를 토로한 바 있습니다만, 역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들이 측정할 수 없는 블랙박스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빅데이터 시대가 도래하면서 거의 회생불가능한 지경으로 빠져버렸다고 봅니다.
수십 년간 누구 못지않게 치열한 역학자로 살았던 사람으로 조언드리자면 간헐적 단식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기사에서 인용한 수준의 역학연구로 판단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간헐적 단식과 같은 이슈는 역학연구가 아닌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합니다. 인류가 진화 과정 중에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생존해 왔다면 그 행위는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면 거의 정확합니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대의 간헐적 단식이란 선택사항이 아니라 생존의 디폴트 모드입니다. 그리고 생명체는 그 디폴트 모드에서 최적화된 반응을 하는 개체들만 생존 가능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에 현시대에도 당연히 간헐적 단식은 생명체에 유리하게 작용합니다. 이건 운동이 건강에 좋다, 햇빛이 건강에 좋다, 수면이 건강에 좋다와 같은 수준의 따로 증명이 필요 없는 공리 (axiom)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제가 간헐적 단식이 해로울 수 있다고 보는 상황이 있습니다. 바로 효과적인 살 빼는 방법으로만 간헐적 단식을 이용하는 경우입니다. 앞서 “살 빼는 약? 효과가 클수록 조심해야 하는 이유”에서 설명드렸듯 현재 우리 지방조직 내에는 엄청난 양의 환경오염물질들이 저장되어 있기 때문에 단기간 과격한 체중감량은 장기적으로 인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체중감량과 체중증가를 반복하는 요요현상은 더욱 해롭습니다. 만약 위 기사에서 인용된 논문에서 간헐적 단식을 했다고 분류된 사람들이 효과적인 살 빼기 방법으로 간헐적 단식을 이용했고 이들이 다른 군에 비하여 요요현상을 더 많이 경험했다면 이 군의 사망률은 다른 군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현시대 체중감량을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꼭 “체중 감소 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원칙 ABCDE”를 명심해야 합니다.
예전부터 역학은 엄밀한 과학으로 볼 수 없다는 많은 비판들이 있어왔습니다만 코로나 사태는 역학의 민낯을 세상에 드러낸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마스크, 거리두기, 백신, 치명률, 항체조사 등등.. 역학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주었던 수많은 사례들이 있는데, 아직도 대부분 사람들이 역학이 얼마나 허술한 학문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특히 언론에 보도되는 역학연구를 인용한 대부분 건강 관련 기사들은 읽을 가치조차 없으며, 역학 연구결과에 기반하여 본인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나 생활습관을 바꿀 필요는 더더욱 없습니다. 오로지 <유기체 작동원리>라는 큰 원칙하에서 합리적으로 판단한 후, 그냥 성실하게 실천하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