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글에서 혈액내에 존재하는 LDL 콜레스테롤은 수많은 환경오염물질을 세포로 전달하는 운반체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반대로 HDL 콜레스테롤은 이들을 체외로 배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드린 바 있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까지 우리가 놓치고 있었지만 건강과 관련하여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있는 콜레스테롤 관련 기전입니다.
그러나 스타틴에 대한 논쟁시 오로지 콜레스테롤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1980년대 스타틴이 처음 개발될 때는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겠다는 목표로 시작되었습니다만, 스타틴은 곧 콜레스테롤과 관계없는 다양한 생물학적 영향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고된 약제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용량에 따라 정반대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2002년 circulation에 발표된 논문에 의하면 스타틴이 저용량에서는 혈관신생을 촉진시키나 고용량에서는 혈관신생을 억제시켰다고 하죠. 이런 결과가 의미하는 바는 스타틴은 용량과 복용하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 그 결과가 매우 다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논문 저자들은 이 결과를 두고 “Biphasic effect”란 용어를 사용하여 설명했는데, 이는 전형적으로 호메시스 현상을 기술할 때 사용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물론 논문 어디에도 “Hormesis”란 단어는 언급된 바 없습니다만..
그 후에도 스타틴은 콜레스테롤치와 무관하게 항염증효과, 내피세포 기능개선, 항산화효과, 혈전 형성 억제, 면역 조절 등의 효과가 있음이 줄지어 보고되고 biphasic 효과도 여러 논문에서 확인됩니다. 스타틴이 보여준 이런 다양한 효과들을 설명하기 위한 분자생물학적 기전에 대한 연구들도 많이 시행되었습니다만, 스타틴이 <적정 용량에서> 보다 상위단계의 <호메시스 반응>을 유도하여 전반적인 유지보수 기능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물질이라는 사실에 대하여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최근 발표된 관련 논문 한편을 링크합니다.
앞서 “운동할 때 한 알 항산화비타민 복용이 나쁜 이유”라는 글에서 운동의 호메시스 효과는 활성산소 생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운동할 때 항산화비타민 복용으로 활성산소를 없애버리면 운동 효과가 사라진다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이와 유사하게 스타틴이 호메시스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스타틴도 항산화비타민과 함께 복용하면 역시 그 효과가 사라지게 됩니다. 실제로 2001년 NEJM에 발표된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스타틴과 항산화비타민을 같이 사용하면 스타틴의 심혈관계 질환 예방 효과가 저하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죠.
스타틴과 관련된 논란에서 현재 의료계가 가진 문제는 많은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에서 스타틴이 보여준 효과를 두고 단지 LDL 콜레스테롤을 낮추었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The Lower, The Better”이라는 패러다임을 가져온 아래 그림에서 LDL을 운반체로 하는 수많은 환경오염물질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스타틴이 가지고 있는 호메시스 활성화 효과가 어떤 기여를 했는지 등에 대하여서는 고려되지 못 하고 있죠. 오래전부터 많은 코호트 연구에서 혈중 콜레스테롤치는 낮으면 낮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험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었습니다만, 그들은 무작위배정 임상시험결과만을 신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코호트 연구결과들은 모두 바이어스의 결과물로 해석해버리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콜레스테롤치를 낮추는 것이 필요한 환자들이 있으며 이들에게 스타틴은 유용한 약일 겁니다. 특히 LDL 콜레스테롤 저하와 함께 운좋게도 그 용량에서 호메시스까지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요. 그러나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환자들이 “The Lower, The Better”라는 잘못된 패러다임에 휩쓸려 스타틴을 장기간 사용하게 되면 단기적으로는 위에서 언급한 여러 기전들로 나타나는 장점이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콜레스테롤 합성장애로 발생하는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거기에 더하여 최근에는 스타틴이 보여주는 다양한 효과들에 주목한 일부 의사들이 스타틴을 보충제, 영양제처럼 복용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하는 듯합니다. 의료 현장에서 호메시스 활성화 목적으로 스타틴을 단기간 사용하는 것은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만, 건강한 사람들이 장기간 스타틴을 사용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운동, 간헐적 단식, 파이토케미컬, 냉수샤워 등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안전하게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호메시스 활성화 방법들이 있는데 빈도가 낮다 하더라도 근육독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이미 알려져 있고 간독성, 당뇨병 등도 부작용으로 보고되는 스타틴을 이용하여 호메시스를 활성화시킬 이유는 없습니다. 물론 스타틴을 호메시스 활성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콜레스테롤 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하고요.
‘하버드 의대 수명 혁명 프로젝트’라는 부제가 붙은 데이비드 싱클레어교수가 쓴 <노화의 종말>이라는 책을 보면 호메틴 (hormetin)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호메틴이란 <호메시스를 유발하는 물질>이라는 의미로, 오랫동안 유전자 관련 연구를 해왔던 싱클레어교수는 드디어 노화를 역전시킬 수 있는 핵심기전으로 호메시스에 주목한 듯 싶었습니다. 일견 보기에도 꽤나 젊어 보이는 그는 자신이 선택한 생활습관과 각종 보충제들이 자신의 노화를 막고 있다고 책에서 주장하고 있죠. 그가 매일 먹는다는 호메틴들 중에는 라스베라트롤, 메트폴민, NMN 등이 있었는데, <노화의 종말> 개정판이 나온다면 여기에 스타틴이 추가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가 매일 1g씩 먹는다는 이런 호메틴들이 진정으로 그를 더 건강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가 평소 실천하는 생활습관 중에는 소식, 간헐적 단식, 운동, 저온 노출등이 있었는데 이 모든 것이 호메시스를 활성화시키는 매우 유용한 방법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마 그는 자신이 열심히 광고하고 있는 호메틴들을 전혀 복용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여전히 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을 듯합니다.
엉뚱하게도 저는 스타틴 관련 논란을 보면서 또다시 코로나19 사태를 떠올렸습니다. 무작위배정 임상시험에서 스타틴이 보인 다양한 효과를 두고 단지 콜레스테롤치를 낮추었기 때문이라고 믿게 되면 <무조건 콜레스테롤 낮추기>가 목표가 되어 버립니다. 이와 유사하게 팬데믹이 방역, 마스크, 백신 덕분으로 종식되었다고 믿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방역, 마스크, 백신>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게 됩니다. 즉, 어떤 결과를 가져온 감춰진 원인들에 치열한 고민없이 쉽게 측정가능한 수치나 겉으로 드러나는 온갖 장치들이 그런 일을 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면, 오류가 오류를 낳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정반대 주장을 하고 있는 스타틴 관련 유튜브 동영상 몇 편을 감상한 소감을 요약한다면 각자가 최선을 다하여 절반의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는 것입니다. 양쪽 모두가 지금까지 놓치고 있었던 다른 요인들 -LDL 콜레스테롤를 오염시킨 수많은 유해화학물질의 존재와 스타틴의 호메시스 활성화 효과 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스타틴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 스타틴이 의미없는 사람들, 스타틴이 위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지 않을까 싶군요.